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언제나 말하는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극단적 언어는 언제나 불안과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적과 나’의 이분법은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적’으로 지목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폭력을 가해도 좋다는 의미다. 그것은 상대방이 존재할 권리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좌파’, ‘빨갱이’는 모든 대화를 차단하고 상대의 인간성을 부인하는 전쟁과 학살의 언어다. 이 경우 자신이 적으로 지목한 개인이나 집단의 약간의 불복종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지금 불안과 위기 상태에 빠진 것 같다.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과격하다. 그들이 말하듯이 학교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역사학자의 90%가 정말 좌익이었다면 이 나라는 하루도 지탱될 수 없었을 것이다. 판단력을 가진 학생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집필한 모든 교재와 논문이 유통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한다. 정권 비판 세력은 졸지에 비국민, 즉 배제와 폭력 행사의 대상이 되었다. 국정교과서 비밀 티에프(TF)팀이 뭐 하는지 보자고 건물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을 ‘화적떼’라고까지 부른다. 심지어 한 뉴라이트 교수는 정부 시책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국사편찬위원회를 ‘반역’이라고 지목했다.
며칠 사이에 쏟아져 나온 이 적대의 언어들은 모든 학자, 교양인, 야당 의원, 그리고 반수 이상의 국민을 적으로 돌린다. 어버이연합은 경찰관을 두들겨 패고, 국회의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다. 이 정부는 국정화를 홍보하기 위해 ‘애국반상회’를 개최하여 온 국민에게 사상 주입을 하겠다고 한다. 일제 말 전시체제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
국정교과서 티에프팀의 작업 현장이 발각되자 공무원들은 컴퓨터를 끄고 문을 잠그고 자료를 파괴하고 얼굴을 가린 채 경찰차에 탔다. 그런데 적반하장 격으로 야당이 그들을 ‘감금’했다고 주장한다. 파괴된 문서, 활동한 사람의 신원, 청와대 일일보고 등 드러난 모든 활동은 정상적 공무집행이 아닌 청와대 지휘하의 탈법 활동의 ‘기운’이 진동한다.
극단적 언어 사용과 당국의 반복된 거짓말은 이 정권이 지금 상당한 불안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경우 권력은 공식 정부기구가 아닌 권력자 측근 극소수에 집중되고, 모든 길은 청와대로 통하며, 권력 내부에서도 정상적 절차를 거쳐서 정책이 결정되지 않고, 충성을 맹세하거나 더욱 강경하고 과격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즉각 기용된다. 출세욕은 강하지만 그 직업집단에서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이 돌격대장을 자임하고, 그래서 발탁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이승만 정권 말기, 유신 말기가 그러했다. 자유당 기획위원 3~4명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선거에서 이승만·이기붕이 압도적 표차로 이기지 않으면 공산당 천지가 된다고 부하들을 협박했다. 유신 말기에도 권력은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완전히 집중되었다. 부마항쟁이 발생하자 차지철은 시위대 100만명쯤 죽여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 사법부는 권력의 하수인이 되었고, 언론은 기능을 상실했고, 정권을 비판하면 공산당 취급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야당은 비판 기능을 거의 상실했고, 조직적 저항운동도 없고, 국민들은 대체로 복종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경우 위기와 불안은 국민의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권력 유지의 욕망 혹은 권력 상실의 두려움을 가진 집권세력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국가기관을 도구화하려다가 사고를 친 것이다.
권력이 야당과 지식인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배제의 언어를 사용하면 정상적 국가운영이 어렵다. 국정교과서에 사활을 거는 그들의 논리, 심리는 지금 국민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 산적한 국가적 의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국 정치가 다시 이런 꼴로 되돌아가는 것은 국가적인 비극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