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 세남자들 모두 밖에 나가 있고... 혼자 느긋하게 놀고 있는 저녁이네요..
간단히 저녁을 먹고 주방정리를 하다 냄비 수납장 한구석에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치니
웃음이 베어나옵니다...
지름 10센티남짓되는 빨간색 범랑냄비....
예쁘긴 하지만 너무 작아서 어디다 딱히 써볼데가 없는 그런 냄비입니다..
이 작은 냄비가 제 주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된지 벌써 십오륙년은 훌쩍 넘었네요...
음전하고 조용했던 큰아들과 달리 부산하고 활동적이었던 작은아들놈이 네 다섯살쯤 무렵에..
아이와 같이 수입잡화점-그때는 여기 가서 구경하는 게 참 재미졌답니다. 외벌이 월급쟁이 가계라 넉넉치 않아
늘 구경만 했다는..
하여튼 시장갔다가 방앗간 못지나가는 참새모양 한번씩 들러서 구경을 했거든요..
근데 그날 우리 아들놈이 그 예쁜냄비를 건드려 떨어뜨렸답니다..
그래서 빨간 범랑손잡이에 콕하고 상처가 생겨버렸어요...
울며 겨자먹기로 정말 쓸모없을 것 같은 그 냄비를 사가지고 왔더랍니다.
쓸모도 없을 것 같은데... 가격은 왜이리 비싼지...
데려오고 몇년은 마음이 쓰려서 쳐박아두고 쳐다도 안봤답니다.
그때 울 작은 아들놈의 어쩔줄 몰라하던 표정...과
고개를 푹 숙이고 절임배추마냥 기가 죽어버린 꼬맹이가 이젠 군대도 다녀오고 엄마 설거지도 도와주는 늠름한
아들이 되었네요...
요즘엔 저 냄비와 눈이 마주치면... 그 날들이 떠오르네요...
종이장같은 체력에 아들 두놈과 씨름하고... 참으로 유별난 시댁식구들과의 화합(?) 시달리며 살아냈던 그 날들이요..
남편은 새벽에 나가면 열시이전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경기도에 조성된 신도시에 만삭으로 입주해서.. 다섯살 큰놈 손잡고 전입신고하러 한겨울 칼바람속을 40분 걸어갔던..
그시절말입니다....
우리 남편은 그 때 왜 휴가라도 써서 그런일을 해결할 생각을 안했었는지 말이죠...
그때 춥다고 힘들다고 투정 한마디 안하고 제손을 붙잡고 걸어주었던 우리 큰아들한테도
고마움이 솟구치네요. ㅎ ㅎ
그랬던 아들이 이제 삼년만 있으면 그시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답니다...
반백년 넘겨보니 인생이... 참 별게 없네요..
그리고 행복은 이렇게 떠오르는 추억들의 집합인 것 같습니다..
집앞 나무끝에 물이 올라 마치 보석인듯 반짝입니다..
다시 봄이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