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3대 대선의 참화가 재현되는지도 모르겠다.
1987년 12월의 13대 대선!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총칼로 정권을 강탈한 전두환이 박정희의 유신헌법에 분가루만 살짝 발라 “5공 헌법”으로 개헌을 하고 장충체육관에서 허수아비 모아놓고 도끼눈깔을 부라리며 거수기들의 손을 들게 해 짝퉁 대통령(12대)에 당선되었다.
<유신헌법>과 <5공 헌법>은 2난성 쌍둥이로서 99%가 같고, 단지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임기가 4년이고 무제한 출마가 가능하지만, 5공 헌법은 7년 단임인 것만 틀린다.
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로 끌려가서 수사관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순국을 하시고 나서 정국은 한치 앞을 점칠 수가 없었고, 평생 권좌를 누릴 것 같던 전두환의 임기 말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야당과 대학가에서는 “대통령직선 개헌”을 줄기차게 요구하여 정국이 폭풍 전야와 같았다.
당시는 88서울올림픽이 1년 반 정도 남은 시기로서 전두환이 직선개헌을 해서 야당에 정권을 물려주고 물러난다면 그 다음날로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의 죄목으로 엮여 들어갈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니 꼼수를 부려 “4.13호선조치”라는 것을 발표했다.
4.13호선조치의 이유인즉 서울올림픽 전에 직선제 개헌을 해서 국민직선으로 대통령을 뽑기에는 시기적으로 촉박하니, 현행 5공 헌법으로 장충체육관에서 거수기들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노태우)을 뽑고, 올림픽을 무사히 치르고 나서 새로운 대통령(13대)이 직선제 개헌을 해서 다시 새로운 대통령을 뽑자는 그럴 듯한 이유를 들이대며 그 쌍통에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4.13호선조치라는 것을 발표했다.
4.13호헌조치!
타는 불에 그냥 기름도 아닌 휘발유를 들이부은 꼴이었다.
전국이 활화산 같이 타 올랐다.
야당 학생 가릴 것 없이 전 국민이 “직선제 개헌!”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러다가 87. 6. 9일 연세대 이한열 학생이 경찰이 쏜 체루탄에 맞아 박종철 열사에 이어 다시 순국을 하고 이한열 열사의 순군이 기폭제가 되어 87. 6. 10일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고, 서울시내 거리라는 거리는 모두 시위하는 시민들로 꽉 채워졌다.
소위 “6.10항쟁”으로 표현하는 6월 10일의 시위가 얼마나 격렬하였는지 필자의 목격담을 하나 소개한다.
당시 필자는 남산 밑 명동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한전>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시위대에 의해 수많은 변압기기 불타고 정전사고가 수도 없이 빈발해 비상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6월 10일 밤 12시 쯤 도저히 입고 있는 옷이 땀에 절어 그대로는 근무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12시쯤 강서구 등촌동(당시는 양천구가 분구되기 전)에 있는 집엘 다녀오기 위해 사옥 건너 퇴계로 세종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려고 했지만 길거리는 통행금지가 내려진 것 같이 차량이 일절 통행하지를 않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걸어서 서울역고가도로(현재는 도로를 폐쇄하고 공원조성 공사를 하고 있음)를 건너는데 고가도로 위에 수많은 보도블럭과 돌멩이와 자갈이 1m이상의 높이로 쌓여 있어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었고, 어렵게 고가도로를 걸어서 건너 마포 공덕동 로터리까지 와서야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올 수가 있었다.
6.10항쟁을 겪은 전두환과 노태우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싶으니 6월 29일 소위 “6.29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게 대통령 국민직선에 5년 단임이 큰 줄거리인 현행 헌법이다.
그렇게 해서 대학생들의 목숨과 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12월)에서 어찌되었는가?
다 아시는 내용이니 긴 설명은 곁들이지 않는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로 전두환과 같이 법정에 세워 군사반란 죄로 치죄해야 할 노태우에게 <대통령 당선>을 진상하였던 것이다.
지난(투표 날)밤에 노태우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분통이 터져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 시피하고 다음날 출근하여 점심시간이 지나 사무실 유리창으로 무심히 퇴계로를 내려다보니 갑자기 명동골목에서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퇴계로 길로 뛰어 나오더니 화염병을 퇴계로로 던져 퇴계로 일대가 대낮에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바로 뒤를 이어 흰 화이버를 쓰고 흰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는 경찰(백골단으로 불렀음) 수 백 명이 뛰쳐나오자 대학생들은 썰물 빠지듯 다시 명동골목길로 숨어들고, 잠시 뒤 백골단들이 몇 명의 학생 목덜미를 잡고 개 끌듯 끌고 나와 닭장차에 대학생들을 밀어 넣었다.
아- 그때의 참혹함이라니!
아- 그때의 허탈함이라니!
차라리 하늘에서 불벼락을 내려 나라가 망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노태우가 미운 게 아니라, 김영삼과 김대중이 내 눈 앞에 있으면 때려죽이는 게 아니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두 김씨의 욕심과 고집 때문에 또다시 수많은 대학생들이 피를 흘리고 고생을 해야 될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런 경우 “죽 쒀 개 준다.”는 말로는 그 분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대신할 수 없다.
숨을 헐떡이시는 어머님을 위해 100일 기도를 하고 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일러주신 대로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가 100년 묵은 산삼을 캐서 정성껏 달여 그 산삼 달인 물을 한 숟가락만 어머니의 입에 떠 넣어 드리면 어머니가 언제 아프셨느냐는 듯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나셨을 터인데, 형제가 내가 떠 넣어드린다고 서로 사발을 잡고 실랑이를 하다 그만 산삼 다린 물을 땅바닥에 쏟고 말았다.
그 순간 형제가 싸우는 것을 멀끔히 바라보고 있던 이웃집 똥개가 와서 땅바닥에 쏟아진 산삼달인 물을 잽싸게 핥아 먹고 말았다.
아- 세상 끝 날이 이보다 더 비참하랴!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에게 목덜미 잡혀 끌려가는 심정이 이보다 더 참혹하랴!
4. 13총선!
아무래도 87년 대선의 참극이 다시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거-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이명박 - 박근혜 8년 피눈물을 흘리며 기다렸던 총선을 이렇게 날려 버려야 하나?
그래도 87년 그때 김영삼과 김대중은 국민들의 희망이었고, 민주화투쟁의 뿌리이자 기둥이었다.
지금의 문재인과 안철수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 둘이 김대중-노무현의 반에 반만이나 한가?
하늘이시여!
이 나라 이대로 놔두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