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규 이하 29명 사형!"
재판장의 사형 언도와 함께 법정 안 양옆으로 늘어선 헌병들이 '찰카닥' 장탄을 했다. 행여 있을지 모를 난동에 대비한 실탄 장착이었다. 이어 기세등등한 군인들이 '빨갱이 사형수'를 서둘러 재판장에서 끌어냈다.
재판은 하루 만에 끝났다. 취조 뒤 검사가 몇 장의 서류를 넘기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죄상을 읊어내자, 소령 계급장을 단 재판장은 아무런 감흥 없이 사형을 언도했다. 방청객도, 변론도 필요 없는 군사재판이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죽음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재판이 끝난 뒤 광주교도소로 이감된 사형수들은 말없이 집행을 기다렸다. 곧이어 이들이 감금된 구치소에 다부진 표정의 군인들이 마룻장을 '쿵쾅'거리며 들어왔다.
집행관의 지시가 공간을 가득 메웠고, 또 한 번 '찰카닥' 장탄소리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왠지 모를 자유로움도 함께 느꼈다. 꽃 같은 청춘, 몹시도 고단했다. 마른 침을 겨우 삼켜낸 그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허공을 갈랐다.
"어린 놈 머리통에 빨갱이 물이 들면…"
임방규를 취조한 중위가 서류에 뭐라 끄적이더니 옆 사람에게 속삭이듯 건넸다.
"장개석 총통이 말한 바와 같이 명주 베에 붉은 물이 들면 빨아도 빠지지 않는 것처럼, 어린 놈 머리통에 빨갱이 물이 들면 별수 없이 그냥 죽여야 해"
그렇게 취조가 끝났고, 다음날 오전 검찰 구형과 함께 이날 오후 재판이 이뤄졌다. 그리고 광주교도소로 옮겨진 사형수들은 곧 있을 죽음을 기다렸다. 그렇게 수백 명이 소, 돼지마냥 죽어나갔다.
군인들은 어쩌면 이들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을 테다. 임방규를 취조한 중위의 말처럼 개선의 여지없이 그냥 죽여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빨갱이는 그런 존재였다. 죽여도 되는, 아니 죽어 없어져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