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수다에요.
얼마 전 이른 오후 어디 가야하는데 비가 왔어요.
버스 10분쯤 타고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중간에 또 환승하고 내려서 한참걷고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택시를 탔어요.
60대 정도로 보이는 기사분께
"##동 %% 아파트 정문에 가주세요"
행선지를 말하고 가만히 있는데 5분쯤 지나자
말을 거시더군요.
"애기 몇명있어요?"
"둘이에요"
(사실 전 아이가 없는데 ...애없다고 말하면
피곤하게 이야기가 흘러가서 1회성 만남일 때는
그냥 애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ㅠㅠ
하나라고 대답하면 ㅎㅎㅎ ....하나 더 있어야한다고
일장연설이 시작되기 쉽상이라서 둘이라고 해요)
손자들이 초딩인데 학원을 꼭 여러군데 보내야할까요?
라고 상의하듯이 질문을 하셨어요.
초등학생 남자 손자가 두명있는데 애들 학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본인이 매달 원조하고 있다고...
그런데 저는 어르신들 말을 액면 그대로 안 들어요.
언제나 자랑하기 위해서 질문하는 척 판까는 것일 뿐...ㅎㅎ
본인 자랑에 손자 자랑으로 이어지겠다는 촉이 왔는데
저는 남의 자랑 듣는거 싫어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냥 재밌게 들어줍니다.
예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더군요.
택시는 취미로 할 뿐이고 임대료가 많이 들어와서
그것믿고 며느리가 손자들 학원을 여러군데 보낸다.
그리고 손자들이 공부를 잘 해서 학원을 끊을 수도 없다.
애들이 어디어디서 상받고 영재소리듣고 등등...
이까지는 흐뭇하게 들었어요.
그러더니 기사분이 갑자기 정치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저는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서요"라고
말을 끊었어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않아요.
625 전쟁이 어쩌고 빨갱이가 어쩌고 하시는데
멍~~ 전화벨 어플 이용해서 전화가 걸려온 척
하면서 대화를 끊었어요.
방금 전까지 귀한 아들 둘에 공부 잘하는 손자들
자랑을 행복한 표정으로 하던 분이었는데
갑자기 우리나라 인구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전쟁을 안 겪어봤으니까 빨갱이들 찍고 난리지...
인구가 절반은 줄어야하니까
다시 625같은 전쟁이 꼭 일어나야한다고
농담조도 아니고 진지하게 반복반복....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얼른 내렸어요.
아들 며느리 손자들 사랑이 지극한 어르신이
도대체 왜 전쟁나서 인구 절반이 사라져야한다고
열변을 토하시는건지...
그러면 당장 자기 자식들도 반은 사라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