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노무현이 연설비서관을 불러서 책을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누구나 청와대에 들어와서 일을 하길 원한다. 그런데 자네는 그런 특혜를 누렸다. 특혜를 누리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서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라.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소수가 누리던 것을 다수가 누리게 되는 과정이다. 누리던 것중에 좋았던 무엇인가는 다른 이에게 전달되어야만 한다."
이 연설비서관은 김대중 노무현밑에서 8년을 일했는데 차이점이 김대중은 "듣는 국민은 처음이다. 반복해서 말씀드려야 한다" 노무현은 "반복을 하지마라. 중복이 일어나고 성의가 없게 된다" 였습니다. 여기서 대통령의 철학과 시대상이 나옵니다.
지금의 60대이상의 평균학력은 중학교2학년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더 낮았어요. 하지만 정치인들은 엘리트였고 이상을 이야기하기 바빴습니다. 김대중은 옳지못하다고 봤어요. 국민눈높이에 맞춰서 이해시키며 가야한다고 하셨죠. 반면 노무현은 젊은이들이 희망이라고 봤습니다.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해야 감응합니다. 감응해야 참여하고 변화하게 됩니다.
김대중은 연설문을 꼭 보고 읽었습니다.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었어요. 김대중의 연설능력은 정치사를 통틀어 최고입니다. 다만 국민께서 보시기때문에 보고 읽는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무현은 연설문을 덮고 말했습니다. 눈을 마주치고 말해야 호소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은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노무현은 하고 싶어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죠.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서 말을 한다라는것이었습니다. 가르치고 계몽하려는 느낌이 들면 교감은 물건너가기 때문입니다.
공통점은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했다는겁니다. 노무현은 우리사회의 시스템이 전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길 바랬습니다. 정치는 여와 야의 대립이 아닙니다. 그건 나라의 시스템이 잡히고 난후의 일이죠. 국가의 유지는 국민들이 대통령을 올바로 뽑아내는것을 지속할때 유지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시스템은 전무했고 누군가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질수 있을 정도로 취약했습니다. 매뉴얼을 만들고 절차주의를 확립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서류로 남길수 없는 것은 하지도 할 생각도 하지마라" 바로 서류주의입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남기라는것이죠. 그렇다면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역사로 기록되고 국민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대립이 첨예해지도록 유도했습니다. 큰갈등속에서 문제점들이 모두 지적되어야 오류를 최소화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2명 이상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결정되었고 그것은 모두 메모되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은 노무현이 만들어놓은 매뉴얼을 "종북좌파의 잃어버린 10년흔적"이라면서 모두 폐기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이 남겨놓은 기록물을 훔쳐보며 정치적시빗거리를 찾아내려고 광분했죠. 물론 자신들은 중요한 기록일수록 철저히 남기지 않았습니다. 의사결정은 철저히 비선라인과 본인의 독단에 의해서만 결정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메르스 세월호 지진등에서의 국가적 대혼란을 거쳐 최순실게이트로 이어진것입니다.
노무현은 말하고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좋아했죠. 노무현이 김대중을 좋아했던 이유입니다. 물론 말만 잘하고 글만 잘 쓴다고 좋은 정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치인은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써야한다고 노무현은 확신했습니다.
정치는 결국 말과 글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죠. 중학교2학년학력의 노인세대와 최소 고등학교졸업이나 대학중퇴학력을 지닌 젊은세대와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박근혜는 중학교2학년 수준에서 결정한 대통령이고 그녀는 정확히 그 수준만큼의 국정을 운영했어요.
애시당초 박근혜에게는 김대중 노무현처럼 수준높은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었죠. 참사는 예견되었던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1987년 수많은 피를 흘린끝에 합의한바 있습니다. 투표로 결정된 대통령이 임기동안 국정을 이끌어가는것으로요. 박근혜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었고 누군가가 원했던만큼 정확히 보여준 대통령입니다.
우리사회에는 현대와 전근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걸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스마트폰도 불편해서 좀 더 혁신적인 기기가 나오길 원하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손으로 쓰는 편지가 애틋합니다. 김대중이 생전에 한 말이 있죠. "국민의 수준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인이 앞에선다고 그 걸음이 빨라지는것은 아니다. 옆에서서 나란히 손을 잡고 더디더라도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
노무현은 "앞에서서 걸어가야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져선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의 거리도 누군가에겐 급진이었고 누군가에겐 배신이었죠. 경제학자들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세계경제를 한방에 회복시키는 방법은 "60살이상 연금을 받는 노인을 모두 학살하는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맞는 말입니다. 정치 분노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노인이 모두 죽어없어지기 전에 좋은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문이 없는 경제는 경제가 아니고, 인본이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닙니다.
짐이 많은데 빨리 가지 못하고 있어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좀 천천히 가던가. 아니면 내가 짐을 좀 더 짊어매던가. 둘 모두 싫을때 절반이 아니라 모두가 전근대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p=1&b=bullpen2&id=6330328&select=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