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장소로 커피빈의 당위성 관련 글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렇다 저렇다 댓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 요즘은 이런 생각도 하고 저런 생각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저도 몇번의 맞선을 보고 남편을 만나 (속 터져가며 ..)잘 살고 있는 사람인데
(지역 & 직업 관련 글 접니다 히히히)
저는 남편을 집 근처 고급 빵집 -
(저희집 근처에 딱 그 빵집 하나 있었어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었어요)
고급 빵집 이라는 말이 웃기지만 진짜 그런 빵집이 딱 하나였고 빵 값도 꽤 비싸고 고급이었지요
톨게이트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이니 거기서 만나자고 했고
대화를 나눈 후 또 다시 꽤 맛집인 중국집으로 안내를 했는데
제가 다 지불했어요 남편이 저를 만나러 긴 시간 운전해 오기도 하고 기름비, 톨게이트 비용
생각하니 제가 내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아니 제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라 맞선 추억이 생각나네요
그 분 지금쯤 한 가정의 아빠 일 수도 있고 아직 총각 일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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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개팅이든 맞선이든 일단 즐기는 성격이었어요
엄마가 옷도 사주고 언니가 좋은 가방도 사주고
아빠가 주는 용돈으로 제가 밥도 자주 사고 뭐 재미있었네요 추억도 많는데...
어른 소개든 친구 소개든 최대한 매너있게 예우를 지켰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 친구 소개로 만난 사람인데
직업도 좋고 점잖은 인상의 한 분을 롯데호텔에서 만났습니다
세련된 매너도 갖춘 분이더군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약간 유머를 느낄 수 있는 분이었어요
저도 한 개그 하는데 지기 싫더군요 과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너보다는 개그로는 한수 위다
승부욕을 자극하시길래 과하지 않은 선에서 쨉을 날렸지요
그 사람도 많이 웃고 저도 많이 웃고 그러다가 오락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는 보글보글 오락 세대라서 보글 보글 이야기를 했지요
그때가 만나고 대화를 한 30분 정도 한 상태 였는데 ...
요즘도 보글 보글 하는 오락실 있나요?
하길래 제가 아는 곳 있다고 하시고 싶으시면 일어나자 했어요
"대신 제가 파랑이고 따발과 신발은 제가 먼저 먹겠습니다"
이 멘트가 지금도 생생해요
제 차로 이동해서 나란히 오락실에 앉은 맞선 남녀...
서로 존대를 하는데 대화 내용이
"아니 아니 제가 먼저 영어 먹을게요 파랑이 천하무적이에요"
"아니 @@씨 정말 잘하네요 나도 100판은 기본으로 갔는데 뒤 보라고!! 뒤!! "
"어휴 내가 막았어요 점수 맞춰야 하니까 벽 보고 쏴요 지금 ! 지금 터뜨려요!"
" 물약! 물약! 그리로 가면 고래 나와요 고래!! 휴 나 죽을 뻔 했는데 우산 먹었어요"
"@@씨 잘했어요 영어? 영어!?먹었던 영어 또 먹으면 어떡해!! E가 부족한데 !!"
그렇게 둘이 60판 까지 갔나 그랬을 겁니다
진지하게 오락을 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둘이 오랜 친구처럼 한참을 웃었네요
그 상황이 너무 웃기고 어이도 없어서요
그렇게 한참 놀다보니 배도 고프고 뭐 먹으라 가자고 했지요
그래도 우리 맞선인데 격식있게 스테이크 사주고 싶으니 그리로 가자고 그 사람이 말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라면이 너무 너무 먹고 싶은거에요
@@씨 에게 정말 미안한데 라면이 너무너무 먹고 싶다고 가까운 편의점 어때요?
했더니 그래도 맞선인데 편의점은 첫 만남에서 좀 그렇지 않냐 하던 그 사람은
어느덧 파라솔 아래서 호로록 호로록 라면을 찬양하고 있더군요
저도 지지 않고 라면이 21세기 인간에게 온 축복이라고 콜라는 21세기 최대의 발명품 ...
그 와중에 서로 개그 승부욕으로 이빨을 털면서 김밥을 한개라도 더 먹겠다고...
시트콤 같았던 첫 만남 이후 그 분에세 에프터가 왔는데
그 첫마디가 "@@씨 테트리스는 좀 해요?" 였어요
호감보다는 오락실 때문에 에프터 했나봐요 아님 웃고 싶었나?
두번째 데이트 에서는 오락실은 안가고 비싼 공연장도 가고 파스타집도 갔어요
굉장히 빠른 시간안에 서로가 친해졌고 분위기가 좋았는데
몇번의 데이트 이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서 안맞다 생각해서
그렇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 이후 만난 남편은 재미는 없지만 약자를 향한 배려, 사회를 보는 시선 등이
저를 반하게 만들었고 뭐 그렇게 잘 결혼까지 되었네요
그 사람은 본인 밥그릇 잘 챙기고 시원시원 했는데 여우같은 면이
저를 불편하게 했고 순하고 우직한 남편은 아직도 제게 고구마 백개를 먹이며
그렇게 살고 있다는 아픔어린 소식을 전하게 글 마칩니다
추신: 남편은 보글보글도 못해요 -.-
추신2: 보글보글남씨 짧은 만남이었지만 제게는 추억이 되었네요 행복하게 잘 살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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