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사옥에선 진풍경이 연출됐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수요 사장단회의를 마친 뒤 로비에 마련된 ‘경제 입법 촉구 서명운동’ 부스에 들러 줄줄이 서명을 했다. 현대자동차·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회사 차원에서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계뿐이 아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온라인 서명 장면을 담은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도 서명을 마쳤다. 다른 국무위원들도 서명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두서명 참여로 사실상의 총동원령을 내리자 관료와 재벌이 총대를 멘 것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다.
독재정권 시절 중·고교에 다닌 이들은 비슷한 기억을 공유한다. 결의대회·궐기대회류의 대규모 집회에 참가해 구호를 복창하던 풍경이다. 이러한 ‘국민 동원’은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진 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박근혜 정권이 역사의 유물을 되살려내고 있다. 한국은 ‘관제 데모’가 횡행하던 30~40년 전으로 퇴행했다. 설 연휴 귀성길, 박 대통령이 ‘경제 입법 촉구’ 어깨띠를 두른 채 서울역 광장에 나타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