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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없이 혼자 떠난 제주도 1박2일-6

pipi 조회수 : 3,571
작성일 : 2015-11-12 00:10:07

주상절리 텅 빈 주차장에서 느낀 기분은 이런 거였습니다.

여기서 나는 차도, 렌트카도, 혹은 데리러 올 관광버스도 없구나,

에라, 더해서 누가 내가 여기 있는지 알 수도 없겠지...

게다가 비는 오고, 경치는 그럭저럭인데 

아침이라 텅, 텅, 텅, 빈 것이 좋았습니다.

둘러보니 대략 중문단지의 이러저러한 호텔들의 위용이 

다 보이는 위치였고요.

아마 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간 쯤...

비는 오는데 바람은 안 분다는 주차장 직원 아저씨에게

택시 좀 불러달라고 부탁합니다.

제주도는 관광지라 대체로 친절했습니다.

그니까 수도권 사람들의 친절이랑 조금 다른

낯선 사람들에 대한 친절,

이게 보통의 도시에서는 잘 안 되거든요.

이런 관광지의 친절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넘치는 곳은

한국에서 제주도가 최고 일 것 같네요... 


택시를 타고 제가 도착한 곳은 제주 신라호텔입니다.

일단 공항리무진을 타야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는 상태라

전날 내렸던 중문단지보다 신라호텔이 편할 것 같았고요.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밥'이었어요.

만 하루동안 제대로 먹은게 어설픈 전복죽인데

솔직히 그 전부터 따지자면...-_- 

아무튼 제주도 맛집에 가겠단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어제의 전복죽을 생각하면 

그냥 제대로 된 백반 정도 편하게 먹으면 좋겠단 생각에

선택한 곳이 신라호텔 한식당입니다.

그리고

정말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정직한 백반을 먹었어요.

옥돔구이와 미역국이었는데

뭐 우리집에서 자주 해 먹는 가자미 구이와 

멸치육수 미역국 보다 더 낫지는 않다... 정도의 맛이었지만

하지만 전날의 전복죽보다는 훨씬 좋았고요.

식당 안의 그림도 마음에 들었어요.

좋은 호텔에는 대체로 좋은 그림들이 걸려 있지요...(?)

조식 손님이 아니라서 조금 어색했는데

센스 있는 직원이 과일과 커피, 약간의 베이커리까지 챙겨줘서

고맙기도 했습니다. 

여기선 약  3만 원 정도 쓴 것 같아요...

(이제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음... 아무튼 전날의 전복죽보단 훨씬 나았답니다. -_-;;;;;;


식사를 하고 나오니 바로 앞으로 신라호텔 정원이 이어지더군요.

별 관심 없었는데 사람들이 호텔 우산을 쓰고 왔다갔다 하길래

따라 가봤어요.

자쿠지, 캠핑장, 아기자기한 정원들...

에뻤고요.

우산없이도 걸을만 한 비오는 아침이었습니다.

요리조리 토끼를 따라가는 엘리스처럼 걸어봤는데

옆의 롯데호텔과 이어지기도 하고

프라이빗 해변과 이어지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왜냐면 그냥 잘 조성된 아파트 정원 같은 느낌도 있었거든요)

아무튼 다시 해변으로 이어지길래 나가보니

어제 중문단지 서퍼들의 해변이 나옵니다.

풍경도 똑같고, 또 어설프게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제 짧은 제주 여행에서

걸으면 걸을수록 늘 같은 해변으로 나가게 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어요.

그니까 스물 네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저는 다른 방향에서 같은 해변의 같은 서퍼들을 구경하며

같은 동네를 빙빙 돈 거죠.

아무튼 괜찮습니다.

제가 갔던 세 가지 방향의 해변 투어가

다 나쁘지 않았어요.

호텔에서 가거나, 퍼시픽랜드에서 가거나

길을 잃어 가거나,

그냥 호젓한 해변이었고

제가 돌아다닌 길마다 숲마다

평소 제 동네의 나무들과 다른 식물들이 

번성하고 있었답니다.


신라호텔에 오길 잘 했다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제주 리무진 버스를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전혀 모르는 제가

프로트의 안내와 도어맨의 안내를 통해

아주 편하게 공항까지 갈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숙박객도 아니었는데

우산도 씌워줬고요...

그냥 그런게 좋았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라는 게,

정말 그럴 때 빛을 발하더군요!

말 그대로, 반짝반짝! ㅎㅎㅎ


공항으로 와서 시간이 남길래 면세점에 들렀어요.

예약 없이 월요일 저가 항공 티켓을 7만원 정도에 끊었고요.

남성용 화장품세트와

위스키

담배

가 눈에 띄더라고요... 음....


뭘 살까 하다가

내가 뭘 사러 온 관광객은 아니잖아? 

그래도 뭐 하나 샀습니다.

면세 하나 해야죠...


_____


겨울(?)이 되서야 여행기 하나를 겨우 다 썼네요. 

저는 결혼 15년차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런 경험도 하게 되었어요.

기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제주도는 좋은 곳이더라고요.

갑자기, 혼자, 어디 가고 싶으신 분들께 

제주도 강추합니다.

준비할 것도 없고요.

관광지라 친절하고요.

그냥 비행기 타면 한 시간인데

떠나왔다는 기분은 흠뻑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생각한대로 살지 않고

살아지는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_-;;


글이 두서없이 들쑥날쑥한데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 달아주신 님들께

아주아주 많이 감사드립니다.






IP : 175.213.xxx.170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5.11.12 2:07 AM (114.203.xxx.61)

    전 지난주 여자넷이 하루여행 했는데
    이렇게 혼자하는 여행도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되네요
    언젠간 꼭....!
    글 읽다보니 저의 제주여행의 그림이 막떠오르네요.
    글...좋아요~!

  • 2. 기다렸어요.
    '15.11.12 2:08 AM (39.120.xxx.5)

    잘 읽었습니다. 이제 끝 인가요. -_-;;
    pipi님 덕에 소설을 읽는듯.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네요. 표현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행으로 복잡한 머릿 속이 깨끗이 정리 되진 않죠.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가끔 생각 나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생각하게 돼요.
    저도 글 읽으니 불현듯 나도 떠나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라도 그러게 되면 저도 글 올려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웃게 되네요.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 3. Dd
    '15.11.12 7:35 AM (24.16.xxx.99)

    저역시 글 만으로도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 느낌이네요. 그런데 낯설기도 하지만 그립기도 한 익숙한 기분이예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처음 본거라 지난 번 것들을 찾아 읽었어요.
    저같은 분들을 위해 링크 겁니다.

  • 4. Dd
    '15.11.12 7:35 AM (24.16.xxx.99)

    5편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2019073&page=1&searchType=sear...

    4편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1981283&page=1&searchType=sear...

    3편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1970601&page=1&searchType=sear...

    2편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1970580&page=1&searchType=sear...

    1편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1964236&page=1&searchType=sear...

  • 5. 내가
    '15.11.12 11:48 AM (222.116.xxx.11) - 삭제된댓글

    제주도 시내 한복판에서 바느질집이란 가게를 하는대요
    가게에 보일러 따슨물만 해결되면 가게를 이렇게 여행 오시는 분들에게 빌려 주고 싶어요
    저녁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오붓하게 혼자 잘수 있거든요
    물론 그 시간외에도 바느질 하는 집이니 그냥 놀아도 되고요
    작은방 하나랑 ㅡ그보다 작은 거실이 하나 가게에 붙어 잇거든요
    한사람은 실컷 살만큼.
    단지 난방이 안되네요, 아깝게도,
    물론 고치면 되는데 귀찮아서
    하루, 이틀정도 그냥 아무생각없이 나들이 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면 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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