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맞벌이 31년차이지만
젊은 시절엔 기운이 뻗쳐서 안해도 되는 제사 상차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저도 이젠 늙고 기운 빠지고 무엇보다 세상 모든 일에 심드렁하는 때가 되었네요.
젊은 시절엔 잠을 못 자도 송편 일일이 다 빗고 찌고
제사 음식도 모두 다 하고 식혜에 수정과, 한과까지 다 하든 맏며느리입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고
저도 시부모님도 세월의 시련을 겪었고
이젠 알아서 각자 시조부모님 성묘를 하는 것만 남았어요.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노릇 안/못하는 부모때문에
시조부모님이 저희 남편에겐 정말 부모님 같은 분이라는거...
제가 젊은 시절엔 이런거 스스로 용납 못하겠지만
맞벌이고 제가 요즘 직장일로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냉동 동그랑땡 사오라 했어요..
어제 늦게까지 그 냉동 동그량땡에 밀가루, 계란물 입혀서 지졌구요,
과일 챙겨서 성모갔네요.
가는 길 내내 막혀서 평소 같으면 1.5 시간 걸렸을 길을 3.5시간 걸려 가서
성묘 하고 왔어요.
저는 알아요. 우리 시조부님이 남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 남편 진정 무의식 속에라도 자기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주는 분들이죠.
저는 정말이지 우리 남편도 미처 모른다 해도 이분들의 덕을 제가 감사해 합니다.
제가 이미 늙고 힘이 빠져서 예를 다하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예요.
오늘 이렇게 고속도로 길 막히는 길을 다녀오니
저녁 밥 먹을 때 남편이 이러네요.
당신이 해준 성묘 음식 할아버지 할머니가 잘 맛 보셨을까?
저는 눈물부터 나서 아무 대답을 못 했어요.
사실 제가 정성을 다한 건 아니었지만, 제 형편이 더 이상의 정성을 할 수도 없었어요.
남편이 제게 고맙대요.
제가 뭘.. 너무 허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죄송하지 뮈.. 이랬어요.
저희가 늙어 죽으면 저희 애들은 저희의 기일조차 기리기 힘들 것 같아요.
각자 있는 자리에서 추도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건 살아있는 자의 몫이겠죠.
네..
그건 살아있는 자의 몫이죠.
저희가 간여할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살아있을 때 의미있게 살면 그뿐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