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을 무력으로 파괴할 수 있지만 한국 등 우방국 보호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공격을 직접 언급하면서 ‘파괴’라는 표현까지 썼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따금씩 나온 북한 비판 발언과는 궤를 달리 하는 수준이다.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이 북핵 문제로 아무리 골머리를 썩는다 해도 그렇지, 한참이나 도를 넘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갈등과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북한을 공격하면 어떤 재앙적 결과를 낳을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전투기가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고, 북한의 방사포가 한국으로 넘어오는 시나리오가 얼마든 현실화될 수 있다는 애기다. 심각한 충돌을 초래할지도 모를 발언을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함부로 해도 되는가. 미국이 거절하면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북한도 최근 미국에 대해 대화 가능성을 타진한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극단적인 발언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다.
군사적 능력은 충분한데, 우방국을 위해 참는다는 식의 발언도 문제다. 미국이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클린턴 전 대통령 회고록 등에 따르면 미국이 과거 북폭을 검토했지만 주한미군 등의 피해도 크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오자 이를 철회했다고 한다. 북한 공격 여부도 단지 군사력 뿐 아니라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한국을 생각해 참는다는 식의 발언은 사실과도 맞지 않을 분 아니라 허세에 가깝다.
이번 발언은 또한 우리의 주권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오바마 대통령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한반도 구성원의 생존이 달린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한국이 결정해야 하고,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주권이다. 미국이 언제든 전쟁을 결정할 수 있다거나, 마치 시혜라도 베풀 듯 이를 유보하는 판단을 내릴 문제가 못된다. 그의 말대로 ‘우방국'을 염두에 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려 한다면 이번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진보 성향이 강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국내 진보세력도 큰 관심과 호감을 보일 정도로 기대가 컸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 앞에서는 기존 정부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과 같은 극단적 발언까지 나왔다. 미국 내에서는 아무리 진보라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 스스로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