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권력화, 그리고 약자를 위장한 자들의 횡포
2016.06.14
주말에 덕수궁-서울시청 광장-광화문 광장-경복궁을 걸어서 시내 투어를 하는데 괜히 심기가 뒤틀려지는 것이 있어 궁 투어의 감상이 반감되어 지더군요.
약자들의 권력화가 임계점에 온 듯하고, 우리 사회가 약자들의 비합리적 요구를 무차별하게 수용해 줌에 따라 약자(피해자) 코스프레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1. 덕수궁 석조전과 고종
오랜만에 덕수궁을 찾아 초여름의 시내 청취를 느껴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덕수궁보다 훨씬 넓게 느껴지고 녹음도 깊어져 경내를 걷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석조전의 1층(반지하)에는 석조전의 내력과 고종의 행적을 담은 자료실이 있어 처음으로 들러 보았습니다. 최근에 꾸며진 것으로 보이는데 내용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저는 불쾌감이 밀여들여와 조금 전의 산뜻한 덕수궁의 청취가 기억에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고종을 옹호하거나 업적이 많은 인물로 자료를 배치해 놓은 것에 반감이 생기더군요. 과연 저런 자료들을 보고 국민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우리의 구한말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지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료실 한 곳의 정중앙에 대한제국의 국가(애국가) 가사를 크게 써 놓았는데 저는 그걸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석조전 자료실에는 대한제국 애국가가 고전 한글로 표기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현재 용어에 맞게 풀어 써 보겠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황제를 도우사,
만수무강하사,
큰 수명의 수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엄과 권세를 천하에 떨치사,
오천만세에 기쁨과 즐거움이
날로 새롭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여러분들은 대한제국 애국가를 읽어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인터넷에는 이 애국가를 일제가 부르지 못하게 했다고 비난하는 글들이 많이 보이지만, 저는 저 가사를 보고 혀를 찼습니다. 바로 이웃의 일본은 메이지 유신 후 입헌군주제를 실시하고 의회를 구성하는 등 근대화를 이루고 있는데 시대에 역행하는 전제군주국임을 당당히(?) 내세우고 저런 가사의 애국가를 국가로 지정해 부르게 했다는 것에 고종이 좋게 보이지가 않더군요.
1884년 김옥균의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켜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려 하자 이에 완강히 반대하고 청나라 군대를 들여와 진압한 것이 고종이죠. 그 때에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우리 근대사에서 아쉽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이 대한제국 애국가와 그 옆의 ‘대한국국제‘를 읽어 보고는 한층 더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래는 대한제국의 헌법격인 ‘대한국국제’의 1조부터 4조의 내용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죠.
제1조 대한국은 세계만국의 공인되온바 자주독립하온 제국(帝國)이니라.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으로 보면 500년 전래하시고 이후로 보면 만세에 걸쳐 불변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
제3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무한하온 군권(君權)을 향유하옵시나니 공법에 말한 바 자립정체이니라.
제4조 대한국 신민(臣民)이 대황제의 향유하옵신 군권을 침손할 행위가 있으면 그 이미 행한 것과 아직 행하지 않은 것을 물론하고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인정할지라.
‘대한국국제’가 저러니 대한제국의 국가(애국가) 가사가 저럴 수밖에 없겠죠. 전제군주국임을 당당히(?) 표방하는 저 ‘대한국국제’가 무엇이 자랑스럽다고 돈 들여 정성(?)을 다해 청소년들이 보도록 전시해 놓았는지....
격변하는 세상에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누가 이길지를 점술가를 불러 물어보던 한심한 인간이 황제를 칭하며 전제군주국을 선포한 것이 무엇이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태국이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이 없었던 국가로 잘 알려져 있고, 이렇게 된 배경에는 당시의 태국 국왕의 현명한 처신이 있었습니다. 태국 국왕은 의회를 구성하고 비준권을 의회에 줌으로써 자신(태국 왕)만을 압박하여 합병이나 식민지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을 일본이 합병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한제국이 전제군주국이며 위에 ‘대한국국제’를 보아 알 수 있듯이 모든 권한이 황제(고종)에게 있었기 때문에 고종(대한제국 황제)의 동의만 얻으면 합법적으로 합병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1905년의 을사 보호조약도 마찬가지이구요. 만약 갑신정변이 성공하여 입헌군주제로 법제가 확립되어 있었다면 일본도 쉽게 보호조약이나 합병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태국 국왕이나 왕가가 아직도 태국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쿠테타가 자주 일어나도 국왕의 권위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석조전 자료실을 둘러보면 우리의 청소년들이 고종과 구한말의 역사를 오해하기 딱 좋습니다. 고종은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고, 일제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약자이며 피해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기록물들을 전시하더라도 제대로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런 식의 전시가 횡행하니까 민비를 ‘조선의 국모’라며 ‘명성황후’라는 뮤지컬이 버젓이 국내 뿐아니라 세계에 공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외세를 끌어들여 자신의 안위만 챙겼던 인물인데 말입니다.
2. 서울 시청 광장의 ‘퀴어 축제’
6/11부터 서울시청 광장에서 동성애자들의 ‘쿼어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동성애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퀴어 축제’ 방식에는 반대합니다. 먼저 링크하는 글에서 현재 ‘퀴어 축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m=search&p=41&b=bullpen2&id=2752359&se...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성소수자로서 그 동안 불이익을 받아 왔고 자신들의 성정체성에 따라 표현하는 행위를 제약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며, 아직까지도 사회적 인식이 곱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마음껏 발산하고 자신들의 축제를 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왜 벌건 대낮에 서울시청 광장이라는 공공 장소에서 저런 행위들을 보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성애자들이 축제를 열고 저런 행위를 보인다면 ‘퀴어 축제’를 하는 동성애자들도 문제없다고 할까요?
아이들도 함께 있는 공공장소에서 성기를 드러 내놓고, 음란물을 전시하는 것이 그들의 사랑방식은 아닐 것입니다. 저것은 엄연히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이며, 반사회적 행위입니다.
자신들이 약자이고 소수자이기 때문에 저런 행위들을 용납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 아닐까요? 이성애자들이 저런 짓을 공공장소에서 하면 경찰의 단속을 받아야 하듯이 저런 저들의 행위 역시 동등하게 처벌 받아야 합니다.
‘퀴어 축제’ 주변에서 축제를 반대하며 ‘동성애 OUT, 이슬람 OUT'을 외치는 보수 기독교인들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렇게 노골적 행위를 하는 동성애자들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런 행위들이야 남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 자기들끼리 하면 될 일을 굳이 남에게 혐오감을 주며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동성애자들이 저런 일탈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사랑을 동성간에 나누고 있을 것이라고 보지만 저런 모습들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오히려 장애를 주고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3.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과 ‘민주노총 집회’
서울 시청 광장을 거쳐 경복궁으로 향하는 길에 광화문 광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아직도 세월호 사고 유족들이 천막을 치고 점거하면서 서명을 받고 있더군요. 세월호 사고가 난 지도 2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은 광화문 광장을 독점하다시피 점거하고 있습니다. 엄연한 불법 행위이고 서울시는 저 천막들을 철거하여 서울시민들에게 광화문 광장을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박원순은 불법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철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고와 서울시가 직접 관련이 있는 것도 없는데 팽목항은 뻔질나게 갔다 오지만 구의역의 스크린 도어 사고와 같은 재발방지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무얼 기대하겠습니까?
세월호 유족들은 국민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제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국민들도 약자,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피해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피해자나 약자가 이를 계기로 권력화 되는 것까지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의 선의와 배려가 세월호 유족들의 권리가 아님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광화문 광장의 뒤쪽에는 노동단체(민주노총)의 집회가 진행되고 있고, 서울경찰청 쪽 거리에서 집회장으로 이동하는 한 무리가 있더군요. 그들의 머리띠와 피켓을 보니 귀족 노조라고 할만한 직장의 직원들이었습니다. 통폐합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 회사(단체)는 비효율성과 방만 경영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월 140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과 크로스 되면서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말았습니다만,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유행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게 먹히고 있다는 것에 걱정이 앞서더군요.
4. 총독부 건물과 김영삼, 그리고 동관묘
광화문 광장을 지나 드디어 경복궁에 입성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올 때마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총독부 건물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독부 건물은 건축 당시에는 아시아 최고의 건축물이었고, 80년대까지 현존할 때까지도 건축물로서의 가치가 매우 컸으며, 경복궁과 더불어 유적물로 서울을 관광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지요.
혹자는 우리나라의 식민시대의 상징물이고 일제에 의해 건축된 건물로 우리 역사의 수치라고 생각하여 헐어버린 것을 잘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일제 식민지의 역사도 아프지만 우리의 역사임으로 그 시절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보존해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수치스러운 역사이니까 없애버리자고 주장한다면, 원의 속국 시절의 고려 유적이나 중국의 제후국(속국)이었던 조선시대 유산들도 모두 없애자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면 관우를 모신 사당인 동관묘가 있습니다. 1호선과 6호선 환승역인 동묘가 바로 이 동관묘를 뜻하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이사 온 지 3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집 앞의 동관묘에 가 보지 않았습니다. 역사 유적이라면 관심을 갖고 유심히 살피는 제가 집 앞의 동관묘를 찾지 않은 이유는 동관묘의 유래와 그 곳에서 벌어졌던 슬픈 우리 역사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관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장수 진린과 양호가 관우의 음덕으로 왜군을 물리쳤다고 생각하여 성 밖에 여러 관우 사당을 짓게 한 것 중의 하나로 명나라의 건축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원군으로 온 명나라의 대장군인 이여송도 아니고 그 밑의 장수들이 관우를 숭상해 조선 조정으로 하여금 관우 사당을 성 밖 여러 곳에 짓게 한 것도 사대성이 강해 보여 좀 찝찝하기도 하고, 이 이후 조선의 무관들은 모두 관우 사당을 의무적으로 참배해야 했던 것과 조선 사회에 관우 신앙이 퍼진 것도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동관묘가 이런 유래 정도만을 갖고 있다면 제가 그렇게 반감을 갖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동관묘가 건축(1601년)된 지 300년이 지난 1884년 갑신정변 즈음에 청이 조선 민중들에게 자행한 일들을 생각하면 동관묘에 대한 생각은 달라집니다.
개화파에 의한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개화파들을 진압하기 위해 고종과 민비는 청에 구원를 요청했고 청의 원세개(위안스카이) 군인 일부가 동관묘에 주둔했습니다. 동관묘에 주둔한 이 원세개의 군인들이 인근 부녀자들을 납치해 욕을 보이고, 치욕을 당한 아녀자들이 목숨을 끊고 원귀가 ‘원청(怨淸)’하면서(원청이 언청으로) 울며 헤맸다고 합니다. 이런 원세개 군대의 횡포와 악행 때문에 인근의 집들이 모두 이사를 가버리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조선 민중의 고통과 역사의 치욕이 서린 곳인데 주변 사람들이 동관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김영삼의 역사인식이라면 총독부 건물보다는 이 동관묘를 먼저 없애버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주변 사람들의 민원도 많이 제기되고 있었고 동관묘 때문에 주변 개발이 제한 받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동관묘가 우선 철거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아직도 동관묘 주변은 개발이 늦어져 이 곳이 정말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슬럼화되어 있어 흉측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항상 외침만 받았고 이웃을 침략하지 않은 나라인데 일본이 침략하여 우리를 약탈했다는 피해자 인식과 우리의 잘못보다는 외세에 그 책임을 물으려는 얄팍한 역사인식이 총독부 건물 철거를 역사 바로 세우기나 민족 자존심 앙양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조선 총독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조선 민중들을 핍박하고 수탈하던 기관만은 아니었습니다.
일제시대 동안 조선에서 거두어들인 세수보다 세출이 많아 예산이 부족할 경우가 많았는데 조선총독부는 그 부족분을 일본 본국으로부터 보충해 받았습니다.
조선의 쌀 수출량이 증가됨에 따라 일본의 쌀값이 하락하자 일본 내의 농민들이 조선으로부터 쌀 수입을 금지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일본 의회도 조선총독부에 쌀 수출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조선총독부는 본국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조선의 농업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조치였습니다. 조선의 쌀이 수출됨으로써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민족 자본이 형성되는 기회가 생겼고, 조선의 자본주의도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본국으로부터 예산도 지원받고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쌀 수출 중단 요청도 거절한 것을 두고 우리는 수탈이라고 표현하며 일본을 비난하고 있죠. 참 한심한 역사 이해입니다.
우리의 피해를 극대화 하여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피해자, 약자 코스프레로 우리의 잘못은 숨기고 책임은 회피하려는 비겁한 생각들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 중심의 편향된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5. 약자와 소수자의 권력화가 트럼프 돌풍의 배경이다
미국 대선에서 인종주의적 발언을 예사로 하는 극우적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죠. 저런 인물에 대해 미국 국민들이 왜 지지를 하는지 우리 국민들은 그 내면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트럼프를 몹시 싫어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의 인종주의, 고립주의, 미국 중심주의, 이슬람 비난에 동의해서 지지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 지지의 배경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미국의 현재 상황이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어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 국적이 아닌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미국 국가를 부르지 않도록 하는 주가 나오는가 하면, 다른 종교(특히 이슬람)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때에 캐롤을 가게에서 틀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택배회사에 근무하는 이슬람 청년이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운송(택배)하는 것을 거부하자 이 회사는 이 이슬람 직원을 해고했는데, 법원으로부터 해고가 부당하다며 24만 달러의 보상금 지금을 명령 받은 일도 있다고 합니다. 불법 이민자들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도 미국 서민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소수, 유색인 종에 대해 입학 혜택을 주는 등의 Affirmative Action에 대해서도 불만들이 쌓이고 있구요.
이런 일련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혜택들이 점증하여 그것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손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진짜 배경입니다.
대외문제에 있어서도 왜 미국이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책임져야 하느냐, 신흥국가와의 무역적자를 언제까지 감수해야 하느냐, FTA로 미국만 손해 본다는 생각들이 생기는 것도 미국이 약소국에 대한 배려로 미국이나 미국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트럼프가 캐치해서 대선에 이용해 먹고 있는 것이죠.
미국 국민, 특히 서민 및 중산층 계층에서 가지고 있는 이런 인식들은 모두 객관적 사실에 기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 해법도 바람직한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배경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사회가 분열하고 계층간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됩니다. 트럼프 지지 배경에 대해 우리도 한번 쯤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성적, 합법적, 상식적 범주를 벗어난 약자나 소수자의 요구에 대해서는 냉정한 거절이 필요합니다. 어설픈 동정심이나 포퓰리즘으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면 결국은 약자나 소수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제 글을 오해할까봐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말거나 늘리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하고 비이성적 요구들에 대해 단호하게 대하되, 진짜 보호 받고 배려가 필요한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임을 분명히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