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스런 110년전 역사의 반복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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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은 헤이그에서 일본과 열강들의 방해로 사행(使行)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1907년 7월 19일 이위종ㆍ윤병구ㆍ송헌주 등과 함께 네덜란드를 떠나 영국에서 3일간 머문 다음 8월 1일 미국 뉴욕에 도착하였다.
이상설은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을 만나 고종황제의 친서를 전달하고자 워싱턴을 방문했으나 루즈벨트는 면담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설은 미국은 1882년(고종 19) 조선과 국교수립과 통상을 목적으로 ‘조ㆍ미 수호통상조약’을 통해 어느 일방이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게될 경우 공동대처한다는 점을 알고서 일제의 침략사실을 알리고 지원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가츠라 - 테프트밀약을 추인하는 등 이미 일본의 이익에 앞서고 있어서 이상설의 면담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이상설은 미국은 1882년(고종 19) 조선과 국교수립과 통상을 목적으로 ‘조ㆍ미 수호통상조약’을 통해 어느 일방이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게될 경우 공동대처한다는 점을 알고서 일제의 침략사실을 알리고 지원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가츠라 - 테프트밀약을 추인하는 등 이미 일본의 이익에 앞서고 있어서 이상설의 면담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