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나부터가 헬레레다.
모..유정선배의 등빨이 그리 좋더냐면 끄덕끄덕이다만,
어찌 이유가 그 뿐이랴.
덕선이와는 다른
지나가 버린 대학시절의 내 모습이
거기 홍설로 있더이다.
한 없이 성실하며 어리버리하여
알면서도 당해주는 덤태기의 단골손님 맏딸 홍설은
그 장소가 캠퍼스라 해서 달라지지 않으며,
피하지 못해 물리고 물리는 관계는
가족내에서는 물보다 더 더럽다는 혈연으로
팀프로젝트내에서는 같이 폭망할꺼냐는 학점으로 운명지어져 있다.
그러니,
더 죄책감 더불어 책임감 느끼는 맏딸이..
장학금에 목이 매인 성실쟁이 홍설이 늘 독박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누군가 포스팅한 김수현작가를 표현한 글을 보니,
그래도 김수현작가가 묘사한 가족 구성원은
그나마 모두가 자기 할 도리를 다 하고
따따부따 말들 무지막지 많이 하더라고 했는데, 공감한다.
그러니, 경제적이든, 정서적이든, 자기역할들 나름 제대로 하는
염치있는 삼대가 사는 김수현표 가족애는
그나마 공평성에서는 인류가 지향해 마지 않는 이데야 급이다.
그러나, 실상 인간이 얽히고 설켜 돌아가는 관계에서는
늘 단골로 손해를 봐져야 하는 한 사람이 정해져 있다 시피하고,
갈등은 그 한 사람이 그냥 닥치고 손해보는 걸로 기승전해결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설은
사십대가 기억하는 예전의 나의 모습이다.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에.. 긴 머리 파마머리를 하고,
학점관리를 위한 강의를 듣고
종종걸음으로 아르바이트 하는 곳을 향한다.
아빠의 무능력과 엄마의 넋두리
철없는 남동생에 대한 편애의 삼종세트 가족구성원을 뒤로 하며 말이다.
다정하지만 철 없던 친구들의 여행 제안을 귓등으로 들어 넘기면서도,
아무리 친해도, 자신의 작은 신음 하나 표현하지 못하는 홍설을 보면서
너무도 일찌감치 사람본성을 알아채 버렸거나,
기대를 포기했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그 감정을
자신이 누군가를 의지하면 그 사람이 혹여 같은 감정을 느낄까하는 두려움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까지 궁핍을 느끼지 않아도 될 환경이였는데..
철 없던 남동생이 누리던 그 풍성하던 감정적 지원과 경제적 혜택을 보면
그렇게 까지 쪼그려 살지 않아도 되었을 상황이였는데..
아빠의 무능력은 생활의 불편만을 초래했지만,
엄마의 넋두리는 내 청춘의 영혼을 갉아 먹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스펙좋고 멋진 남친이 사주는 밥 한끼에도
더치부담을 느끼고, 맘 편히 못 먹어준 홍설을 향한 내 시선이
요번회 기어이 가족삼종세트의 전형적인 대사들에 한마디 내뱉고
집을 뛰쳐 나간 홍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마주 친 남친을 붙잡고 엉엉 울었을때
이 독한 쑥과 마눌도 ㅆㅂ 울고 말았다.
저럴 껄 그랬었다.
나만 왜 참아야 하고,
나만 왜 힘든 이야기를 들어 줘야 하고,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 하며,
나는 왜 알아서도 잘 헤쳐나가니, 계속 헤쳐 나가야 하냐고..
나는 누가 위로해 주며, 누굴 의지해야 하냐고..반문해야 했었다.
그러다가 뛰쳐나가, 남친놈을 만나면, 그 노마를 붙잡고 엉엉 울어야 했었다.
스펙좋고 인물좋고 멋진 남자가 다가오면
쉬크한 걸로 위장한 채, 부담스러워 피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스스로가 모태솔로이면서,
괜찮은 주변 남자들을 다른 여자애들과 엮어주는 속 큰 척하는 행동도 말았어야 했었다.
방학동안 내내한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내며
학점 따기 쉬운 과목들로만 칠갑하여 장학금에 목을 매지도 말아야 했다.
알바한 돈으로 훨훨 날아다니듯 여행을 다니며, 이쁜 옷을 사입고 온갖 칠번덕을 다해보며,
학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호기롭게 강의를 들었어야 했다.
지나 놓고 보니, 그래도 되었을 청춘이고 상황이었다.
말해 무었하랴.
누가 그리 살라디..라는 드립으로 내 입을 쳐 닫는 수밖에..
나 홀로 가난했던 젊은 날
그 날들에 정산 되지 못했던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눈덩이처럼 이자가 불어난 사채처럼
갚아도 갚아도 끝이 안보인는 오늘이 되어버린 사십대가
유정선배의 등빨과 천연곱슬 홍설의 홑꺼풀 눈위로
연민과 동감과 응원을 보내고 잡다.
그들의 드럽게 더디 나가는 진도만큼이나 제자리인
여전히 끝이 안나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줄거리도 빤한
마..또..나 하나 닥치면.. 끝날 그런 일상의 가족드라마를 찍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