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새누리당)와 김종인(더민주당)의 공천 - 실리와 명분
2016.03.14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그리고 국민의 당의 공천이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공천 내용을 보면, 이한구의 새누리당은 철저하게 실리 위주로, 김종인의 더민주당은 명분을 내세워 여론으로 세력을 만들어 가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한구는 초기엔 상향식 공천을 배제하고 우선추천제 등의 전략공천으로 능력 있고 참신한 인물 공천을 많이 해 현역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킬 듯이 치고 나갔지만, 대구/경북과 강남 등 새누리당 강세지역은 아직 발표하지 않고 다른 지역들은 대부분 공천 발표를 한 현 상황을 보면, 이한구의 강성 발언들이 무색할 정도로 현역 의원 공천 탈락자가 미미하지요. (추가 3/15, 3/14 밤에 서상기, 주호영 등 대구 현역 다선 의원들을 탈락시켰네요)
그런데 이한구의 공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미 짜여진 구도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한구는 소위 험지인 곳에는 비박계나 친이계 현역 의원들을 그대로 단수 추천 혹은 경선으로 공천을 합니다. 공천을 받은 정두언, 김용태, 정태근, 이준석 등은 비박 혹은 친이 및 김무성계이긴 하지만 이들 지역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험지에다 다른 대안 인물도 없는 상태라서 친박(박근혜 대통령)입장에서는 이들이 살아서 당선되면 의석수 늘어 좋고, 떨어져도 당내 반대세력이 없어져 손해 볼 일이 없다고 보는 것이죠. 이들이 떨어져도 최소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직 공천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눈에 가시 같은 이재오도 결국 공천할 것이라고 저는 보지요.
강원, 울산, 경남 지역에도 경선지역에 비박계도 많이 공천했지만, 자세히 보면 경선에서 친박계가 이길 지역이 매우 많은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경선결과 친박계 경선 후보자가 이긴 지역이 대부분입니다. 친박, 비박을 구분하지 않고 겉으로 공정하게 경선 공천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실제로는 새누리당 강세지역에는 친박계 후보를 많이 공천해서 20대 국회에서 친박 의원을 늘리겠다는 계산이 한 눈에 보이죠.
서청원(화성)과 이인제(충청)를 공천한 것은 좀 아쉽긴 한데, 이들은 친박 인물이고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말 그대로 현금이 된다는 현실성이 감안된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안정적으로 확보된 이 들 두 석을 잃더라도 이 두 사람은 70대가 넘었고, 다선이며 낡은 인물로 개혁공천 차원에서 친박이라도 이번에 날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한구는 현실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당대표인 김무성을 공천 탈락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후폭풍이 너무 큰데다 새누리당이 내홍에 휩싸여 이번 선거를 자칫 그르칠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공천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김무성 입장에서는 단수 공천이 아니라 최홍과 경선을 하게 한 것으로도 당대표의 체면을 구긴 것입니다.
친김무성계인 황진하도 사무총장이고 당연직 공천관리 위원임으로 공천을 주지 않을 수 없지요. 황진하를 날리면 공관위 자체의 운영이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공천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죠.
새누리당의 공천 하이라이트는 사실 이제부터죠. 유승민과 그 측근들이 있는 대구와 새누리당의 노란자 서울 강남지역의 공천, 그리고 욕설 파문의 주인공 윤상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지요.
저는 유승민은 공천하되, 유승민의 수족이 되는 대구의 친유계 의원들 대부분은 탈락시킬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박계 후보가 경선에서 이길 수 있는 지역에는 친유계 현역의원들을 생색내기로 경선 공천하겠지만, 이번 공천에서 유승민계를 초토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배신자, 진정한 사람이라는 발언을 한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 하반기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본보기로 유승민(계)를 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서울 강남지역도 7:3 정도로 친박계 후보의 공천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새누리당이 확실히 당선 가능한 서울 강남과 TK 지역에 대거 친박 후보로 물갈이 하여 새누리당의 세력 재편을 기하겠지요.
문제는 윤상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인데, 만약 윤상현을 공천하지 않으면 유승민도 함께 날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유승민을 살리고 윤상현을 공천하지 않으면 새누리당의 친박 지지자들의 반박이 거세지겠지만, 대신에 이한구의 공천이 공정성을 갖고 개혁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어 일반국민들이나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차단할 수 있게 됩니다. 윤상현을 희생시키고 강남과 TK에서 친박 후보의 약진이라는 실리를 챙기고 공정성과 개혁의 외피도 확보하는 일거양득이 되는 셈이죠.
더민주당의 공천이 완료된 시점에서 막판에 이한구가 다선 및 70세 이상의 현역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키게 되면, 김종인의 개혁 공천을 희석하게 되고 현역 물갈이를 했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어 공천 스케쥴과 타이밍을 적절하게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한구가 이런 공천을 하게 되면 대단한 수를 가진 인물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민주당의 공천을 볼까요?
김종인은 김현, 임수경 등 문제 많은 현역들을 컷 오프 시킨데 이어, 막말의 정청래와 갑질을 한 윤후덕 등을 공천 배제했고, 친노의 상징인 이해찬도 자진 사퇴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3/15 추가, 3/14 저녁에 이해찬도 날려 버렸네요) 친노 직계들이 여전히 공천을 받았다고 하지만, 새누리당에 비해 현역 의원 탈락율도 높은데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상징적 의원들을 쳐냈고 여기에 이해찬을 사퇴시킨다면 개혁성 측면에서는 새누리당보다 훨씬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여론을 반전시킬 계기를 마련했다고 봅니다. 김홍걸과 김현철을 공천하게 되면 공천의 개혁성이 무색하게 되고 그 동안의 공천이 공염불이 될 수 있겠지만 이 둘을 공천에서 배제시키면 김종인의 공천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종인의 공천은 의석 확보를 확실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바람을 일으키고 여론을 업어 전국적 선거 판도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어 결국은 의석 수를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지요.
이한구의 공천은 철저하게 확실한 집을 확보하는 실리 위주의 바둑이며 현금 장사라고 본다면, 김종인의 공천은 확정가는 적지만 중앙에 세력을 만들어 가는 세력 바둑이고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펀드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4국에서 초반 실리 위주의 바둑으로 진행하다 중반에 알파고의 세력에 침투해 신의 수를 두어 승리를 이끈 것처럼 이한구가 승리할지, 1,2,3국처럼 알파고가 세력을 키워 이세돌에게 불계승을 했던 것처럼 김종인이 승리할지는 흥미진진해집니다.
두 당의 공천내용을 보면 저는 김종인의 더민주당이 이한구의 새누리당보다 잘 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김종인의 공천이 4.13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지만 86세대의 운동권 정치인들의 퇴출을 도모하고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다져 야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우리 정치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