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군장성들의 옛 일본군 상관들을 한반도에 대거 파견하여 고문단으로 활동하게 함으로써 실제적으로 한국군이 일본군의 지휘를 받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당시 한국군 고급장교는 모두 일본군 장교출신이었으며 80년대 까지 일본군장교출신들이 육군참모총장을 독식하면서 권력과 부를 독차지 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49년, 주일 미 극동군 사령부(사령관 맥아더)는 이미 남침 준비를 끝낸 북한군에 대비, 미군 병력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2차 대전에서 살아남은 일본인 군인들을 모아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 상륙작전 훈련을 실시했다(일본 군사 전문가 하야시시게오 저, 『주한미군』).
이를 토대로 막상 6.25전쟁이 일어나자 불과 1주일 후, 미 극동군 사령부는 극비리에 채병덕, 이형근, 백선엽, 정일권, 이종찬 등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거의 모두였던 한국군 지휘부의 군사 고문 자격으로 2백여 명이라는 많은 수의 전 일본군 고급 장교들을 파견했을 뿐 아니라 그간 군사훈련을 마친 일본군을 한국군복으로 갈아입혀 지상 전투 요원 약 2개 사단, 기타 소해정 46척, 수송함 등 해군 병력 2천 5백~3천, 항공 조종사, 첩보, 의무, 통역, 보급 등 총 2만여 명의 일본군을 극비리에 미군과 함께 참전시키는 기민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전 미‧일군의 군사훈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