베스트로 간 세월호 글에
해경123정이 세월호에 배들의 접근을 막은 게 옳다는 댓글이 보여서 올립니다.
핵심만 추렸으니 끝까지 다 읽어주세요.
세월호 관련 팩트를 모은 책 '세월호, 그 날의 기록' p301~304 에서 발췌했습니다.
123정은 접안할 때마다 그 자리에 구조할 인원이 남아 있는데도 뒤로 물러났다. (중략)
왜 그랬나. 해경들의 주장은 첫째 유속이 빠르고 조종이 어려워 123정 좌현이 세월호 선수 갑판 쪽에 부딪힐 수 있었고, 둘째 세월호 선수 갑판에 실린 컨테이너가 123정 쪽으로 떨어질 수 있었으며, 셋째 세월호 선수 갑판에 설치된 크레인 구조물과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123정에는 해경 대원들뿐만 아니라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는 박상욱의 말처럼 123정의 안전도 중요하다. 배끼리 접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현장이 간 둘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도 "육상 부두에 계류하는 것도 힘든데 아무런 보강 시설도 없이 경사지고 움직이는 배에는 계류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중략)
123정이 되도록 세월호에서 멀찍이 떨어지려고 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직원들한테 들은 이야기는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123정이 가까이 있으면 같이 침몰하게 되니까 배를 뺐다"는 의경 박**의 진술이다.
구명보트에 탄 보수팀장 김용기는 "세월호에 접안을 시도했는데 강한 조류와 세월호의 경사각 때문에 구명보트가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처음에는 접안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둘라에이스 선장 문예식도 "만약 세월호가 침몰한다면 블랙홀이 생긴다고 예상"했고, "그곳으로 사람이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세월호와 함께 빨려 들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판단 착오였다.
실제로는 세월호 주변의 와류 현상이 크지 않았다. 국립해양조사원이 발표한 당일 조류도를 보면 인근 해역의 조류가 북서 방향으로 바뀌는 때라 유속이 약했다. 9시50분경 현장에 도착한 어선 에이스호 장원희 선장도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시기라 물살이 세지 않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명백한 증거는 사람이다. 구명보트보다 훨씬 가벼운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세월호에 빨려들어가지 않았다. 123정 촬영 동영상을 보면 9시39분경 조기수 박성용은 큰 어려움 없이 헤엄을 쳐서 세월호에서 50미터 이상 멀어졌다. 9시45분경 구명보트를 발견하고 바다로 뛰어내린 화물차 기사 최재영 씨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에서 최재영씨도 "당시 와류가 심했느냐"는 질문에 "그랬다면 제가 여기 없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9시48분경 도착한 헬기 512호에서 뛰어내린 항공구조사 권재준도 세월호 좌현이 완전히 바닥에 잠길 때까지 주변을 헤엄쳐 다니며 구조할 사람을 찾아다녔다.
세월호 주변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100톤이나 되는 123정이 함께 빨려 들어갈까 두려워한 것은 정당화할 여지가 없다. 지나치게 거리를 두다 보니, 세월호에 진입하는 것은 고사하고 승객들을 향한 퇴선 방송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정황과 모든 변명을 고려해도 123정이 구조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은 비난을 피할 여지가 없다. 10시 15분경 세월호 선미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쏟아져나올 때에도 123정은 100미터 이상 떨어져 구명보트와 어선을 타고 오는 사람들만 태웠다. 123정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전남201호 고속보트가 세월호에 바짝 다가가 구조하는데 해경 대원들은 123정 선수에 서서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에이스호 장원희 선장은 "123정은 (세월호) 선수 50~100미터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헬기가 구조하는 것만 쳐다보고 있어서 '다 구조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