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왜관에서 45년을 살았습니다.
이동네 참 웃긴 동네 맞습니다. 몇번이나 떠나려 시도했지만 걸리는게 많아 그냥 살았습니다.
참고 또 참았는데 이 지랄 맞은 동네는 우리 가족을 너무 슬프게 만드네요
이제 이사를 고려 해야 하는데 갈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제 중고등생이 되는데 이지역 학교는 캠프캐럴과 도로를 건너서 500도 안됩니다
남편의 직장도 미군부대 담벼락과 마주 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출발하기엔 버려야 할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한직장에 23년 다녔지만 퇴직금이 1억 조금 넘고 박봉이라 크게 모은 돈은 없습니다.
달리 기술 없이 펜대만 잡던 사람이 할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남편은 몸이 약합니다 백혈구, 적혈구 모두 수치가 정상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딱히 병명이 나오진 않아요. 위험 수치 커트라인은 넘지 않기 때문에
몸 여기저기 염증도 자주 나고, 항생제를 먹어야 진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드를 지척에 두고 일한다면 급격히 나빠지는건 수순이겠지요
이놈의 사드와 할랄공장이 칠곡에 들어선다는 소식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먹는것도 체합니다.
저희는 식구들에게 좌파 소리,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주변인들에게 정부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싸우고
내가 태어난 동네를 아끼고 발전적인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바르게 살려고 무던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이젠 시댁, 친정 다 버리고 이곳을 떠나야 할까요
지금 이동네 분위기 참 내 입으로 올리기도 싫습니다.
그래요 당해 보라지요 그런데요
그 당하는 후유증이 5년은 되어야 나타나지 않을까요? 아님 10년?
그세월이 가는 동안에도 이곳은 변하지 않는 1번입니다.
아니 후유증이 나온다해도 변하지 않을 1번 사랑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들과 각종 이권이 얽힌자들만 남겠지요
저희 가족들은 지금 억장이 무너지고 슬픕니다.
이제 고등학생되는 아들이 한숨을 벅벅쉽니다. 뭐 이런 동네가 있냐고...
제가 아들들에게 참 미안합니다. 이곳에 터잡고 살고 떠나지 못하는 처지여서...
아침에 남편이 ' 이렇게 한순간에 추락하는구나 우리 열심히 살았는데'하며 한숨을 쉬는데 맘이 너무 아프네요
저희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남편도 저도 성장할때 참 불행했습니다.
둘이 만나 결혼하고 살면서 행복이 이런거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살만한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할 처지가 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고 머리가 아픕니다.
그래 그런줄 몰랐더냐 그동네시는게 업이다. 그리 욕하셔도 할말이 없지요
오죽하면 그러시겠습니까.
비도 오고 우울해서 넋두리 해봤습니다.
너보다 못한 이들이 더많다 하시겠지요 네 그렇겠지요 그래도 지금은 좀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