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란이 또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로 불을 지폈고, 새누리당이 계속 땔감을 던진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이라고 돼 있다. 그냥 '임시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립은 1919년 3.1 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시점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1945년 해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임시정부' 꼬리표를 떼는 한 계기였다.
흔히 '상해 임시정부'라고 적지만, 1919년 당시 선포된 정확한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북한은 정통성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김일성은 만 일곱 살이었다. 김일성이 글이나 제대로 썼을까 싶었던 나이에, '대한민국'은 있었다.
김일성, 혹은 사회주의 진영의 독립 투쟁을 아예 없었던 일 취급했던 과거 군사 정부의 역사 서술은 틀렸다. 그러나 보천보 전투 등을 너무 부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은 유령 취급하는, 북한 식 역사 서술 역시 잘못이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들은 의도와 달리 북한 식 역사 서술과 통하게 됐다.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무시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이건희 장인, 홍석현 아버지, 홍진기를 추앙하려면 이승만부터 띄워야"
여기엔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이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인이며,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아버지가 홍진기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판사를 지냈고, 미군정 시기엔 법제부 법제관 및 사법요원양성소 교수 등을 맡았었다. 이승만 정부에선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4.19 혁명 당시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이 있다. 4.19 혁명 이후 구속됐고, 5.16 쿠데타 이후 풀려났다.
<중앙일보>와 삼성 입장에선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과 홍진기의 명예는 서로 맞물린 문제다. 이승만 정부가 4.19 혁명으로 쫓겨난 정부로 각인되면, 홍진기는 영원히 발포 책임자로 남는다. 홍진기를 추앙하려면, 먼저 이승만부터 띄워야 한다.
삼성이 뉴라이트 진영에 돈을 댄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예전에 삼성에서 관련 업무를 했던 이에게 들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