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토요일 백담사,낙산사,양양남대천 다녀왔습니다.
#. 백담사
지금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주말의 여행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강원도로 여행을 계획한 건
어디든 떠나야 할 것만 같은 가을이라서 였고
부부로 함께하면서 이런저런 고비는 있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10년동안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우리에게, 서로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그래봐야 국내여행.
그것도 집에서 두세시간 걸리는 소박한 강원도 여행이었지만
우리에겐 일부러 계획해야 가능한 일상의 탈출이었습니다.
이 여행을 위해서 남편은 금요일과 토요일 월차를 내야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자고 계획하고서 목적지를 정할때
우린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을 위주로,
가보지 못한 곳들을 둘러보자 하고 이곳저곳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광릉수목원을 가기로 했었지만
인터넷 예약이 늦은 관계로 아쉽게도 광릉수목원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어요.
그리고서 결정한 곳은 백담사와 낙산사 였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고
10월의 가을에 여행하기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여
그래. 이곳으로 떠나보자 하고서는
작은 도움이라도 얻을까하여 후기가 올려진 블로그를 읽어보니
백담사는 백담사 아래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고 셔틀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워낙 사람이 많아서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주차하기도 힘들고 기다리는 시간도
꽤 걸린다기에 살짝 겁을 먹고서 새벽부터 깨서 준비를 해야겠다
다짐하고는 잠이 듭니다.
금요일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 잠이 들었는데
참 희한하지요.
새벽 한시, 두시가 넘어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억지로 잠을 자려고 노력을 해도 잠이 오질 않아요.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도저히 안돼겠어서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의 밤 하늘.
저는 지금껏 그토록 무서운 밤 하늘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희뿌연 밤 하늘이라니...
이주전에 어느 술취한 아주머니의 술주정 소리에
비슷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바라봤을때
그때는 까만 밤 하늘에 초승달과 별이 손잡고 반짝이는 것을 보고
너무나 감동스러워 한참을 바라보던 그 하늘이었는데
이렇게 희뿌연 밤하늘이 있다니...
새벽 두시 반이 넘은 시간에 희뿌연 밤하늘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진 채로
다시 잠자리에 들어 겨우 잠이 들긴 하였습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여행 준비를 시작합니다.
새벽이지만 창밖은 여전히 희뿌연합니다.
파아란 새벽이었으면 정말 좋았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차 안에서 먹을 주먹밥도 만들고 과일도 좀 준비하고
따뜻한 커피, 과자와 음료도 준비했습니다.
조금 게으른 남편 덕에^^: 집에서 7시쯤 출발을 합니다.
생각해보면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보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의 시간과
목적지를 다녀오고 난 후 추억의 시간이
더 설레이고 더 감동적인 것 같아요.
한시간쯤 지나서 강원도에 들어섭니다
춘천도 지나고 홍천도 지나고 드디어 인제에 들어섭니다
강원도에 들어섰을때
처음 느꼈던 것은 공기의 색이었어요.
회색빛에 푸른빛이 감도는 공기의 색이랄까.
딱 그런느낌의 공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어서
아...10월의 강원도는 이런 색의 공기가 가득하구나 싶었습니다.
거칠고 높은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가뭄에 메마른 돌과 바위들이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계곡들이 즐비했어요.
가뭄이 심하다는 건 알았지만 물이 다 말라버린 계곡과 강을 보니 마음이 좀 아픕니다.
그렇게 잠깐 안타까워 하는 사이
산 아래 마을들을 지나쳐갈때
무엇보다도 나무에 둘러쌓인 마을들이 꼭 동화속에 나오는 마을같아
한참을 쳐다보았어요.
집 사이 사이를 둘러싸고 있는 곱게 단풍든 나무들이 어찌나 곱고 어여쁜지...
가까이 보아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좀 떨어져 멀리 보면 별거 아닌 것이어도 감탄할 만큼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또 한가지
강원도에 들어서서 주변 산을 보는 재미가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산에 수목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에요.
다양한 수목 덕분에 다양한 단풍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달리는 차안에서 산을 보니 전나무도 많고, 참나무종류도 많고
소나무, 삼나무도 조금 보이고요
그 중간중간 자작나무의 단풍은 딱 그부분만 잘라내서 엽서를 만들고 싶을만큼
예뻤습니다.
그렇게 감탄하는 사이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도착시간 9시 20분정도. 주차장은 벌써 차들이 꽤나 주차되어 있었지만
여유있게 주차하고서 보니 셔틀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네요.
셔틀버스비 끊고 나서 바로 탑승을 합니다.
셔틀버스 왼쪽에 앉아야 멋있는 절경을 볼 수 있다기에 왼쪽에 앉아서
드디어 백담사에 오릅니다.
아....왼쪽에 앉으라는 이유가 있더군요.
구불구불 좁은 산길을 오르는 내내 왼편은 깊은 계곡입니다.
왼쪽 창문 바로 옆에 앉으니 절벽으로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바이킹 타듯 오르락 내리락 구불구불 산길을 대략 10분정도 오르니
백담사에 도착을 합니다.
10시가 조금 안됀 시간에다
강원도의 산 속은 좀 많이 추웠습니다.
그리고 단풍은 이미 다 졌더군요.
군데 군데 늦은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고는 있었지만
단풍은 좀 아쉬웠습니다.
백담사 앞의 계곡도 메마른지 좀 되어 보였고
수많은 돌탑은 쌓여지고 쌓여지고 또 쌓여지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워낙 쌀쌀하고 추운데다
단풍이 다 저버린 터라
오세암까지 오를 생각은 못했습니다.
잠시 백담사 안의 작은 마루에 앉아 앞 산을 바라보니
삼각형 모양의 산이 앞에 우뚝 솟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이 많으면,
산이 앞에 가로막혀 있으면 마음이 답답하다 하던데
저는 이상하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백담사의 낮은 담도 마음에 듭니다.
저 담이 높았더라면
그래서 강 너머의 산허리가 바로 보였다면
두껍게 화장을 한 것처럼 얼마나 답답해 보일까 싶었습니다.
다행이도 낮은 담장에
계곡의 돌탑들과 산아래가 다 드러나 보이니
그자리에 한참을 앉아 생각에 잠겨도 심심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한참을 앉아 산을 바라보다
몸을 무겁게 들고 일어섭니다.
일주일 전에는 단풍이 절정이었을 이곳.
단풍이 절정이었을때 꼭 단풍때문이 아니라
그 절절함이 절정일때 왔더라면
산 길을 걷고 또 걸어 숲에 물들었다면
참 좋았겠구나 싶어
살짝 아쉽습니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올때는
맨 뒷자리 오른쪽 창문쪽에 제가 앉아 내려옵니다.
오오...
이런 느낌이었네요.
누군가가 제 옆구리를 툭 하고 치면 바로 계곡 아래로
튕겨져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산을 타는 청룡열차.
아니 그보다 더 스릴있고 재미있어요.
어떤 때는 계곡 위를 나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살짝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 겁을 내던데
저는 이것처럼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냥 무섭거나 힘들거나.
하지만 이 셔틀버스는 경치도 훌륭한데
그 위를 날아오르는 착각도 들게 해주네요.
아... 정말 신나게 내려왔습니다.
너무 짧았어요.
몇번을 타도 좋을만큼...
그만큼 경치 또한 멋졌습니다.
조금 남아 시리게 푸르른 계곡물이,
겹겹이 둘러쌓여 마지막 단풍을 떨구는 산이,
백담사의 낮은 담이,
숲의 나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