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나이 50이예요.
요즘 또 오해영을 보면서 구구 절절 가슴 아픈 사랑에 제 가슴도 아려오고
덧없이 지난 제 청춘도 아련하고 그래요.
뭐하고 살았는지.
응팔을 보면서도 지난 날 생각하면 거기 나온 음악들도 당시 상황들도 다 여렴풋하고
청춘을 너무 우울하게 보내서 눈부시게 빛나던 시절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신나게 재미나게 사셨어도 이 나이가 되면 이런 기분이 드는건지...
어릴적 폭군이신 아버지 밑에서 맨발도 내놓기가 어렵고 무서워 한여름에도 양말 신고 무릎꿇고 앉았었어요.
아버지가 마루에서 제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너무 무서워서 이유도 모르고 눈물부터 흘리구요.
밥상 들러 엎는 거 수도 없이 봤고,
밤새 아버지 힘든 인생살이 한탄 술주정에 혼나고 들들 볶이다 새벽 서너시가 되어 퉁퉁 부은 눈으로 잠들어
다음날 학교 가기 너무 싫었던 날도 많았어요.
고3 때 공부 공부 그리 들볶으시면서도
일주일에 몇번이나 계속되는 술주정에 하루는 저도 모르게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싶고
인생이 엿같고 미친 짓같아서 폭언을 퍼붓는 아버지 앞에서 웃었어요.
아주 크게. 미친년 처럼. 그렇게 무서워하던 아버지 앞에서.
처음으로 따귀를 맞았죠. 물론 그전에도 폭력은 술주정에 간혹 동반은 됐었지만 따귀를 맞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도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 아니고 당신들의 욕망으로 낳아놓고 너희들 짐스러워 죽겠다며 미친듯이 괴롭히니 우스웠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 제가 고3인 기간에는 주정이 많이 줄었었죠.
자식 다섯 대학까지 보내주셨고 많은 식구 책임지시느라 그 책임감에 많이 눌리셨던 아버지셨죠.
중고생 대학생 때까지 티비를 전혀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가끔 응팔이나 응사 뭐 이런 드라마를 하면 당시 유행 연예인이나 노래를 거의 따라부르지도 못하고 잘 몰라요.
설상가상 아버지가 하던 일이 망해서 일곱식구 단칸방에 나앉은 날도 있었는데
그날 웃목에서 자던 제 위로 벽선반이 무너지던날 초등6학년 어린애였던 전 잠결에 얼굴과 온몸으로 쏱아지는 짐덩어리들 때문에 아픈것보다 이대로 죽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어요. 그때 아파트 5층에 살았는데 5층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창밑을 내려다 보던 제가 생각이 나요. 고작 6학년이었는데....
중고생 때 들들 볶이며 공부하고 그나마 서울에 쓸만한 대학 들어간 이후 입학식 다음 날 부터 새벽6시면 방문을 막 두드려 대신 아버지. 취직할려면 지금부터 정신차리라고. 아버지가 집에 계신 날에는 항상 가슴이 눌리고 답답해서 밥먹을 때아니면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밥은 무조건 같이 먹어야 했지만 평소 딸 얼굴을 통 볼 수가 없으니 밥상머리는 맨날 혼나는 자리였지요.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고는 학자금 융자 갚느라 멋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고,
자식새끼랑 남편 사이에 눈치 보느라 만신창인 엄마의 터진 손을 보면
이쁜 옷이고 뭐고 죄책감이 들어 아무것도 못했어요.
나름 꽤 봐줄 만했는지 여고 때 자율학습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몇몇 따라오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애들이 무서워 아버지께 도움을 청했는데
그 아이들이 혼난게 아니라 행실이 똑바르지 못해서 그런다고 혼쭐을 내시더군요.
미남형이셨 아버지가 그 와중에 바람이 나서 그 여자를 집 안마당까지 데려왔던 일은 지금도 경악하게 해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 외모를 제가 제일 닮았다는거.
엄마는 절 집요하게 미워하거나 하시진 않았지만
저를 눈에 없는 자식처럼 생각하셨어요 .아버지 닮아 아빠사랑 받으니 넌 그걸로 됐고 엄마는 불쌍한 내 새끼들만 챙기겠다고.
한 번도 제가 예쁘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그래서 과팅이나 동아리 활동이나 이런 걸 통해서 많은 대쉬를 받았는데
전 속으로 니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좋다고 울고 매달리냐. 이 속없는 녀석들아 싶었어요.
전 인생은 회색빛이며 애쓰며 살아갈 이유를 어찌해도 찾을 수가 없어 끊임없이 갈등하고 좌절하는 제 자신을 달래고 위로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있는 제 속은 못보고, 말꼬롬이 앉아서 자기 앞에서 웃어주는 제 얼굴만 보고 그러는 애들이 한심했어요.
그러니 이 지옥같은 집을 벗어나기 위해서 결혼을 해야한다는 생각 따위는 할 수도 없었어요. 결혼은 지옥이니까.
어릴 땐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면 매일 아버지가 가다가 사고가 나서 죽어서 안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매일 우리 부모님은 왜 이혼을 안하나 생각했으니까요.
그나마 서른 넘어 옮긴 직장에서 너무도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많이 인정받고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지금 남편도 만나고 결혼이란걸 했지만
문득 문득 어린시절에 무기력감이 제 삶의 근저에서 한없이 저를 짓누르고
여전히 삶은 내 선택이 아닌데 마지 못해 살아내야하는 짐처럼 여겨져요.
아이들 때문에라도 행복한 미소를 가지고 살아야지 하다가 이제 아이도 제법 크고 이리 나이를 먹으니 그 꽃다운 시절 가슴 저린 사랑 한번 제대로 못하고 늘상 도망만 다녔구나 싶네요. 나이트도 딱 두번 가봤어요. 20대에 찢어지는 듯한 음악에 근심을 내려 놓은듯 즐기는 모습에 전 한번도 그 음악들에 몸이 맡겨지질 않더군요. 아무리 떨치려해도 짓눌리는 짐이 벗어질것 같지 않았어요. 정말 아름답고 또 재미있는 일이있도 함박웃음이 지어지지 않았어요.
엠티에가서 아무리 즐거워도 난이제 끝나면 지옥으로 들어가야하는데 싶은 눌림....
서른이 넘어도 시집을 못가는 저를 보면서 늘 입버릇 처럼 언니는 내가 너 같이 생기면 결혼을 열번도 더 했을꺼라고 얘기했었죠.
지금이야 팍 퍼진 아줌마 됐지만 한참 때 길거리 캐스팅도 받을 외모를 갖고도 남자라면 치가 떨리고 믿을 수가 없어서
3년을 학보통에 편지를 보내며 눈물 바람하던 애도 외면하고 얼음공주마냥 지냈어요. 왜 그 꽃처럼 이쁜 나이에 신나게 연애도 해보고 놀기도 해볼 것을 연애는 두렵고 결혼 안할꺼면 만나는 것도 죄고 뭐 이런 생각으로 눌려 지냈는지...
요즘 오해영을 보면서
서해영이 저리 절절히 사랑하고 남자한테 매달리면서도 당당한가 싶어요.
꽃다운 시절 가슴 저린 연애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이젠 다 늙은 아줌마로 초라하게 늙어가는게 너무 속상하니
자꾸 드라마 속에 빠져들어 현실을 도피하게 되요.
퇴직한지 얼마 안되서 쉬면 좋을 것 같았는데
드라마에 빠지는 사람 전혀 이해 안되더니 제가 그꼴이네요.
도경이도 실존하는 인물도 아니고 드라마는 환타지 일뿐인데
그 환타지에 마약처럼 빠져들어 점점 제 일상이 너무도 싫어지네요.
젊어 한때 재미있게 신나게 지내셨던 분도 이 나이 먹으면 이런 생각하시나요?
과거의 저를 지금의 내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위로해줘야
새로운 인생이 살아질텐데,
그 속에서도 죽지 않고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와서 잘 한거라고 얘기해줘야할텐데....
자꾸 후회만 되요 .
한심하다 질타마시고 그냥 어딘가에 쏱아내고 싶은 한풀이니 양해해주세요.
늦은 밤 무거운 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