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9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일신빌딩 16층.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 기획조정회의가 열렸다. ‘담대한 변화가 시작됩니다’라고 쓰인 녹색 배경막 앞에 4명이 앉았다. 왼쪽부터 김한길(63), 윤여준(77), 한상진(71), 박주선(67). 초선 의원 안철수(54)는 측면에 자리를 잡았다. 안 의원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각각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당’ ‘분배에만 관심 있고 성장에는 무관심한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성장과 분배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로 만들어야 하고,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반여비야(反與非野), 제3지대를 표방한 국민의당이 오늘 공식 출범한다. 안 의원이 신당을 만든 건 ‘새정치’를 위해서다. 국민의당은 새로운가. 야박한 얘기지만, 그런 것 같지 않다. 묻고 싶은 것이 많다.
첫째, 왜 국민의당에는 미래세대가 없나?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는 청년층이었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노(老)정객 세상이다. 영입인사 중에도 20~30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핵심 인사 가운데 여성도 드물다. 지난 대선 때부터 함께한 박선숙 창준위 집행위원장 정도다. 50대 이상 남성이 주류인 정당은 새누리당 하나로 충분하지 않은가.
둘째, 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집착하나? 안 의원은 창당 초기 “교섭단체 요건 20석에 연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정당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밝히고, 동의하는 분들의 뜻을 모으는 것”(1월4일)이라고 했다. 인재영입 제1원칙으로 “부패에 단호한 사람”(2014년 12월15일)을 말했다. 지금은 20석 채우기에 총력전이다. 입법로비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신학용 의원도 받아들였다. 김영환 창준위 전략위원장은 “더민주에서 현역 의원 하위 20% 교체한다면서, 왜 빨리 안 하느냐”며 조바심을 보인다. 국고보조금 몇십억원에 ‘신당다움’을 팔려 한다.
셋째, ‘호남 자민련’에 만족할 텐가? 국민의당은 교체 요구가 높은 광주지역 의원을 6명이나 데려갔다. 독자 신당을 추진하던 천정배·박주선 의원도 포함됐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국민의당과 천·박 의원의 결합은 안 팔리는 상품을 조금 팔리는 상품에 묶어 파는 상술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사이 국민의당 수도권 지지율은 17.7%(리얼미터 1월18~22일 조사)에서 11.9%(1월25~29일)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호남 지지율도 떨어졌다. 안 의원은 호남 유권자를 잘 몰랐다. 그들은 수도권은 물론 영남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전국정당을 기대한다.
넷째, 정치인 안철수는 누구와 싸우고 있으며, 누구를 대변하려 하나?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와 국민의당)는 문재인(혹은 김종인, 더민주)과 싸운다고 생각한다. 정치란 실체 못지않게 어떻게 보이느냐도 중요하다. 안 의원은 현 집권세력의 확장 저지를 강조해왔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누구를 대변하는지도 짐작 못하겠다. 2012년 대선 때 안 후보 자문단에서 활동했던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야당은 중도주의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고 교수에 따르면 중도주의란 “수구적 보수의 가치노선에 대해 선명한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다. 국민의당도 중도주의 함정에 빠져 누구를 대변해야 할지 잊었거나 ‘모두’를 대변하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모두를 대변하겠다는 건 아무도 대변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오늘(2일) 대전에서 국민의당 창당대회가 열릴 무렵, 미국 아이오와주에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가 나올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승부는 예측불허다. 샌더스는 그러나 승패와 무관하게 ‘혁명’을 이뤄냈다. 세상에 분노하면서도 정치는 혐오하던 젊은이들을 유세장과 투표소로 끌어냈다. 민주당 내 진보세력과 거리를 두던 클린턴을 왼쪽으로 끌어당겼다. 이것이 ‘새정치’다. 국민의당이 더민주를 제친다고, 그 자체로 한국 정치가 바뀔 리 없다. 단 한 명이 국회에 들어가더라도, 그로 인해 새로운 바람이 일고 새로운 정책과 법률로 열매 맺는 일, 그것이 ‘새정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는 이렇게 썼다. “(청년층에게) 샌더스는 멋진(cool) 아저씨, 클린턴은 냉정한(cold) 아주머니가 됐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 출생)는 관습적 제도(institution)를 불신한다. 샌더스는 반(anti) 제도, 클린턴 부부는 하나의 제도이다.”
칼럼 소재를 ‘안철수’로 잡았다고 하자 지인이 말했다. “안철수 얼굴이 예전과 달라진 것 같아요.” 진부한 안철수, 역동성을 잃은 안철수, ‘제도’가 돼버린 안철수는 매력 없다. 안철수가 매력을 되찾을 때 국민의당도 유권자를 매혹할 수 있다. 안철수가 싸울 상대는 문재인이나 더민주가 아니다. 안철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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