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조선일보는 가정용 전력사용량은 전체 전력수요에 13.6% 밖에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에서 전력사용량이 늘더라도 Blak out이나 단전의 위험은 없다며 현행 가정용 전력 누진제는 문제가 많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1/2016081100557.html
조선일보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수요에서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13.6% 밖에 되지 않으니, 가정에서 평소보다 전력을 30% 더 쓴다고 하더라도 전체 전력사용량에서 13.6% X 30% = 4.08% 밖에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가정용의 전력사용 증가는 전력수급관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블랙 아웃이나 단전의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현행 누진제로 여름철 가정용 전력요금을 과도하게 부과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과연 조선일보식 산수대로 전력수급관리를 하면 될까요? 조선일보는 저런 단순한 계산으로 국민들을 기만하지만 현실의 전력수급은 조선일보식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가정이 평소 한달에 평균 300kwh를 쓰다가 여름철에는 평소보다 100kwh를 더 써 400kwh를 쓰게 되면, 가정용 전체 전력사용량이 100kwh*12,851천호 = 1,285,100Mwh/월이 늘어나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월평균 전력사용량 40,304,583Mwh/월(2015년)의 3.18% 밖에 되지 않는다는 계산을 하고 있죠. 얼핏 보면 조선일보가 제대로 계산한 것 같이 생각되시죠?
지금부터 조선일보가 얼마나 엉터리 계산을 하고 있고, 이런 계산이 전력산업의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름철 한 달에 가정에서 1,285,100Mwh/월를 더 쓰니까, 이를 한달 30일 기준으로 하루에 쓰는 량을 계산하면 42,837Mwh/일이며, 이를 다시 24시간으로 나누면 1,785Mw의 전력만 추가되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전력은 우리나라 전력 총공급능력 91,440Mw의 1.95% 밖에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전력수급에 차질을 빚거나, 블랙 아웃이나 단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조선일보 논리입니다.
자,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본격적으로 조선일보 기자의 전력산업 몰이해를 까발리기겠습니다.
가정에서 여름 철 한 달에 100kwh를 더 쓰기는 하지만, 가정에서 전기를 쓰는 량이 1달 30일 고르게 쓰는 것이 아니라 폭염이 심한 2주(8월 기준으로 8월 1,2주)는 훨씬 많이 쓰고, 폭염이 누그러지는 2주(8월 3,4주)는 상대적으로 덜 쓰게 됩니다. 100kwh 를 쓰는 시기가 폭염이 심한 2주에 집중되어 이 중 80%(80kwh)는 14일(2주)에 쓴다고 봐야 합니다.
앞에서는 30일로 나누어 평소보다 하루에 더 쓰는 전력량을 계산했지만, 이제는 1,285,100Mwh*80%/15일 = 68,538Mwh/일을 폭염 기간에 가정에서 더 쓴다고 봐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 중에도 가정에서는 24시간 골고루 전력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더위가 심한 시간대에 에어콘을 켜고, 이것 때문에 가정용 전력사용이 늘어나는 것이죠. 즉, 가정의 68,538Mwh/일의 전력사용 증가량도 폭염이 심한 시간대인 peak time에 몰린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하루 중에 8시간을 본다면 peak time에 전력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68,538Mwh/8h = 8,567Mw가 됩니다. 이 전력은 우리나라 전체 공급능력 91,440Mw의 9.37%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식 계산에서 나온 1,785Mw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죠. 이 정도의 전력이면 전력예비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자칫 Black out이나 단전의 위험에도 빠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폭염이 한창인 오늘(8/11) 09시 현재의 부하가 7,651만 Kw이고, 예비전력은 1,227만 kw로 전력예비율이 16.03%로 정상 상태입니다. 아마 오전 10시를 넘으면 전력소비가 급격히 증가하고 peak time인 오후 3시~7시 사이에는 전력예비율이 6%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예비전력이 500만kw 이하로 떨어지면 경계 상태로 들어갑니다. 200만 kw가 되면 부분 단전을 검토하게 되구요.
이렇게 예비율이 봄, 가을의 peak tlme 때나 여름철 오전 9시까지는 15~20%인데, 한 여름 peak time에는 5~6%대로 뚝 떨어지는 이유는 가정이나 상가의 전력소비가 급증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노무현 정권이 전력수요를 잘못 예측하고 발전소 건설을 지연 혹은 취소하는 바람에 발전설비용량이 모자라 예비율이 한 여름 peak time 내내 4% 이하로 떨어져 비상이 걸리고, 단전까지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발전설비가 늘어 한 여름 peak time에도 예비율이 4% 이하로 떨어지는 일은 없지만,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잘못 손보게 되어 가정의 전력소비가 peak time에 더 늘게 되면 이명박 정권 시절처럼 단전을 또 경험해야 될지 모릅니다.
전력수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소비가 가장 많은 계절의 peak time 시간대의 전력관리입니다. 평소에 아무리 적은 전력을 사용하더라도 정부나 한전 입장에서는 이 peak time의 전력수요에 맞춰 발전설비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Black out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보셨다시피 가정에서 여름철 한 달에 100kwh를 예전 여름보다 더 쓰게 된다면 정부나 한전은 8,567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합니다. 최신 원전의 발전용량이 100만 kw 정도이니 약 9기의 원전을 더 건설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죠.
한 철을 조금 더 시원하게 보내려고 9기의 원전을 짓고, 그 비용을 고소란히 부담하시겠습니까? 발전소의 추가 건설은 필연적으로 전력단가의 인상을 불러오고, 그 비용은 기업이나 국민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이젠 왜 우리가 여름철 전력소비를 자제하고 더위를 조금 견뎌야 하는지를, 왜 누진제가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비전문가들이 설치면 결국 국민들이 손해를 보고 국가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요즈음 절실히 느낍니다. 언론(기자)들은 모르면 공부를 하든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든가, 아니면 정부의 입장을 경청하고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국민들이 복잡하고 난해한 전력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 왜 누진제가 필요한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 자신들의 책무이고 역할이 아닙니까?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도 대중들의 순간적인 요구에만 반응하지 말고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무엇이 국민들을 위한 것인지 심도있게 살펴보고 누진제 개선을 논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들도 20년만의 폭염에 짜증도 나겠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서 무엇이 자신들에게 유리한지를 따져보시고 조선일보와 같은 선동에 놀아나지 말았으면 합니다.
* 저는 가정용 전력의 누진제는 그대로 유지하되, 가정용 심야전력 사용에 대해 할인해 줄 수 있는 방향을 강구했으면 합니다. 한 여름이라도 심야에는 전력 예비율이 높아 심야에 가정에서 전력을 더 사용하는 것은 전력수급관리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문제는 기업에서 하는 것 같이 가정에서 별도로 심야에서만 쓰는 전력량을 체크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계량기로는 심야만 별도로 전력사용량을 나타낼 수 없지만 별도 체크할 수 있는 계량기가 개발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계량기의 가격과 교체비용을 감안할 때 경제성이 있을지는 따져 보아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