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백석 시인의 맛있는 시 "국수" 감상해 보세요~~

포리 조회수 : 4,492
작성일 : 2016-08-26 10:36:24
국 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옛적 큰 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순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시어연구

♣ 김치가재미:북쪽 지역에서 겨울철에 김치를 넣어 두는 움막, 헛간

♣ 양지귀 : 햇살 바른 가장자리

♣ 은댕기 : 가장자리

♣ 예대가리밭 :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 산멍에 : 이무기의 평안도 말

♣ 큰마니 : 할머니의 평안도 말

♣ 집등색이 : 짚등석, 짚이나 칡덩굴로 만든 자리

♣ 자채기 : 재채기

♣ 희수무레하고 : 희끄무레하고

♣ 삿방 : 삿(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을 깐 방

♣ 아르궅 : 아랫목

♣ 고담(枯淡):(글, 그림, 인품 따위가) 속되지 아니하고 아취가 있음



 핵심정리

성격 : 향토적, 토속적,

주제 : 국수를 통한 민족 공동체 모습의 환기

표현

   ① 평안도 사투리와 향토색 짙은 시어를 구사하여 토속적인 정취를 살림.

   ② 나열과 반복을 통해 국수와 마을 민족의 역사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③ 제목에만 ‘국수’의 명칭이 있을 뿐, 대상의 직접적인 호명이 없이 끝까지 ‘이것은 ~ 이다’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해설

백석의 이 시에서 음식물은 단순히 허기를 때우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특수한 시적 기능, 즉 민족과 민족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음식이란 민족마다 문화의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면서 그 음식물을 먹는 사람들의 체질이나 성격을 결정짓기도 한다. 백석이 전 국토를 유랑하면서 음식물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다. 국수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 국수와 얽힌 추억들을 통해 우리의 본래적인 삶을 상기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바로 우리의 민족성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시이다.


시인이 국수를 통해 어릴 적 토끼 사냥, 꿩 사냥하던 추억, 겨울밤 쩡쩡 얼은 동치미 국물 마시던 추억을 되살려낼 수 있는 것은 음식물이 한 개인 내지 집안, 나아가서는 민족의 동질성을 결정짓기도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음식물은 경우에 따라 성스러운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수를 먹으면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하고 정의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객지를 유랑하다가 국수를 통해 자기 몸 속에 흐르는 핏줄을 확인하고 현재의 삶과 상실된 과거의 민족적 삶을 대비시켜 역설적으로 식민지 삶을 환기시키고 있다.

 

[출처] 백석의 <국수>|작성자 겨울 오카피

백석 사진   http://blog.naver.com/sjseo1119/220720780250





IP : 58.125.xxx.116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6.8.26 10:38 AM (210.217.xxx.81)

    우와 멋지네요
    오늘같은 날씨에 백석시인처럼 국수한그릇 먹고싶네요

    시인은 역시 틀리네요 글이 이뻐요~

  • 2. 아이들시
    '16.8.26 10:44 AM (221.153.xxx.215)

    백석 시 중에 개구리 한 솥밥 동화책(장문의 시) 도 아이들 읽어뒀던 기억이 있네요

  • 3. 처음 읽으면 발음이 잘 안되는데
    '16.8.26 10:48 AM (203.247.xxx.210)

    소리 내 읽으면서 뜻이 저절로 느낌 오데요?ㅎㅎ

  • 4. 원글
    '16.8.26 10:51 AM (58.125.xxx.116) - 삭제된댓글

    제일 유명한 시는 아무래도 연애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로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5. 원글
    '16.8.26 10:52 AM (58.125.xxx.116)

    제일 유명한 시는 아무래도 연애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죠.
    최고의 연애시입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로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6. 찾았다
    '16.8.26 11:07 AM (221.153.xxx.215)

    [팟빵] [국민라디오] 노혜경의 그옆새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1
    http://m.podbbang.com/ch/episode/9722?e=21807364

  • 7. 감상
    '16.8.26 11:08 AM (121.150.xxx.238)

    아.. 정말 아름답습니다... 가슴 벅차오르네요.

  • 8. ...
    '16.8.26 11:17 AM (121.136.xxx.222)

    https://youtu.be/MPUlPpPizXg

    백석 시 국수를 김현성이 작곡, 백자가 노래해요.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 흥겨운 노래도 들어 보세요.

  • 9. 흰 바람벽이 있어
    '16.8.26 11:17 AM (211.36.xxx.170)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에요 ... 한창 힘들 때 이 시를 손글싸로 적어서 지갑에ㅡ넣고 다녔어요.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1941)

  • 10. 찾았다 2
    '16.8.26 11:29 AM (221.153.xxx.215)

    [팟빵] [국민라디오] 노혜경의 그옆새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2
    http://m.podbbang.com/ch/episode/9722?e=21808284

    [팟빵] [국민라디오] 노혜경의 그옆새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3
    http://m.podbbang.com/ch/episode/9722?e=21809109

    [팟빵] [국민라디오] 노혜경의 그옆새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4
    http://m.podbbang.com/ch/episode/9722?e=21809735

  • 11. 99
    '16.8.26 11:37 AM (220.68.xxx.16)

    바람 핀 시인 아닌지? 바람에서 저런 감성이 나온다면 봐줘야 하나...
    유치환도, 백석, 김동리, ...

  • 12. 원글
    '16.8.26 12:09 PM (58.125.xxx.116)

    백석은 결벽증이 있었어요. 전철 손잡이도 찜찜해하고 손 닦고 닦던 습관이 있었죠.
    결벽증 있는 사람들은 쉽게 바람 못 피고요.
    바람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집에서 강제로 혼인 정해서 혼인시킨 여자를 소박놓는다든지
    결혼하자마자 깨졌다든지 그랬었지만 불륜은 아닌 듯해요. 기생 자야가 널리 퍼뜨린 책에 바람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그 자야 말은 신뢰성이 없고요.

    결혼은 여러번 했어요.
    그리고 설사 바람폈다 한들, 작품과 사생활은 별개고 유치환이나 김동리같은 지속적인 불륜은 없었던 걸로
    압니다.

  • 13. 백석
    '16.8.26 1:55 PM (211.46.xxx.57)

    저도 '백석'님 시를 제일 좋아합니다. 정말 언어의 마술사예요. 어쩜 그리 아름답고 우아하고 적절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지...

  • 14. . . .
    '16.8.27 11:15 AM (175.223.xxx.154)

    백석시인의 시 국수, 좋네요

  • 15. ㅐㅐㅐ
    '18.12.2 5:37 PM (124.50.xxx.185)

    백석 시인 ㅡ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89483 우울증이나 조울증 증상에 대해 아시는 분 3 ... 2016/08/26 1,843
589482 토마스기차, 손가락만한 미니카들,,필요하신분 있으세요 ? 14 토마스 2016/08/26 1,284
589481 이민박람회 가볼만 한가요? dd 2016/08/26 349
589480 정말 부러운 친구.. 54 .. 2016/08/26 24,377
589479 이불보 수선 광장시장가면 되나요? 1 재봉 2016/08/26 648
589478 땀띠 그냥 없어지기도 하나요? 4 2016/08/26 1,405
589477 중딩 봉사활동, 창체활동 관한 질문 2 tt 2016/08/26 505
589476 광복회 "건국절, 친일 매국노 후손들이나 하는 소리&q.. 1 샬랄라 2016/08/26 316
589475 노래 제목 찾습니다. 6 못찾겠다. 2016/08/26 610
589474 롯데 2인자 이인원, 검찰 출석일에 양평서 숨진 채 발견 검찰출석앞두.. 2016/08/26 778
589473 주민세 위텍스 납부시 꼭 본인 공인 인증서만 가능한가요? 4 주민세 2016/08/26 705
589472 서울대 윤리교육 vs 서울교대 어디를 선택하는것이.. 20 .... 2016/08/26 4,865
589471 C형 간염 의원 직원 양심고백했는데 5 ... 2016/08/26 2,932
589470 다리 실핏줄이 터진것 같이 ..보랏빛..왜그럴까요 3 ?? 2016/08/26 1,997
589469 남편이랑 안 맞고 불행한 분들은 왜 29 ... 2016/08/26 7,602
589468 김무성 ˝콜트노조에 공식 사과, 사실관계 잘 몰랐다˝ 4 세우실 2016/08/26 553
589467 간절/호소//예전에 초간단 반찬, 일품 레시피 혹시 기억나세요?.. 4 //// 2016/08/26 776
589466 호주 퍼스 아시는분.. 9 .. 2016/08/26 1,165
589465 실리콘 주방 조리기구.. 끈적거리는데 왜죠?? 11 조리도구 2016/08/26 5,249
589464 내 트위터 답글만 안보이는 경우 1 rkatk 2016/08/26 621
589463 중1딸아이 생리불순 좀 봐주세요.ᆞ 4 걱정 2016/08/26 1,629
589462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일 8 소박한걸 2016/08/26 2,600
589461 고도비만에서 비만으로 바뀌었어요 31 2016/08/26 6,122
589460 "우병우 못 내치는 건 약점 있어서", '약점.. 1 샬랄라 2016/08/26 1,270
589459 내년 12월이 대선이죠? 2 대선 2016/08/26 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