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역사는 반복됩니다.
[보도연맹, 끝나지 않은 비극 ①] 유족 정해도 씨 "녹차밭서 시신 수습
"제 고향이 전남 보성이에요. 어릴 때니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죠. 그해 전쟁이 터지고 아버님이 경찰 손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어머니께 들어서 알고 있었죠. 아버님이 스물일곱 살에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지금까지 저 하나 바라보고 사셨어요. 스물다섯 살에 홀로 되신 뒤 90세를 넘기신 지금까지 저와 함께 살고 계시죠."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에서 신고를 받지 않았다면 정 씨는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2006년으로 기억합니다. 전쟁 당시 국가권력으로부터 재판 없이 목숨을 잃은 경우 신고하라는 내용을 신문에서 봤죠. 신고를 하고 이리저리 파보니 제 아버님이 보도연맹 소속이셨더군요. 돌아가시고 60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된 겁니다. 그렇게 마을에서 아버님과 함께 돌아가신 한 분도 찾았죠."
이듬해인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과 손잡을 수 있다며 무차별적으로 붙잡아 재판 없이 학살했다. 당시 학살에는 주로 각 지역 경찰 병력이 동원됐다.
정 씨의 어버지 역시 마을 이장을 지낸,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다.
"과거사위에 신고를 해놓고 어머님께 여쭤보니 아버님이 보도연맹 소속이셨다더군요. 제 아버님을 비롯해 아홉 분이 경찰에 의해 보성 녹차밭에서 손이 묶인 채 돌아가셨다고요. (한숨) 어머님 말씀으로는 전쟁이 터지고 보성 회촌지사라는 곳에 보도연맹원들을 모두 모이라고 했답니다. 경찰은 그곳에 아버님을 비롯해 사람들을 꽤 오래 구금하면서 밥조차 주지 않았죠. 어머님이 밥까지 해서 나르셨다고 해요."
"유족들을 찾아다니면서 느낀 게 보도연맹 사건을 너무 모른다는 거였죠. 그 사실을 알던 유족들도 이제는 다들 돌아가신 상황에서 밑에 자손들은 부모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영영 모르게 됐습니다. 알더라도 혹시 뭐가 잘못 될까 쉬쉬하던 일이었으니까요. 당시 신고기간이 1년이었는데, 전체의 10분의 1도 신고를 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부모님 시신도 못 찾았는데, 여전히 알리기를 두려워 하는 분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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