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빛좋은 개살구 내 인생

허무 조회수 : 3,514
작성일 : 2015-11-26 02:56:46
저는 철이 없었던 시절이 없었어요 기억나는 순간부터 엄마가 가엾었고 아빠가 싫었고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웠어요 남들이 보기엔 사업가 아버지에 공무원 엄마(60년대에 두 분 다 대졸자셨죠) 사랑받는 외동딸이 있는 단란한 가정..실상은 수입은 제로에 허울뿐인 아버지의 사업으로 빚만 늘었고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와 자격지심 심한 아버지의 불화로 집은 늘 폭발 직전 전쟁터 같았어요 자존심 강한 엄마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어린 제게 하소연하는게 유일한 탈출구여서 저는 어려서부터 뭐든 알아서 잘 하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나까지 말썽부리면 엄마가 어찌 될까봐 두려웠으니까요 실제로 엄마가 자살 기도하신 적도 있어서 아직도 심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어쨌든 지옥같은 집이 싫어 공부했고 지방 여고에서 서울대에 진학했어요 합법적으로 집에서 나올 수 있어 기뻤지만 부모님만 두고 온다는게 두려웠어요 저라는 완충지대가 없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무서웠죠 다행히 아버지가 사업 욕심을 버리시면서 불안한 평화가 시작됐어요 뭐든 경험하고 즐겁게 보내고 싶었지만 저질 체력에 엄마 기대를 저버리면 안된다는 자의식으로 무척 폐쇄적으로 살았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뭐든 마지막에 마지 못해 쫓기듯 하며 살았어요 의욕도 실천력도 타고나지 못해 주어진 상황만 겨우겨우 해결하며 넘어갔지만 책임감은 강해서 일을 그르친 적은 없었어요 여학생이 적은 학교라 좋다는 남자도 적지 않았지만 연애, 결혼에 부정적이라 모두 거부하고 수녀처럼 학교만 다니다 졸업하고 취직했어요

직장 3년 쯤 다니니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져서 대학원 진학하면서 직장 그만뒀어요 제 인생 최초로 뭔가 저질러봤네요 그런데 역시 공부는 저랑 맞지 않았어요 힘든 직장생활의 탈출구로 택한 것이었을 뿐이었죠 그러다 지금 남편을 만났고 잘생긴 외모에 끌렸는지 결혼하게 됐어요 연애시절에도 절대 젠틀하지 않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었는데 오래 연애하다보니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나봐요 웨딩드레스 보러가서도 짜증내던 남편..그 때라도 그 결혼 깼어야하는데..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네요

같이 대학원 공부하던 남편은 시험 준비로 방향을 틀었고 결혼까지 한 입장이고 결혼 당시에도 시댁은 제 예물비 오백만원 주신게 다이고 친정에서 전세금 주셔서 시작했던 상황이라 제가 재취업해서 돈을 벌었어요 그나마 5년 안되서 합격했고 저는 미뤘던 임신이 되었는데 건강이 안좋아 휴직하다 결국 퇴사했어요

그로부터 십여년이 흘렀어요 남들 보기엔 단란해보이는 서울대 출신 전문직 남편과 주부인 아내, 잘생기고 똑똑한 아이가 있는 가정인데 실상은 가부장의 표본같은 마초에 하늘이 내린 효자(셀프 아니고 부인을 통한 대리 효도)이면서 아이 낳은 후로 십년 넘게 완벽한 리스이고 밖에선 더없이 젠틀하다 아내에겐 이유없이 모욕과 폭언을 일삼는 남편과 해준 거 없이 너무나 당당히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시댁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요 합가, 시아버지 병구완도 제 몫이었고 지금도 한달 반은 시댁의 각종 일 처리로 시간이 흘러갑니다 어린 시절 영재 판정 받았던 아이는 사춘기 접어들며 공부에 손을 놓고 열심히 노네요

이번 생은 포기하고 그만 접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IP : 110.11.xxx.194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mariah
    '15.11.26 3:55 AM (110.70.xxx.80)

    힘내세요! 동기가 어찌됐든 아무나 하기 힘든일들 척척 해냈던 님 스스로를 대견하다 생각하시고 힘내세요

  • 2. ....
    '15.11.26 6:13 AM (86.184.xxx.71)

    힘내세요.
    가을이라 그런지... 저도 인생을 돌아보고 철없던 시절 반성하게 되네요. 가장이 저인지라, 피곤하게 일하는게 , 전 남편이 자상한 편인데도, 부담스럽네요. ㅠ

  • 3. 월글님
    '15.11.26 6:52 AM (39.7.xxx.102)

    쓰신 글로만 봐서는 힘든 사회생활 할 끈기나 체력은 없어보입니다. 그냥 남들은 전업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난 복받았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심이 좋겠어요. 남편이 폭언한다고 하셨는데 잘달래시고요. 원글님이 평소 본인 삶이 맘에 안드니 그게 은연중에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고 남편은 그게 싫을수도 있고요.

  • 4. **
    '15.11.26 8:02 AM (183.104.xxx.194)

    원글님 글 읽어보니 상당히 우울증이 심하신듯 합니다. 병원 방문해서 약 드시면 좋아지실듯 해요
    동생도 3자가 봤을때 아무 문제 없는데도 매일 이혼한다고 난리치고 불평불만이 그리 많고 잠도 못자고 해서 병원 데려갔더니 우울증이 깊어서 약 먹고 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졌어요. 동생이 우울증약 평생먹고 싶다고 합니다. 전처럼 조바심도 없고 편안해요.웃음기가 없던 애가 표정도 너무 좋아지고 치료를 꾸준히 받으시면 긍정적마인드가 생길듯 합니다. 내게 주어진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지 주어진 나쁜면만 집중하면 누구나 살고 싶지 않겠지요. 힘내세요.

  • 5. ...
    '15.11.26 8:29 AM (58.234.xxx.14)

    원글님 글을 읽어보니 저와 많이 비슷하여 마음이 전해져 아파오네요
    어린시절 아버지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저두 반대성향의 더한 남편만나
    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겉에서 보면 그럴듯한 모습이지만 속은 공허함뿐이...
    우울한게 당연하지만 전 그럴수록 나만 손해라는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어요
    님도 힘내시고 남편을 내려놓으시고 이겨내시길 응원합니다

  • 6. ..
    '15.11.26 8:36 AM (112.149.xxx.111) - 삭제된댓글

    그래도 그 정도면 잘 버틴 거예요.
    가정이 불안한데 공부 잘하는 사람 드물어요.
    술, 담배 하면서 양아치들과 어울리고 자기 인생 오그라들게 하는 사람은 많지만요.
    전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한국에서 대체 누가 이혼을 하는 건지 궁금해요.
    빨리 이혼이 흠이 아닌 세상이 오길 바래요.

  • 7. 원글님.
    '15.11.26 9:02 AM (218.39.xxx.199) - 삭제된댓글

    어린시절 영재판단 받았던아이가 공부에 손놓았다는데서 원글님 현재 상황을 알거 같아요.

    병원가서 우울증 진단 받으시고 상담과 약복용하시길 바래요. 원글님 지금까지 잘 살아오셨고 저랑 겹치는 부분도 많네요.

    저는 아이 위해서 병원갔고 약먹고 힘내서 아이에게 저의 힘들고 지친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약먹고 있어요. 비폭력대화법도 공부하고 상담도 하고요. 남편과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고 남편도 많이 변했어요. 아직도 폭언을 참지는 못하지만 곧바로 사과하는 정도까지는 발전했어요.

    원글님 이쁘게 가꾸시고 원글님 마음 치료에 집중하시면 옆에있는 남자들이 자연스레 원글님 옆에 본인할일 하면서 있을거예요.

    리스문제도 병원상담 받으면서 해결해보시고요.

  • 8. ㅇㅇ
    '15.11.26 10:36 AM (219.240.xxx.37) - 삭제된댓글

    일단
    위의 분들 말씀처럼 병원 가든지 심리상담을 받는 게 우선일 거 같고요.
    본인의 일을 찾으세요.
    그래야 시댁 문제에도 노우 할 수 있게 되게
    남편하고 아이한테 의존적인 지금 생활을 어느 정도 정리하는 게 필요할 것 같네요.

    주위에
    비슷한 상황인 분들 몇 있어요.
    힘내시고요.

  • 9. ...
    '15.11.26 10:45 AM (175.124.xxx.36) - 삭제된댓글

    토닥토닥... 전 이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부모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예요.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감과 힘은 거기서 나오는것 같아요. 저도 덕분에 어떤 일이든 수동적이고 의욕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님아... 님보다 훨씬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저도 사는게 의미없다는 극단적인 생각 지금도 많이 해요. 남편과 갈라설 생각도 해봤어요. 하지만 죽어서 미안한 사람 한명도 없는데 유일하게 자식들에겐 미안하네요. 그래서 삶은 언제든 끝낼 수 있으니 자식에 대한 의무는 하루라도 더 한다 생각하자. 또 한국에서 이혼한 여자로 살아간다는거 얼마나 외롭고 힘든일인지 알기에 그래 내가 험한꼴 안당하고 돈안버는게 어디냐 이렇게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님도 어린시절에 경험했겠지만 엄마의 행복은 내 자식들에게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럴 의지조차 안생기지만 그래도 무조건 좋은 음식 많이 먹고 벗어나려 몸부림 치세요. 전 이제 이 인생이 덤이라고 생각하니 아주 조금이지만 그냥 또 나름 괜찮아지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03660 일룸 거실장 좀 봐주시겠어요 주부님들~~~~~플리즈.... 14 2015/11/26 7,122
503659 돈있는 여자들의 공통특징?? 7 ........ 2015/11/26 3,802
503658 회사명판과 회사직인의 차이 12 첫눈 2015/11/26 45,888
503657 이런 친구관계를 유지해야할까요? 8 1ㅇㅇ 2015/11/26 2,721
503656 4살 영어교육? 어찌 생각하시는지 7 .... 2015/11/26 2,637
503655 이거 백내장 증상인가요? 3 혹시 2015/11/26 2,488
503654 유재열이 좋아하는 시 - 그대 씨앗만은 팔지마라 (박노해님) 2 은빛여울에 2015/11/26 1,194
503653 12월 파리 서유럽 패키지여행 7 쥬리 2015/11/26 2,844
503652 지역 자사고 면접 준비 어떻게 하시나요? 1 학부모 2015/11/26 1,064
503651 천안 눈 많이 와서 교통마비 3 2015/11/26 1,762
503650 전세긍대출은 그날나오나요 1 오후의햇살 2015/11/26 754
503649 예비고1 수학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4 조언 좀주세.. 2015/11/26 1,683
503648 포도씨유는 어디가 더 좋아요? 스페인산 vs 프랑스산 1 배고프다 2015/11/26 1,462
503647 동치미 소주넣고 담근거.. 애들 먹어도 되나요? 5 ... 2015/11/26 3,233
503646 언니에게 김장 보내주려는데 택배사 어디가 좋나요 7 궁금이 2015/11/26 1,340
503645 아치아라의 비밀 9 반전 2015/11/26 2,829
503644 시중 오리엔탈 드레싱 어디께 제일 맛있나요? 5 오리엔탈 2015/11/26 2,776
503643 네덜란드 사돈, '박근혜의 IS비유 발언, 유럽선 탄핵감' 10 탄핵 2015/11/26 2,142
503642 두달된 강아지가 사료,물,약,통조림...다 거부해요 ㅠㅠ 3 푸들맘 2015/11/26 1,654
503641 전세가와 매매가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데 자발적 반전세로 가야할.. 11 곧 재계약... 2015/11/26 2,814
503640 남편 요로감염걸리면 배우자도 검사해봐야하나요? 3 2015/11/26 1,670
503639 한 집에서 두 종교를 믿으면 안된다? 10 종교 2015/11/26 2,506
503638 좋은대학??.. 과 장학생.. 어떤게 나은가요?? 18 .. 2015/11/26 2,237
503637 다르게 온 코트 8 2015/11/26 1,880
503636 아기가 엄마를 알아보는 시기가 언제에요~? 6 엄마 2015/11/26 10,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