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총선에서 성과를 거둬서 그런가? 최근 호남주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이를 지역주의라 비판하는 이들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 역시 한층 날카로워졌다. 얼마 전 <프레시안>에 어느 ‘호남 누리꾼’이 쓴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들의 멘탈리티가 어떤지 보기 위해 원문의 일부를 인용한다.
“호남이 지역주의에 매몰됐다고 준엄하게 꾸짖는 지식인들, 그들의 호적을 좀 살펴보자. 어이쿠! 영남 출신이 태반. (…) 호남이 안철수와 야합을 한다고 뜬금없이 꾸짖은 어떤 원로 지식인의 고향이 슬슬 ‘유사 경상도화’되어가고 있는 신(新)새누리당 텃밭 충청도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 대표적인 이가 ‘경북’에 소재한 동양대학교 교수 진중권.”
‘영남 출신이 태반’이라는 표현을 뒤집으면 ‘비(非)영남 출신이 태반’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다 영남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충청도가 ‘신새누리당 텃밭’이라고 졸지에 “유사 경상도” 사람이 되고, 진중권은 동양대가 영주에 있다고 졸지에 “경북” 사람이 된다. ‘호적결정론’이라 해야 할까?
‘호적’을 아예 제 정체성으로 알고 살아왔으니 남들도 다 그럴 거라 아무 의심 없이 믿는 것일 게다. “지금껏 호남의 공짜표로 재미를 봤는데, 앞으로 표 값을 내야 할 것 같으니 화가 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이해는 고마운데, 내가 “호남의 공짜표”로 무슨 재미를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말 속에서 “공짜표”나 “표 값” 같은 표현에 주목하라. 그 속에는 호남주의자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들어 있다. 즉, 정치란 ‘표의 대가로 이익을 보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 시각에 따르면 “호남 정치인들이 호남의 이익을 내세우는 것은 정치학적 관점에서 하등의 하자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행태”가 된다.
내가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가 착각하듯이 ‘공짜표 먹다가 표 값 낼 처지가 된 것이 화가 나서’가 아니다. 정치를 표 받고 돈 주는 걸로 생각했다면 애초에 정치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게다. 나는 그저 정치를 ‘표의 대가로 이익을 주는’ 것이 “하등의 하자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행태”라는 호남주의자들의 인식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정치행태를 흔히 ‘클리엔텔리즘’(clientelism)이라 부른다. 클리엔텔리즘이란 “선거 지지를 위한 보상으로 개인 또는 집단에 약속한 공공의 이익을 분배하는 것”, 한마디로 표 받은 대가로 예산을 퍼주는 것을 의미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 사실 클리엔텔리즘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선거철만 되면 여야 모두 지역공약을 쏟아놓는 것을 보라.
문제는 이게 “하등의 하자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행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 ‘후견인(patron)-고객(client)’ 관계의 바깥에 있는 집단은 공공의 이익의 분배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정의를 해친다. 그 극단적 예가 바로 호남주의자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영남패권주의가 아닌가.
클리엔텔리즘은 “정상적인 정치행태”가 아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정치적 미성숙’ ‘부패의 한 형태’로 간주되며, 정치의 현대화와 더불어 줄어들거나 사라져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클리엔텔리즘은 ‘보스-부하’의 모델 위에 서 있기에 정치인-유권자의 관계를 두목-부하의 관계로 전락시킨다.
논점은 이것이다. 클리엔텔리즘을 “하등의 하자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행태”로 보느냐, 아니면 그것을 ‘궁극적으로는 척결해야 할 비정상’으로 보느냐, 이것이 호남주의 논란의 핵심적 논점이다. 여기에 대해 호남주의자들은 아주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 얼마나 확고하냐 하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호적까지 바꿔놓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사실 클리엔텔리즘을 슬쩍 선거전략으로 활용하는 집단은 많아도, 그것을 아예 정치 강령으로 내세우는 집단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솔직히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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