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 후 여느때처럼 눈팅을 하다보니 오늘따라 반려견 이야기가 많네요.
하나씩 읽다보니 떠난지 만 2년이 조금 넘은 리트리버 녀석이 많이 생각이 나요.
십여년 넘게 가족으로 지내다가 떠난터라 추억을 일일이 기록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테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 몇가지 써보고 싶어지네요.
03년 봄에 큰개 한마리 키우고 싶어서 여차저차 알아보다가,
선배가 허스키 한마리 구해다 주겠노라 하는 말에 알겠다고 했지요.
근데 허스키는 없고 리트리버만 있다고 해서 좋다고 데려다 달라고 했어요.
2개월령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4~5개월은 지난 개였고 생각보다 훨씬 큰 덩치에 놀랐었어요.
선배 차에 태워 품에 꼭 안고 집에 왔을땐 한밤중~ 부모님은 주무시고 계시고, 마당에 녀석을 두고 저도 잠을 청했지요.
이후 엄마 말씀이, 아침에 마당을 나가보니 처음보는 큰 개 한마리가 빨간 다라이 속에 앉아서 웃고 있더라고.
엄마도 강아지 데려온단 얘기만 들으시곤 작은 강아지가 오겠거니 하셨는데 놀라셨대요.
그게 우리 가족과의 첫 만남이네요.
대학교 내내 저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개 사료값, 가끔 드는 병원비 때문에 관둘 수가 없었어요 ㅠㅠ
형편이 많이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던터라 녀석한테 드는 비용은 제가 감당하고 싶었거든요.
녀석 덕분에 저는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법을 배웠었네요. ㅋㅋㅋ
가끔 속상할때 녀석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때가 있었어요. 대형견이라 참 듬직했었거든요. 사람만큼이나.
울다보면 제 팔에 녀석이 앞발을 턱~ 올려놓곤 했었어요. 그렇게도 따뜻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면서요.
뭐 물론 오래 울다보면 녀석도 지쳤는지 제 앞에 웅크리고 자곤 했지만요. ㅋㅋㅋ
개가 너무 너무 크다보니 털손질, 목욕은 기본 3시간을 잡았어야 했어요.
빗질해주려고 눕혀두면 늘 착하게 누워있었어요. 이리하면 이렇게~ 저리하면 저렇게~
제 손에 몸을 맡기고 잠들어 있곤 했어요.
귀 청소한다고 귀를 쑤석쑤석~ 닦아내도 가만히 있는 개는 첨이자 마지막일거에요.
빗질해주면서 가위로 뭉친털도 솎아내주곤 했는데, 배쪽에 가위질을 하다보니 개가 갑자기 끙~하는게 아니겠어요?
온몸에 힘도 바짝 들어간게 느껴지고.. 놀라서 털 안쪽을 살펴보니. 가위끝에 찝혀서 피가 살짝. ㅠㅠ
놀라고 아팠을텐데도 끙~소리만 한번내는 녀석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 일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어쩌다 열린 대문으로 가출을 감행한걸 발견하고 온동네를 이름부르며 뛰어다니다 보니
집근처 작은 구멍가게 앞에서 빵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네요?
처음 본 아저씨가, 개가 워낙 순둥이라 예쁘셨는지 도넛을 계속 까서 주고 있으시더라구요.
고맙단 인사도 드리고.. 도넛값 6천원도 드리고 왔네요.. ㅋㅋ
녀석은 집에 안간다고 버티는거.. 질질 끌고 갔어요. 도넛이 무척 맛있었나봐요.
집마당에 녀석과 더불어 토끼도 키우고, 길에서 데리고 온 믹스견 한마리도 키웠어요.
녀석은 토끼와도 사이좋게 지냈고.. 새로 온 작은 강아지와도 계속 계속 잘지내 주더라구요.
토끼는 녀석의 풍성한 꼬리털 위에서 잠들기 일수였고,
함께 지낸 믹스견은 한 5년을 단짝으로 잘 지내다가 녀석이 멀리 떠난 이후에 크게 우울증을 앓았었답니다.
(토끼도 작년에 9살 생을 마감하고 시골 감나무 아래 녀석의 무덤 옆에 함께 묻어줬네요.)
아.. 업무 복귀를 해야해서 별로 쓴 것도 없는거 같은데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겪으면서 가족으로 십여년 넘게 지내다보니 녀석의 얼굴에도 희끗희끗 흰털이 올라오고
잇몸과 치아도 무너지고 등등 건강이 노화로 많이 나빠지더라구요.
그러다가 14년 6월에 림프암 진단을 받고 길면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하루 하루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더니 어느날 사지마비가 오고 누워서 배변을 하는 상황까지 오더라구요.
식음마저 전폐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모습이 되었어요.
처방받은 약은 더이상 듣지도 않고, 통증이 심했는지 가족들이 안 보이면 생전 듣지도 못해본 비명을 지르고,
가족들이 근처에 있으면 앞발을 가족들 손에 쥐어줘놓고 숨만 쉬곤 했어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고민끝에 병원에 안락사 요청을 드렸었지요.
녀석의 덩치가 많이 크고 병원까지 이동할 상황이 못되어서, 사정설명후 출장요청을 드렸었어요.
의사선생님의 출발 연락을 받고 오시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었어요.
잘하는 행동일까. 평생 후회하지나 않을까.
이 녀석의 목숨줄을 내가 끊어버릴 권리가 있나. 얘는 죽고싶지 않을텐데. 등등등
울면서 계속 미안하다고만 했네요. 담 생에 꼭 다시 만나자고.
의사 선생님이 결국엔 도착하셨고.
십몇년동안 살면서 단 한번도, 단 한순간도 그 어떤 사람을 향해서도 으르렁거린적이 없던 녀석이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사선생님을 향해 으르렁 거리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녀석은 알고 있었나봐요. 자기가 죽는다는거.
제 선택이 잘못 되었을까봐 의사선생님께 이제 맞는 행동인지 여쭤보니 더 붙잡고 있는건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너무 많이 힘들어하는 상황이라며 제게 말씀해 주시더라구요.
매우 짧기만한 2분도 채 안되는 순간에, 링거에 마취제가 투여되고, 안락사 약도 투여되고.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하던 숨결은 멎었지요.
어쩌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매우 짧았던 가족의 인연이 끝이 났어요.
끝을 준비할겸 알아봐둔 애견 장례업체에 가족들 함께가서 작별인사를 마지막으로 했어요.
크고 듬직하던 녀석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작은 도자기에 담겨진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왔네요.
이후 시골 감나무 아래에 녀석의 안식처를 마련해주었지요.
14년 여름에 그렇게 녀석을 보내고 만2년이 지났어요.
요즘도 우리 가족들은 녀석을 많이 그리워하고 추억한답니다.
이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평생 잊지않고 기억해주는 일 밖에 없지만,
가족으로 지낸 시간동안 참 행복했었네요.
반려동물과 함께하시는 분들, 매일 행복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