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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후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며, 그로써 내게 쏟아질 수많은 인정도 다 알지만

박정희 조회수 : 1,409
작성일 : 2015-12-08 10:13:33
그럼에도 국가를 위해 십자가를 매겠다.

개헌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어지러운 국제정세

박정희 정부, 경부고속도로 등, 경제에 시동 걸어서 좀 먹고 살아보려하는데
없는살림 일구는 것도 힘든 마당에, 국가존망의 위협이 매우 심각했음.

1968년 닉슨독트린으로 미국, 주한미군 철수 선언
베트남전으로 이미 수많은 돈과 인명을 바친 미국인들, 전쟁에 염증을 느낌.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닉슨은 아시아는 니들끼리 해결해라라는 닉슨주의 발표
이러한 닉슨주의에 따라 주한미군 7사단 2사단 모두 철수시키려 함.
당시 박정희 정부의 수차례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970년 7사단 철수와 휴전선은 한국군이 전담하라는 일방적 통고

이런 호기를 놓칠리 없는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 자행
중공과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의 호언장담, 서울에서 환갑잔치 할 거다.
이런 실정이었음.

당시 비무장지대 교전 끊이지 않았음.
1968년 무장간첩 북한특수부대인 124군 부대 소속 31명 청와대 습격을 위해 코앞까지 침투
미해군 푸에블로호, 북한군에 의해 나포되어 미해군 장교와 수병ㆍ민간인 등 83명이 북한으로 끌려감
미국은 당시 이미 벌인 베트남전으로 북한과 전쟁할 엄두를 못내 굴욕적 협상을 함.
북한 게릴라 120명이 울진과 삼척에 상륙했다가 국군에게 사살
이후 북한 게릴라 침투는 계속됨.

이로인해, 국민들은 북한군의 잇단 도발에 불안감을 갖게 됨.
이런 특수한 상황하에 국가존립을 위해서는 장기집권도 가능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지게 됨.

이런 특수한 국내외 정세속에 굳건한 안보와 경제발전을 위해
개헌으로 국가장래 결정.
국민투표로 가부 결정지음.
결과
77.1%의 투표율과 65.1%의 찬성 32프로의 반대
개헌 통과됨.


-------------------------------


3선 개헌 국민투표 앞둔 박정희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이 개헌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과 시비로 세론이 분분하였으나

이제 주권자이신 국민 여러분의 의사로써 그 가부를 결정지을 최종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중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함에 즈음하여 나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점, 그리고 체험을 통해서 느끼고 있는 점을 허심탄회하게 국민 여러분 앞에 털어놓고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한 나의견해를 확실히 해둘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여건들은 국제정세의 변동과 국가안보상의 긴박성, 그리고 성장해가는 경제규모와 사회적변천 등에 따라 날로 달라지고 있으며 이 변동되어가는 현실에 따라 필요하다면 헌법도 그 현실에 알맞게 국민의 의사로써 적시 개정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소신이며 또 이것은 진정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민주호헌정신이라고 확신합니다.

선진 여러 나라들이 오늘날 잘 살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그들이 그들의 헌법을 그 현실에 알맞게 보완 개정해 나간 데 있었던 것입니다.


헌정과 민주주의 발전과정이란 대하의 조류와도 같이 사회적인 환경과 시대적인 여건에 순응하면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헌법은 절대 고칠 수 없다"는 옹고집은 진정한 의미에서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조국근대화의 길은 만사 현실에 알맞은 수정과 보완의 노력에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해온 모든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야당은 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나는 진정 오늘까지 야당으로부터 한마디의 격려나 지지도 받아보지 못한 채오로지 극한적 반대 속에 이 막중한 국정을 이끌어 왔읍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야당은 오로지 비방, 중상, 모략, 악담 등을 퍼부어 결사반대만을 해왔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때 야당의 반대에 못 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였더라면 과연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설 땅은 어디겠읍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방방곡곡 전국도처에서 개헌반대를 빙자한 야당유세에서는 나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과 중상모략이 거리낌 없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국민 여러분은 잘 듣고 있을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야당의 언필칭 민주주의 한다는 그들의 자세인 것입니다. 야당은 또 나를 독재자라고 비방합니다.

 내가 만일 야당의 반대에 굴복하여 "물에 물탄 듯" 소신 없는 일만 해왔더라면 나를 가리켜 그들은 독재자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도움 되는 일이라면 내 소신껏 굽히지 않고 일해 온 나의태도를 가리켜 그들은 독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나를 아무리 독재자라고 비난하든 나는 이 소신과 태도를 고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이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 여러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국민들이 허락만 한다면, 70년대의 전반기만은 정권 변동 없이 현 체제를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며 국가안보와 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길이 된다고 믿어 이 개헌안은 발의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야당만이 알거나 정치인만이 아는 특수지식이 아니라 농민이나, 상인이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며, 우리의 보편적 행동규범인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인 국가원수에 대해서도 마구욕설을 퍼붓고 자기들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독재자라고 규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형식으로 다루고 소수의 의견이 관철 안 되면 단상을 점령하여 맥주병과 폭력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있는 말 없는 말로 마구 중상 모략하여 국민을 선동하는 일만을 능사로 삼고 있는 이러한 야당의 행동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이겠습니까.

이러한 식의 민주주의를 우리나라의 야당은 어디서 배웠는지 나는 모르겠읍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다수의 의사로 결정짓는 것이며 선의의 경쟁으로 국민의 심판을 묻되 허위, 중상을 삼가야하며 또 민주주의는 창달되어야하되 이로 인하여 우리 고유의 윤리와 도덕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기본관념인 것입니다.


국민여러분과 더불어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부정, 부패를 일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부정, 부패의 축출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해왔으나 그 일소를 위해서는 아직도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숨김없는 현실입니다.


앞으로 나는 이 부정, 부패를 없애기 위한 노력에 더욱 역점을 둘 것이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적극적인 방법은

하루바삐 경제건설을 서둘러서 더 풍요한 사회를 만들고 빈곤을 구축하는 것이 부정, 부패를 없애는 가장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1950년대는 우리에게 걷잡을 수 없었던 혼란과 불안의 시대였으며,

1960년대는 겨우 그 혼란과 불안을 정돈, 일소하여 안정을 되찾은 시대이며

이제 앞으로 맞이할 1970년대는 겨우 되찾은 그 안정을 항구화시켜야할 사명의 시대라고 나는 내다봅니다.


이 70년대를 우리가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우리국가의 운명은 좌우될 것입니다.

이 70년대를 성공적으로 맞이하여 보낼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확고히 우리에게 토착화할 것이며

또 우리의 경제는 보다 착실한 토대를 구축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안정은 영구적인 안정으로 고착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진대 우리는 다시 1950년대의 혼란과 불안의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게 될 것임을 나는 단언합니다.


60년대 후반기에서 모처럼 되찾은 이 안정의 분위기를 변동 없이 70년대 초반까지 좀 더 굳히고 다져 보자는 것이며

내손으로 벌여놓은 이 방대한 건설사업들을 내 책임으로 매듭지어 보자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며

또 모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의 전진대열을 쉬었다가 다시 짜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좀 더 전진을 계속해 보자는 뜻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값싼 인기에 영합하고 나만 편안한길을 가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영광의 후퇴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또 이때 수많은 동정을 나에게 쏟아줄 국민 여러분의 두터운 인정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70년대를 깊이 생각한 끝에 나는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한 번 더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에서 나는 이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심은 추호도 없읍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나의 이러한 생각들은 추호도 나를 위주로 한 생각에서가 아니라

오직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한 일념에서 이루어진 것을 믿어주시기 바랄뿐입니다.


[출처] 故 박정희 대통령의 1969년 10월 10일 대국민 담화문 전문

IP : 103.10.xxx.11
4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5.12.8 10:15 AM (103.10.xxx.11)

    당시 어지러운 국내외 상황이었고 강력한 정부가 필요했음.
    개헌여부 국민투표 실시, 찬성 67퍼센트로 개헌 통과됨.

  • 2. ...
    '15.12.8 10:16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값싼 인기에 영합하고 나만 편안한길을 가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광의 후퇴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또 이때 수많은 동정을 나에게 쏟아줄 국민 여러분의 두터운 인정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70년대를 깊이 생각한 끝에 나는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한 번 더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에서 나는 이 길을 택한 것입니다.

  • 3. 박정희
    '15.12.8 10:17 AM (103.10.xxx.11)

    이 70년대를 우리가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우리국가의 운명은 좌우될 것입니다.
    이 70년대를 성공적으로 맞이하여 보낼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확고히 우리에게 토착화할 것이며
    또 우리의 경제는 보다 착실한 토대를 구축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안정은 영구적인 안정으로 고착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진대 우리는 다시 1950년대의 혼란과 불안의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게 될 것임을
    나는 단언합니다.

  • 4. 박정희, 그의 혜안
    '15.12.8 10:18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부패를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
    하루바삐 경제건설을 서둘러서 더 풍요한 사회를 만들고 빈곤을 쫓아내는 것만이
    부정, 부패를 없애는 가장 첩경이다.

    ---

    리콴유는 공무원 봉급을 아주 후하게 줌으로써 부정부패를 완전히 추방해냈죠.
    이정도 혜안이 있어야 지도자급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 5. 박정희, 그의 혜안
    '15.12.8 10:19 AM (103.10.xxx.11)

    부패를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
    하루바삐 경제건설을 서둘러서 더 풍요한 사회를 만들고 빈곤을 쫓아내는 것만이
    부정, 부패를 없애는 가장 첩경이다.

    ---

    정확히 꿰뚫어본 혜안이고,
    실제로, 싱가폴 리콴유는 공무원 봉급을 아주 후하게 줌으로써 부정부패를 완전히 추방해냈죠.
    이정도 혜안이 있어야 지도자급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 6. 시대의 독배를 마신 박정희
    '15.12.8 10:21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60년대 후반기에서 모처럼 되찾은 이 안정의 분위기를 변동 없이 70년대 초반까지 좀 더 굳히고 다져 보자는 것이며 내손으로 벌여놓은 이 방대한 건설사업들을 내 책임으로 매듭지어 보자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며
    또 모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의 전진대열을 쉬었다가 다시 짜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좀 더 전진을 계속해 보자는 뜻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 7. 시대의 독배를 마신 박정희
    '15.12.8 10:22 AM (103.10.xxx.11)

    60년대 후반기에서 모처럼 되찾은 이 안정의 분위기를 변동 없이 70년대 초반까지 좀 더 굳히고 다져 보자는 것이며
    내손으로 벌여놓은 이 방대한 건설사업들을 내 책임으로 매듭지어 보자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며
    또 모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의 전진대열을 쉬었다가 다시 짜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좀 더 전진을 계속해 보자는 뜻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 8. 시대의 독배를 마신 박정희
    '15.12.8 10:22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값싼 인기에 영합하고 나만 편안한길을 가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영광의 후퇴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또 이때 수많은 동정을 나에게 쏟아줄 국민 여러분의 두터운 인정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70년대를 깊이 생각한 끝에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한 번 더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에서 나는 이 길을 택한 것입니다.

  • 9. 시대의 독배를 마신 박정희
    '15.12.8 10:24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값싼 인기에 영합하고 나만 편안한길을 가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영광의 후퇴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또 이때 수많은 동정을 나에게 쏟아줄 국민 여러분의 두터운 인정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70년대를 깊이 생각한 끝에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한 번 더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에서 나는 이 길을 택한 것입니다.

    ----

    내가 편하게 존경받고 사는게 훨씬 쉬운 길이라는거 너무나 잘 알지만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면 후퇴할 수 없는 길이다.
    모든 십자가 기꺼이 감내하고 수고로이 지겠다.

  • 10. 시대의 독배를 마신 박정희
    '15.12.8 10:25 AM (103.10.xxx.11)

    값싼 인기에 영합하고 나만 편안한길을 가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영광의 후퇴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또 이때 수많은 동정을 나에게 쏟아줄 국민 여러분의 두터운 인정도 나는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70년대를 깊이 생각한 끝에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한 번 더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에서 나는 이 길을 택한 것입니다.

    ----

    내가 대통령 2번하고 여기서 그만둔다면, 사람들이 평생을 두고 존경하겠지.
    그 길이 비단길이고, 편하게 존경받고 사는게 훨씬 쉬운 길이라는거 너무나 잘 알지만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면 후퇴할 수 없는 길이다.
    모든 십자가 기꺼이 감내하고 수고로이 지겠다.

  • 11. 다른나라의 상황
    '15.12.8 10:31 AM (103.10.xxx.202)

    중공과 마주한 대만, 계엄령 30여년 지속 (일종의 독재체제)
    공산화 위협조차 없었던 싱가폴 리콴유 역시 독재 50년?
    물론 국민적 합의하에

    1970년 이념대립의 최첨단 벼랑끝에 존재했던 대한민국
    경제개발 이제 막 시작한 상태
    삼선개헌, 유신개헌 그 후의 개헌여부 역시 일일이 국민투표로 국민에게 물음.
    대한민국의 실정에 맞는 변형된 민주주의로 오로지 민족과 국가번영을 꾀함.

    그냥 조선이었으면 맘편하게 왕노릇했을텐데, 아니면 리콴유 정도의 배짱이든지,
    맘은 약한데, 오로지 국가 앞으로의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니 그만둘수도 없고,
    언제 해 본 적도 없는 민주주의 10년 해먹은 나라에서 장기집권하려하니,
    돌아돌아 참 힘들게 살았다 싶음.
    그래도 일일이 국민투표는 다 했음.

  • 12. 개헌의 역사적 정당성
    '15.12.8 10:35 AM (103.10.xxx.202)

    개헌은 필요했나?

    필요했음.
    베트남, 캄보디아 그 와중에 다 공산화.
    1971년 7사단 미군철수 와중에도 경제개발 매진, 자주국방력 다짐.
    결국 공산화 저지함.

    경제개발 역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정도의 성공을 거둠.
    박정희 취임당시 1억불에서 1978년 수출총액 50억불로 비약적인 성장거듭함.

  • 13. ...
    '15.12.8 10:43 AM (103.10.xxx.218)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야당은 오로지 비방, 중상, 모략, 악담 등을 퍼부어 결사반대만을 해왔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때 야당의 반대에 못 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였더라면 과연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설 땅은 어디겠습니까.

    ---
    야당이 반대한 내용
    경부고속도로 결사반대
    중공업위주의 국가정책 결사반대
    하기야, 미국 일본 모두 박정희정부의 중공업정책으로의 방향선회를 반대했음.

    만약 당시 야당의 주장대로 했다면, 1970년대 중공업정책은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며
    결국, 우리는 선진국 진입의 행운의 막차를 타지 못했을 것.
    시기라는게 그토록 중요한 것임.

  • 14. ...
    '15.12.8 10:46 AM (103.10.xxx.218)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알치데 데가스페리

  • 15. 그 밀알이 싹을 틔워
    '15.12.8 10:51 AM (103.10.xxx.218)

    당시 수출 90위에서 2014년 7위, 2015년 현재 수출 6위로 도약. 프랑스 제침.
    중계무역 나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세계 5위라고 봐야함.

    식민지배에 이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1조4104규모의 세계 13위 경제 대국이 됐다.
    수출 규모는 5727억 달러로 세계 6위의 수출국에 올랐다.

    박정희 당시 gnp 72달러에서 2014년 2만8180달러로 증가해 4만2000여배 늘었다.
    http://finance.daum.net/news/news_content.daum?docid=MD20150810105808846

  • 16. 박정희가 일제시절, 교사를 그만둔 이유
    '15.12.8 11:02 AM (103.10.xxx.218)

    박정희, 아이들에게 애국가 가르쳐 반일교사 찍힘, 결과 일본인에게 집단린치 당함.

    박정희의 문경초등학교 시절 여제자 이순희(81·한국극빈아동선도회장)씨가 그의 만주군관학교 입학 직전에 벌어졌던 ‘교무실 린치 사건’을 공개했다.
    더없이 생생한 그의 말을 종합하면, 교사 박정희는 학교 재직 기간 내내 반일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불령선인(不逞鮮人, 일제에 비협조적인 인물)으로 찍혀 있었고, 이를 조사하려고 나온 시학관(視學官, 장학관) 일행이 학교를 방문하던 날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일본인 교사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다.

    1939년 10월께 벌어진 상황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복수할 거야!”라고 외치며 학교를 떠났던 박정희는 그 길로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했으며 그 사건이 돌연한 만주행의 동기가 되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 17. 박정희가 일제시절, 교사를 그만둔 이유
    '15.12.8 11:02 AM (103.10.xxx.218)

    81세 제자가 전하는 린치 사건의 전말

    박정희 논쟁에 새 국면을 열어줄 두 증언 중 교무실 린치사건이 시기상으로 먼저다. 이를 증언하는 이순희씨는 ‘우리 선생님’(그가 박정희를 지칭하는 말)으로부터 3년을 배웠다. 2학년 개학 날 학생들과 첫 대면했던 교사 박정희의 첫 인상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선생님은 무섭고 근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작은 키에 까만 얼굴, 검정 운동화 차림이었다. 당시에는 4월 초에 새 학기를 시작했다. 추위가 남아있는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옷가지도 초라했지만, 그래도 왠지 친근한 모습이었다. 더없이 섬세한 기억력을 가진 그는 문경초등학교 시절 박정희를 말하는 다른 증언은 대부분 정확하지 않다는 점부터 지적했다.

    일본인 교장 아리마(有馬近芳)와 크게 충돌한 박정희가 그를 두드려 팬 뒤 만주로 도망갔다는 말이 각종 박정희 전기에 등장했지만, 그건 근거 없다. 자기처럼 2~3m 코앞에서 린치 사건을 지켜봤던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 18. 박정희가 일제시절, 교사를 그만둔 이유
    '15.12.8 11:03 AM (103.10.xxx.218)

    더구나 부임 직후 박정희는 문경읍내 자기 집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그가 보기에 조갑제의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도 잘못된 증언을 토대로 했다. 출간 당시 저자를 찾아가 오류를 지적했고, 새 책을 펴낼 때 고치겠다는 약속까지 직접 받아낸 적이 있다.

    “하숙시절 우리 선생님은 한량이자 제재소 사업을 하던 우리 아버지(이춘동, 1980년 사망)와는 술친구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막걸리를 앞에 놓고 대청마루에 앉아 새벽녘까지 두런두런 말씀을 나누시곤 했어요. 그때 선생님은 평소와 달리 잘 웃었고, 때론 박장대소도 했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자기만의 공부를 하곤 했는데, 제재소를 겸한 살림집이 전기톱 소음으로 시끄럽다며 6개월 뒤 하숙을 옮겼다. 이순희씨는 하숙을 옮기기 전까지 매달 찾아오던 박정희 부친 박성빈의 모습도 기억한다. 봉급을 건네 받으려고 오는 그는 무명저고리에 파나마모자를 눌러쓴 채 트럭이 출입하던 큰 대문으로 거침없이 들어오는 휘적휘적한 걸음걸이가 특징이다.

    허리 아래의 저고리 양끝을 위쪽의 양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차림도 별났다. 저고리가 때 탈까 해서 접고 다니던 당시 풍속이다. 그러고는 자전거로 퇴근한 박정희와 얘기를 나눈 뒤 “바쁘다” 소리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곤 했다.

  • 19. 박정희가 일제시절, 교사를 그만둔 이유
    '15.12.8 11:04 AM (103.10.xxx.218)

    “4학년 진학을 앞둔 1940년 초 저를 포함한 학생들은 우리 선생님을 모시고 과외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진학 준비인데, 남자 셋 여자 셋의 과외 멤버들은 선생님이 하숙하던 주막집에 놀러 가서 공부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할머니가 지어준 제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석룡아, 경성 구경이나 시켜줄까?’하면서 제 귀를 잡고 번쩍 위로 들어올리기도 했습니다. 교무실 린치 사건이 벌어진 빌미가 바로 과외공부 때문이었습니다.”

    과외 시작 얼마 뒤 박정희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내용을 가르쳤다. “오늘 들은 말을 밖에서는 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일본이 조선역사를 모르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크레용으로 일장기의 아랫부분을 파랗게 칠해 태극문양을 만들고 네 귀퉁이에 사괘까지 그려 보였다. “이게 우리 태극기”라는 말에 꼬마들 가슴이 떨렸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뒤 사달이 생겼다. 운동장에서 놀던 한 학생이 어린 마음에 우쭐해서 친구에게 속삭였다.
    “야, 너 알아? 저기 걸린 게 우리 국기가 아니래.”
    이 말이 일본인 교사의 귀에 들어갔고, 진원지가 박정희라고 드러났다. 사실 전부터 박정희는 일본인 교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기시(大岸)·시마디(島田) 두 교사와 특히 으르렁댔다.

    돈이 없어 머리 깎지 못한 학생들 머리칼에 마구 가위질을 한 뒤 복도에 무릎 꿇리는 것을 보고 그때마다 항의한 탓이다. 당시 복도는 새로 지은 시멘트 건물이라서 바닥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시비가 붙을 때는 “칙쇼” “바가야로” 등의 거친 말도 튀어나왔다. 박정희의 반일 성향은 다른 제자들이 제기하기도 했다. 1937년 학교 첫 부임 때는 조선어 교육이 허용되던 시점이라 박정희가 조선어를 가르쳤지만, 그때도 태극기 교육을 종종 시켰다. 학생 한 명을 보초 세운 채 비밀 교육을 실시했다. 이게 과외시간 때 태극기 교육과 얽혀 문제가 커졌다.

    “문제의 그날 도교육청 시학관 일행이 학교에 감찰을 나왔습니다. 그날 저는 시학관 일행 차 심부름 조에 뽑혀 교무실에서 있었습니다. 저보다 1년 위인 학생으로, ‘김약국 딸’로 불리던 김경숙, 면장 딸이던 박순애 그리고 저 등 모두 세 명인데, 옷 잘 입고 깔끔하다고 해서 일찍부터 대기중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시학관을 영접한다면서 역전에 도열했는데, 그날 웬일로 교감 가토(加藤)가 영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에요.”

  • 20. 박정희가 일제시절, 교사를 그만둔 이유
    '15.12.8 11:07 AM (103.10.xxx.218)

    당시 박정희는 학생 5~6명에게 트럼펫을 가르친다며 뒷산으로 올라갔다. 가토가 고즈카이(소사) 한씨(2008년 작고)에게 “시학관 일행이 왔으니 내려오도록 하라”고 일렀지만 허탕을 쳤다.

    한 씨는 “트럼펫 교육도 엄연한 교육인데 나중에 내려간다”는 박정희의 말을 대신 전했다. 화가 치민 가토가 “지가 감히 오라면 와야지!”하며 와다닥 올라갔다. 10분 뒤 둘이 함께 들어섰다. 박정희는 가토의 우악스러운 손목에 멱살을 잡힌 채 질질 끌려왔다.

    “조!센진은 사람도 아냐. 모두 돼지나 개의 먹이로 줘야 해.”(조!센진다치와 닌겐자나이. 부타토 이노누 에사니 아케다라 조도이)

    가토의 욕설에 박정희가 지지 않고 “도둑놈들은 너희들이 아니냐?”(도로보다치와 오마에 다치자나이카?)고 맞고함을 쳤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찰나 가토가 “나니 구소?(제기랄. 이 거지 같은 놈)”라는 말과 함께 박정희를 업어치기로 메다꽂았다. 코피가 터졌다. 가토는 당시 서예와 유도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 일본인 교사들이 바닥에 쓰러진 박정희에게 덤벼들어 손찌검을 했다.

    당시 한국인은 여교사 박옥희와 남자 교사 하나가 더 있었으나 대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5~10분 내내 얻어맞던 박정희가 운동장으로 도망치듯 내려갔다. 소리소리 질렀다.

    “언젠가는 내가 복수할 거야!”

    ---

    이런 사건을 두고 박정희라는 인물을 해석해야 함.
    이후 평생을 두고 왜놈이라 부르며 나라없을때 당한 설움을 가슴깊이 간직
    오로지 조국근대화만이 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 여겼고
    그 한으로 일본따위 못이기겠냐? 하는 집요한 근성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작업 꼼꼼하게 시행함.

    정주영이 혀를 내두를 정도.

  • 21. 박정희가 일제시절, 교사를 그만둔 이유
    '15.12.8 11:14 AM (103.10.xxx.11)

    만주군관과 교무실 린치 사건은 어떤 관계일까? 둘은 당시 박정희의 삶을 설명하는 증거로 서로 보완적이다.
    즉 교무실 린치 사건은 박정희가 군관학교 입학에 전혀 뜻이 없다가 돌발적으로 만주로 떠났다기보다 이전부터 준비해오던 목표를 앞당긴 계기다.

    문제의 린치 사건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3년 뒤 역전 드라마가 뒤따랐다.

    “제가 여학교 2학년이던 무렵인데, 하루는 밥하는 아주머니가 흥분한 채 말해요. ‘읍내에 일본 경찰이 쫙 깔렸다. 옛날 그 일로 박정희 선생을 잡으러 온 것 같다’는 거예요. 부랴부랴 뛰쳐 나갔더니 아주머니 말과 달리 긴 칼 찬 박정희 선생님이 저쪽에 계시잖아요? 문경에 잠시 들른 것이겠지요. 지금도 선한 게 양쪽 어깨 붉은 견장 위에 달려있는 노란 별과 붉은 띠가 둘러진 모자 정중앙에 달린 노란 색 별입니다. 왼손으로 쥔 긴 칼은 뒤쪽으로 살짝 들어 끌리지 않게 했는데, 정말 위풍당당했지요.”

    박정희의 극적인 문경 귀환은 다른 증언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순희씨 증언은 더욱 상세하다. 시내를 거쳐 예전 하숙집에 간 박정희가 정좌를 한 채 방문을 활짝 열었다. 옆에는 긴 칼을 뽑아 문지방에 콱 찔러 넣었다. 대단한 위용 앞에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서슬에 놀란 파출소장과 학교 교장(가토는 당시 타교로 전근을 갔고, 다른 이가 대신 찾아왔다),

    그리고 면장 등 문경의 일본인 권력자 셋이 박정희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 달라” “우리가 잘못했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들을 한참 내려다보던 박정희가 한마디를 던졌다.

    “됐다.”

    ----
    결국, 역전드라마로 설욕함.

    일제에 맞선 당시 조선 사람의 반일·생존의 방식은 크게 보아
    1)무장투쟁형 반일주의 2)실력양성파 반일주의 3)노골적인 부일 협력 등 셋으로 분류된다.
    물론 수동적인 관망파가 다수였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런 통념상의 분류를 크게 뛰어넘는다. 그를 ‘면종복배형 반일주의자’로 봐야한다.

  • 22. 정주영이 말하는 박정희, 악바리 정신
    '15.12.8 11:16 AM (103.10.xxx.11)

    박대통령은 아무리 큰 성공을 해도 기뻐하지 않으며 항상 다음 계획에 골몰하였으며
    어떤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하느라 시간을 낭비 하는 법 없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였다.

    머리란 쓰라고 달려있는 것 인데, 그분만큼 머리달린 값을 한 사람을 난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나더러 악바리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박대통령은 나보다 더했다.

    -정주영 회고록 중 발췌

  • 23. 정주영이 말하는 박정희, 악바리 정신
    '15.12.8 11:19 AM (103.10.xxx.11)

    지금 이만큼 먹고 사는게 저절로 된 줄 아냐?

    10/26 이후로 박대통령을 비난하는게 멋처럼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난 묻고 싶다. 지금 이만큼 먹고 사는게 저절로 된줄 아냐고.

    박대통령의 결단과 신뢰를 생각하면, 내가 감히 게으름 피우며 대충 일할 맘을 먹을 수가 없었다.
    누구 하나 찬성하는 자가 없던 상황이었다.
    오일 달러가 들어오면 인플레가 일어날 것이라며 반대하는 밥벌레같은 경제학자들도 드글거렸다.

    내 계획을 믿어주신 분은 오 직 박대통령 뿐이었다. 듣자하니 나와 현대를 질시하여 뒤에서 많은 나쁜말이 오갔다고 한다. 박대통령이란 거목이 없었다면 우리가 과 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단지 일에만 몰두해도 바늘구멍 지나가는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 24. 정주영이 말하는 박정희
    '15.12.8 11:21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결코 대물림하지 않겠다.

    우린 둘다 가난한 농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 하진 않겠다는 뜻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분은 날 믿어 주셨고, 난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뭣보다도 우린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항상 소수였지만 서로 도우며 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있소?" "네, 각하" 계획안을 가져가면 항상 오금이 저리곤 했다.
    박대통령은 회계 하나 하나를 살피며 이것저것을 따져묻는데 왠 만한 전문가 저리가라할 수준이었다.
    기획참모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정씨를 믿겠어. 함 해보세요"
    이 한마디를 얻기란 참 으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허락이 떨어지면 아무런 걱정할 필 요가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박대통령은 시어미처럼 까탈스럽지 만 일단 결정하면 사람을 확실하게 믿고 밀어주는 타입이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항상 보고 하기도 전에 박대통령이 알고는 방안을 마련 해놓곤 했다.
    결코 찾아가서 상황을 조밀조밀 따져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 25. 정주영이 말하는 박정희
    '15.12.8 11:22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박대통령 이후로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다들 대단한 분들이긴 했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 사람은 박대통령뿐이다.
    그분의 사명감, 추진력, 그리고 치밀함은 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 26. 정주영이 말하는 박정희
    '15.12.8 11:23 AM (103.10.xxx.11) - 삭제된댓글

    우린 둘다 가난한 농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 하진 않겠다는 뜻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분은 날 믿어 주셨고, 난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뭣보다도 우린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항상 소수였지만 서로 도우며 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있소?\" \"네, 각하\" 계획안을 가져가면 항상 오금이 저리곤 했다.
    박대통령은 회계 하나 하나를 살피며 이것저것을 따져묻는데 왠 만한 전문가 저리가라할 수준이었다.
    기획참모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믿어보겠습니다. 함 해보세요.
    이 한마디를 얻기란 참으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허락이 떨어지면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박대통령은 시어미처럼 까탈스럽지 만 일단 결정하면 사람을 확실하게 믿고 밀어주는 타입이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항상 보고 하기도 전에 박대통령이 알고는 방안을 마련 해놓곤 했다.
    결코 찾아가서 상황을 조밀조밀 따져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박대통령 이후로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다들 대단한 분들이긴 했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 사람은 박대통령뿐이다.
    그분의 사명감, 추진력, 그리고 치밀함은 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 27. 정주영이 말하는 박정희
    '15.12.8 11:24 AM (103.10.xxx.11)

    우린 둘다 가난한 농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 하진 않겠다는 뜻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분은 날 믿어 주셨고, 난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뭣보다도 우린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항상 소수였지만 서로 도우며 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있소? 네, 각하.
    계획안을 가져가면 항상 오금이 저리곤 했다.
    박대통령은 회계 하나 하나를 살피며 이것저것을 따져묻는데 왠 만한 전문가 저리가라할 수준이었다.
    기획참모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믿어보겠습니다. 함 해보세요.
    이 한마디를 얻기란 참으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허락이 떨어지면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박대통령은 시어미처럼 까탈스럽지 만 일단 결정하면 사람을 확실하게 믿고 밀어주는 타입이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항상 보고 하기도 전에 박대통령이 알고는 방안을 마련 해놓곤 했다.
    결코 찾아가서 상황을 조밀조밀 따져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박대통령 이후로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다들 대단한 분들이긴 했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 사람은 박대통령뿐이다.
    그분의 사명감, 추진력, 그리고 치밀함은 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 28. 정주영에게 나가죽어라 다그친 박정희
    '15.12.8 11:28 AM (103.10.xxx.11)

    현재의 세계 1위 조선사업 뒤에 이 둘의 신화가 있다.

    조선소 도저히 못하겠다. 한 정주영에게 박정희 엄청나게 다그침.
    “걸어 나오는 회장님이 정말 이상했다. 마치 얼이 빠진 사람 같았다. 차에 앉더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일 당장 영국 가는 비행기표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현대건설의 격동기였던 1969~7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비서로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정 전 명예회장이 청와대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1970년의 어느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때 정 전 명예회장은 조선소를 짓기 위해 미국과 일본으로 뛰어다녔지만 차관 확보에 실패해 조선소 건립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 같은 뜻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 회장은 크게 혼이 났다.

    정 전 회장은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김학렬 부총리에게 “앞으로 정 회장이 어떤 사업을 한다 해도 모두 거절하시오. 상대도 하지 말란 말이오”라며 역정을 냈다고 밝혔는데 실상은 한층 더 심했다. 이 회장은 “알고 보니 박 전 대통령에게 ‘나가 죽어라’ ‘평생 감옥에서 살 생각하라’ 는 말까지 들었다”며 “청와대 부속실에서도 대통령이 그렇게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얘기를 할 때면 항상 음성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어려워한 정주영 전회장의 모습을 묘사했다.

  • 29. ...
    '15.12.8 11:35 AM (103.10.xxx.218)

    박정희는 자신을 조국이라는 제단에 몸을 바쳤다는 자신의 말 그대로,
    조국근대화를 위해 한민족의 호국영령과 선신들이 박정희의 몸을 빌어 이 모든 엄청난 일들을 행했다고 생각함.

    당시 박정희가 혼이 나가도록 정주영을 밀어부치지 않았다면 조선사업은 몇 십년후에나 가능했을듯
    사실, 그 정도되면 다른나라들에 이미 선점 다 당해서 경쟁력도 없고 시작도 못했을 가능성이 큼.

    실제로 박정희가 중대한 문제에 대해 화를 내면, 듣는 사람이 혼이 나갈 정도로 화를 내었고
    아랫사람이 나가야 하는데 문을 못찾아 캐비넷 문을 여는등, 웃지못할 얘기들이 많음.

  • 30. 세계저명인사들의 박정희 평가
    '15.12.8 11:37 AM (103.10.xxx.218)

    러시아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다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있잖은가?
    박정희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키신저/미 전국무장관

  • 31. 세계저명인사들의 박정희 평가
    '15.12.8 11:37 AM (103.10.xxx.218)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 지도력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이다.

    피터 드러커/경영학자

  • 32. 리콴유, 박정희 평가
    '15.12.8 11:38 AM (103.10.xxx.218)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를 꼽겠다.

    리콴유/싱가포르 수상

  • 33. 조이제,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15.12.8 11:40 AM (103.10.xxx.218) - 삭제된댓글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가 보여준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 국가관리 능력은 물론 도덕, 윤리적 수준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 두 대통령은 직접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이 불법축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국민의 사회적 근간을, 국가의 목표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흐려놓았다.
    - 조이제,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

    김영삼, 박정희는 박정희보다 훨씬 뒤떨어진 국가관리 능력에다가
    자식들 불법축재 유죄판결로, 도덕 윤리적 수준 역시 박정희에게 미치지 못했다.

  • 34. 서울대 명예교수 이인영
    '15.12.8 11:41 AM (103.10.xxx.35)

    거리는 실직자와 거지들로 득실대고, 농민과 노동자는 기아와 궁핍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물가는 오르기만 하고 거의 모든 공장은 폐쇄상태라 생산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었다.
    강도와 절도가 날뛰고 있지만 치안능력은 무기력했다.
    국민 모두가 불평을 늘어놓거나 비탄에 잠겨 있다.
    그 때 박정희가 나타났다.
    - 서울대학교 음대 명예교수 이인영

  • 35. 조이제,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15.12.8 11:43 AM (103.10.xxx.35) - 삭제된댓글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가 보여준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 국가관리 능력은 물론 도덕, 윤리적 수준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 두 대통령은 직접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이 불법축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국민의 사회적 근간을, 국가의 목표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흐려놓았다.
    - 조이제,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보다 훨씬 뒤떨어진 국가관리 능력에다가
    자식들 불법축재 유죄판결로, 도덕 윤리적 수준 역시 박정희에게 미치지 못했다.

  • 36. 아고라 펌
    '15.12.8 11:49 AM (103.10.xxx.35) - 삭제된댓글

    한국경제를 현 위치에 오게 한 1등 공신은 박정희대통령이 맞습니다.
    한국축구선수들이 열심히 했지만 히딩크라는 감독이 있어서 4강에 갔듯이...
    박정희가 있어서 1인당 GDP 2만3천불 정도에 도달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재료인 의식주 80%가 해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옷,집,먹을 것...
    한국경제의 해외경제의존도 80%
    우리가 수출해서 번 돈으로 사와서 우리가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 젊은 세대들은 원래부터 풍요로웠다고 착각하고 살만큼 한국은 발전했지요]
    수출을 시작해 외화를 벌어오기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은 바로 박정희입니다.

    경부고속도로 짓자고 했을때, 김대중과 야당은 물론 전국민이 반대했습니다.
    수출을 하려면 컨테이너선이 정박할 유일한 항구인 부산과 최대공업지역인 서울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박정희 혼자서 주장...

    고속도로건설경비 예산마련을 위해 "자동차 기름값을 2배로 올리는 법"을 통과하려다가 부결당하자,
    박정희가 밀어부쳐서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켜서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됩니다.
    국가지도자가 볼때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나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독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재라도 그 의도가 좋은 의도였습니다.

    위대한 제국 로마에서도 국가위기상황에서는... 독재를 했습니다.
    2명의 집정관의 동의하에 국정을 이끌다가 전쟁같은 특수상황에서는 1명에게 전권을 위임하는데...
    그것을 "독재관"이라고 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었기에 천년간 국가가 유지되었죠.
    당시 한국은 밥을 굶는 사람도 많았고 거의 국가가 가난에서 허덕이던 시절... 특수상황이었습니다.
    혼란기에는 오히려 미래를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독재를 하는게 훨씬 좋은 것이라고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고 천년간 지속되었으며
    현대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로마제국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 37. 민주주의가 능사는 아니다.
    '15.12.8 11:49 AM (103.10.xxx.35) - 삭제된댓글

    민주주의하던 아테네는 오래 가지 못했죠. 대중들의 선동정치, 조개껍질투표로 훌륭한 정치지도자추방하기...
    죄없는 소크라테스 사형시키기...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민주주의는 나쁜 정치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건 아니나, 그것의 단점도 항상 생각해야합니다.
    여론이란 최악의 의견이다 - 알랭 드 보통
    일정 수준이상의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결정권을 갖는 철인정치가 가장 나은 제도입니다.


    박정희가 포항제철 짓자고 했을때, 모든 국민은 물론 미국과 전세계국가가 하지 말라고 압박했습니다.
    한국 조선사업이 세계1위죠? 그거 박정희가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전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짓고,
    풍부해진 철강생산량을 가지고 정주영에게 조선사업을 권유했으나,
    정주영이 그런 거대한 사업을 어떻게 합니까? 쫄아서 시작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을때,
    "당신이 하면 된다는 정주영이 맞어?" 반강제로 시작하게 했습니다.

    제철소건설!!! 전국민이 반대하고 미국마저 해외원조를 끊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돈이 없다보니 대일청구권자금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다 끌어와서 과감히 결단한 것입니다.
    제철소사업은 규모가 워낙 커서...
    실패하면 국가부도사태까지 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 옷 벗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발전하면서 일본에서 철강사다가 일본에 경제예속되고 자립하기 힘들어 지는 것을
    뛰어넘기위해 혼자서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 과감하게 실행한 것입니다.

    정말로 독재해서 호위호식할 사람이면 그런 머리아프고 위험도 높은 사업은 안 했겠죠.
    그냥 미국에 일본에 딸랑딸랑 아부하며 대통령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히딩크가 온갖 욕 다먹어가면서 오직 월드컵만을 위해서 강팀하고 평가전해서 5:0으로 지고 다니고 그런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철소를 본적도 없고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국민들이 모두 반대한다면...
    국민들이 어리석어 미래를 보지 못한다면... 독재를 해서 일단 밀어부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훌륭한 축구 감독이 선수들이 욕한다고 훈련을 약하게 시켰다가 나중에는 더 비참한 미래가 오는 것을 알기에 독재를 해서 일단은 밀어부치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4. 경부고속도로건설, 포항제철건설 2가지를 이루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입니다.
    야당말대로 복지한다고 돈을 투자하지 않고,
    수출을 위한 동맥인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싼 값에 철강공급이 없었다면...
    현재 한국경제도 없는 것입니다.




    박정희도 인간이라, 공도 있고 과도 있습니다.
    인간은 공도 있고 과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때, 625이후 세계최빈국이던 한국을 여기까지 오게 한...
    단 한명을 꼽는다면 객관적으로 박정희입니다.

  • 38. 민주주의가 능사는 아니다.
    '15.12.8 11:51 AM (103.10.xxx.194)

    한국경제를 현 위치에 오게 한 1등 공신은 박정희대통령이 맞습니다.
    한국축구선수들이 열심히 했지만 히딩크라는 감독이 있어서 4강에 갔듯이...
    박정희가 있어서 1인당 GDP 2만3천불 정도에 도달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재료인 의식주 80%가 해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옷,집,먹을 것...
    한국경제의 해외경제의존도 80%
    우리가 수출해서 번 돈으로 사와서 우리가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 젊은 세대들은 원래부터 풍요로웠다고 착각하고 살만큼 한국은 발전했지요]
    수출을 시작해 외화를 벌어오기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은 바로 박정희입니다.

    경부고속도로 짓자고 했을때, 김대중과 야당은 물론 전국민이 반대했습니다.
    수출을 하려면 컨테이너선이 정박할 유일한 항구인 부산과 최대공업지역인 서울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박정희 혼자서 주장...

    고속도로건설경비 예산마련을 위해 자동차 기름값을 2배로 올리는 법을 통과하려다가 부결당하자,
    박정희가 밀어부쳐서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켜서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됩니다.
    국가지도자가 볼때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나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독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재라도 그 의도가 좋은 의도였습니다.

  • 39. 세계사를 통해 본 번영의 정치적 장치
    '15.12.8 11:52 AM (103.10.xxx.194)

    위대한 제국 로마에서도 국가위기상황에서는 독재를 했습니다.
    2명의 집정관의 동의하에 국정을 이끌다가 전쟁같은 특수상황에서는 1명에게 전권을 위임하는데...
    그것을 독재관이라고 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었기에 천년간 국가가 유지되었죠.
    당시 한국은 밥을 굶는 사람도 많았고 거의 국가가 가난에서 허덕이던 시절 특수상황이었습니다.

    혼란기에는 오히려 미래를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독재를 하는게 훨씬 좋은 것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고 천년간 지속되었으며 현대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로마제국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하던 아테네는 오래 가지 못했죠. 대중들의 선동정치, 조개껍질투표로 훌륭한 정치지도자추방하기.
    죄없는 소크라테스 사형시키기...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민주주의는 나쁜 정치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건 아니나, 그것의 단점도 항상 생각해야합니다.
    여론이란 최악의 의견이다 - 알랭 드 보통
    일정 수준이상의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결정권을 갖는 철인정치가 가장 나은 제도입니다.

  • 40. 미래를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장기집권하는게 훨씬 좋
    '15.12.8 11:54 AM (103.10.xxx.194) - 삭제된댓글

    박정희가 포항제철 짓자고 했을때, 모든 국민은 물론 미국과 전세계국가가 하지 말라고 압박했습니다.
    한국 조선사업이 세계1위죠? 그거 박정희가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전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짓고,
    풍부해진 철강생산량을 가지고 정주영에게 조선사업을 권유했으나,
    정주영이 그런 거대한 사업을 어떻게 합니까? 쫄아서 시작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을때,
    당신이 하면 된다는 정주영이 맞어? 라고 밀어부치며 반강제로 시작하게 했습니다.

    제철소건설!!! 전국민이 반대하고 미국마저 해외원조를 끊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돈이 없다보니 대일청구권자금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다 끌어와서 과감히 결단한 것입니다.
    제철소사업은 규모가 워낙 커서...
    실패하면 국가부도사태까지 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 옷 벗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발전하면서 일본에서 철강사다가 일본에 경제예속되고 자립하기 힘들어 지는 것을
    뛰어넘기위해 혼자서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 과감하게 실행한 것입니다.

    정말로 독재해서 호위호식할 사람이면 그런 머리아프고 위험도 높은 사업은 안 했겠죠.
    그냥 미국에 일본에 딸랑딸랑 아부하며 대통령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히딩크가 온갖 욕 다먹어가면서 오직 월드컵만을 위해서 강팀하고 평가전해서 5:0으로 지고 다니고 그런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철소를 본적도 없고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국민들이 모두 반대한다면...
    국민들이 어리석어 미래를 보지 못한다면... 독재를 해서 일단 밀어부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훌륭한 축구 감독이 선수들이 욕한다고 훈련을 약하게 시켰다가 나중에는 더 비참한 미래가 오는 것을 알기에 독재를 해서 일단은 밀어부치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4. 경부고속도로건설, 포항제철건설 2가지를 이루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입니다.
    야당말대로 복지한다고 돈을 투자하지 않고,
    수출을 위한 동맥인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싼 값에 철강공급이 없었다면...
    현재 한국경제도 없는 것입니다.

  • 41. 미래를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장기집권하는게 훨씬 좋
    '15.12.8 11:55 AM (103.10.xxx.194) - 삭제된댓글

    박정희도 인간이라, 공도 있고 과도 있습니다.
    인간은 공도 있고 과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때, 6.25이후 세계최빈국이던 한국을 여기까지 오게 한
    단 한명을 꼽는다면 객관적으로 박정희입니다.

    -광주에 산다는 아고라 논객의 박정희 평가

  • 42. 박정희는 미래학자이자 철인
    '15.12.8 11:57 AM (103.10.xxx.194)

    박정희가 포항제철 짓자고 했을때, 모든 국민은 물론 미국과 전세계국가가 하지 말라고 압박했습니다.
    한국 조선사업이 세계1위죠? 그거 박정희가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전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짓고,
    풍부해진 철강생산량을 가지고 정주영에게 조선사업을 권유했으나,
    정주영이 그런 거대한 사업을 어떻게 합니까? 쫄아서 시작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을때,
    당신이 하면 된다는 정주영이 맞어? 라고 밀어부치며 반강제로 시작하게 했습니다.

    제철소건설!!! 전국민이 반대하고 미국마저 해외원조를 끊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돈이 없다보니 대일청구권자금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다 끌어와서 과감히 결단한 것입니다.
    제철소사업은 규모가 워낙 커서...
    실패하면 국가부도사태까지 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 옷 벗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발전하면서 일본에서 철강사다가 일본에 경제예속되고 자립하기 힘들어 지는 것을
    뛰어넘기위해 혼자서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 과감하게 실행한 것입니다.

    정말로 독재해서 호위호식할 사람이면 그런 머리아프고 위험도 높은 사업은 안 했겠죠.
    그냥 미국에 일본에 딸랑딸랑 아부하며 대통령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히딩크가 온갖 욕 다먹어가면서 오직 월드컵만을 위해서 강팀하고 평가전해서 5:0으로 지고 다니고 그런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철소를 본적도 없고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국민들이 모두 반대한다면...
    국민들이 어리석어 미래를 보지 못한다면... 독재를 해서 일단 밀어부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훌륭한 축구 감독이 선수들이 욕한다고 훈련을 약하게 시켰다가 나중에는 더 비참한 미래가 오는 것을 알기에 독재를 해서 일단은 밀어부치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경부고속도로건설, 포항제철건설 2가지를 이루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입니다.
    야당말대로 복지한다고 돈을 투자하지 않고,
    수출을 위한 동맥인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싼 값에 철강공급이 없었다면...
    현재 한국경제도 없는 것입니다.

  • 43. 박정희는 미래학자이자 철인
    '15.12.8 11:57 AM (103.10.xxx.194)

    박정희도 인간이라, 공도 있고 과도 있습니다.
    인간은 공도 있고 과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때, 6.25이후 세계최빈국이던 한국을 여기까지 오게 한
    단 한명을 꼽는다면 객관적으로 박정희입니다.

    -광주에 산다는 아고라 논객의 박정희 평가

  • 44. ...
    '15.12.8 12:03 PM (103.10.xxx.194) - 삭제된댓글

    그 어려운시대, 지혜로운 현자를 알아보고, 또 그를 믿고 투표해주고
    함께 조국근대화에 피땀흘려 동참한 그 시대 세대에게 감사드림.

  • 45. 박정희 둘째딸 박근령 인터뷰
    '15.12.8 12:12 PM (103.10.xxx.202)

    대통령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 유학 못 보낸다고 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박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었다고 했다.
    ‘왜 유학의 꿈을 접었냐’고 묻자, 박 이사장은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는 유학을 못 보낸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언니는 공부를 잘해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1등으로 졸업하고 장학금 받아 갔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지방에 내려갈 때 추풍령이 가까워지면 아버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할 때 여기가 제일 난공사 지역이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그분들 생각하며 묵념이라도 하고 가자’고 하셨다”고 말했다고 월간조선은 전했다. 박 이사장은 또 “차를 타고 가면서 아버지는 다리 이름, 터널 이름을 일일이 물어보셨고, 우리가 그걸 다 외웠다. 아버지는 ‘다리 하나, 공장 하나를 건설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셨다’고 했다”고 월간조선은 덧붙였다.

    ---

    금고에 돈을 쌓아둬?
    놀고있네.
    자식교육에는 과부달러빚이라도 내서 교육시키고 싶은게 부모맘이다.
    그런데, 자신의 월급외에는 그 어떤 돈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말임.

    대통령 아래 허락된 국가통치자금
    단 한 푼도 헛되이 사용안하려고 늘, 국민을 생각하며 옷깃을 여민게 박정희임.
    그래서 마지막 서거모습에 검시관이 놀랐다고 함.
    도금벗겨진 넥타이핀, 후줄근한 양복에 혁띠는 가죽이 다 갈라지고,
    전혀 대통령이라 생각못했다고함.

    미래를 보는 안목, 이를 향한 치밀한 경주, 거기에 청렴성까지
    이런 지도자를 둔 건 그냥 대한민국의 행운이자 축복이었음.

  • 46. 조이제,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15.12.8 12:15 PM (103.10.xxx.202)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가 보여준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 국가관리 능력은 물론 도덕, 윤리적 수준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 두 대통령은 직접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이 불법축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국민의 사회적 근간을, 국가의 목표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흐려놓았다.
    - 조이제,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보다 훨씬 뒤떨어진 국가관리 능력에다가
    자식들 불법축재 유죄판결로, 도덕 윤리적 수준 역시 박정희에게 미치지 못했다.

  • 47. ....
    '15.12.8 12:40 PM (70.75.xxx.20)

    개인적으로 박정희 자식 중 한 명이랑 같은 학교 다녔음. 생각보다 대통령 자식 티가 전혀 없고 검소함.

    예전에는 젊어서 데모도 많이 했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박정희만한 지도자 없음.

    원글님 여기에 이런 내용 쓰시면 반응이 어떤지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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