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아이유야. 오늘은 스물 세 살 친구들만 초대했어. `불금`을 예열할 시간인데 여길 찾아줘서 고마워. 그런데 스물 세 살 친구들만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 처음 뵙는 분들이다. 정말 나를 좋아하긴 하는 것 맞아? 하하.
앨범 소개 좀 할게. 타이틀이 `챗셔`야. 뭐 별거 없어. 잡담하는 시간이랄까. `한 떨기 스물셋`이라고 한 이유는 `23` 숫자를 쓰면 꼭 꽃잎같지 않니? 스물 셋은 참 꽃같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챗셔`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 이름이기도 해. 물론 철자는 좀 다르다. 잡담과 주(州)를 합쳤지. 중의적인 의미야. 앨범에 수록된 7곡은 각각 캐릭터가 있어. 이번에 내가 작사를 다 하다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어. 주제가 또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아. 나름 내 심각한 고민들을 담았어. 그런데 또 사람들에게 그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싫었어. 그래서 보호막을 쳤다. `내가 지금부터 떠드는 이야기들은 그냥 잡설입니다`라고. 그래서 `챗`이 됐다. 노래에 비유된 동화 속 캐릭터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야. 주인공은 아니지만 묘하게 마음이 가는 아이들을 내 곡으로 불러왔지.
`스물셋` 뮤직비디오는 좀 난해하긴 하다. 나도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어.(웃음) 확신하는데 감독님도 아마 잘 모르실것 같다. 그런데 마음에 들어. 가벼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해. 가볍고 싶었어. 뮤직비디오가 그 역할을 잘 해준 것 같아.
앨리스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고양이(챗셔)가 나타나. 앨리스가 말했지. "전 어디로 가야하죠?" 고양이가 답했어. "그건 니가 어딜 가고 싶은 가에 따라 다르지." 이걸 노래로 쓰고 싶었어. 모순된 문장들의 나열. 그게 지금 내 마음이야. 나도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어. 어떤 날은 이렇고 싶고, 어떤 날은 또 저렇고 싶고.
예를 들어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포털사이트 메인에 내 기사가 뜨면 기분이 좋아. 그런데 어떤 날은 내가 뭘 잘해서 칭찬받는 기사가 나와도 그냥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 그냥 순간순간만 있을 뿐이야. 너희도 그러니?
스물 세 살뿐 아니고 모두가 그렇겠지? 우리 엄마 아빠들도 그럴지 모르겠다. 그래도 스물셋은 조금 더 그럴만 한 나이인 것 같다. 이십대 초반이면 어린 티를 내도 괜찮은데 셋 부터는 애매하다. 나이에 `시옷`이 들어가면 중반이라고 하더라. 셋 넷 다섯 여섯. 셋이면 그래도 초반 같은데 중반이라고 하니까. 조금 어른스러워져야 하나 이런 생각 들지 않니? 나만 그래? 그래서 스물셋은 노래로 만들 법한 주제였어. 별 고민없이 쭉쭉쭉 내 의식이 흐르는대로 썼어. 대중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스물셋 아닌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래`라고 이야기를 해줘서 기분이 좋아.
나 되게 거만하지?(웃음) 나는 음원이 공개되기 전 일찍 자려고 해. 음원 차트 순위를 보는게 너무 긴장된단 말야. 어제는 내가 그럴 수가 없더라. 처음으로 내가 프로듀싱한 앨범이라 책임감이 남달랐어. 휴대폰을 옆에 두고 아무 것도 보지 않다가 1시가 되자마자 음원 차트 8개만 다 봤다. 거짓말 안 보태고 육성으로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많이 힘드냐고? 힘들지. 여기 안 힘든 사람 있어? 근데 나는 그래... 요즘 덜 힘든 것 같아. (야유와 웃음)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 생각을 해봐. (장기하와 열애 사실) 공개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2년 전부터 만났다고 했잖아. 요즘 들어 그게 나의 행복지수를 크게 좌우하는 건 아니다.(웃음)
그래도 살아있는 느낌이랄까?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랬다. 피가 너무 빨리 도는 거야. 심장도 빨리 뛰고. 약간 내 안의 악마성이 나왔다. 전투력 상승. 그럴 때 난 신 나더라. 그게 아직까지도 좀 이어져 있어. 지금 맷집이 좋은 상태야. 누구나 힘들지만 예전에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 괜찮아.
세상에서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건 심심함이거든. 슬프거나 우울한 게 오히려 좋다. 그건 차라리 확실한 감정이 있는거니까. 내가 어디 닿아있는 느낌이잖아. 심심한 건 정말 힘들어. 매일 매일 똑같다고 느끼는 것.
참, `제제`라는 노래 어때? 내 앨범 내에서 선호도가 높지 않다는게 의외다. 사실 난 이 노래가 2위일 줄 알았다. 트랙 순번도 2번이고. `스물셋` 다음에 `제제`를 예상했다. 순위가 예상보다 낮은 이유가 뭘까? 다른 곡이 더 좋아서? 그렇다면 인정.(웃음) 이 노래를 쓸 때 정말 재미 있게 썼거든. `제제`도 모순된 캐릭터야. 어떤 장에서는 빛나는 마음씨였다가 어떤 장에서는 악마처럼 묘사돼. 너무 장난꾸러기라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긴 하지. 굉장히 매력적이야. (어린 제제가 아닌) 그 성질 자체가 섹시하다고 느꼈다. 해석의 여지를 많이 열어둔 곡이야.
난 할머니가 계셔. 어렸을 때 나를 키우시다시피 하셨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와 내 하루가 더 중요해지면서 가족에게 신경을 못 쓰게 되더라. 내가 애기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인데, 나도 할머니를 사랑하고 다 해드리고 싶어. 그런데 가끔 할머니가 이것저것 말을 거시면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래서 고민이야. 할머니한테 제대로 못 하면서 뭐가 다 크고 성인인가. 일하고 돈 벌면 뭐하나. 가족들한테 이렇게 못하는 철부지인데.
`거울나라 앨리스` 속 붉은여왕 있잖아. 그가 등장했을 때 꽃들이 막 속삭였어. "움직이는 꽃인데 가시가 많아"라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붉은여왕에게 끌렸다. 조금 신경질적이지만 어쩔 때보면 멍청한 면도 있거든. 모두가 미워하는 그 여자에 대한 곡이 `레드퀸`이야. 다만 그 여자의 예뻤던 시절이지. 사람이 살면서 변하지 않니?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거야. 붉은여왕이 진짜 나쁘다면 그렇게 만든 사람도 있을 거야. `그 여자` 하면 떠오르는 곡이야. 엄마일 수도 있고 아줌마일 수도 있고 연예인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고, 여자라고 했지만 남자일수도 있어. 사실 노래가 좀 씁쓸해. 노래를 얄밉게 부르려고 노력했어. 그 여자 이야기를 신 나게 하는 내가 얄밉게 보일 수 있도록. 얄밉게 잘 됐니?
마지막 주제는 `꿈과 미래`야. 우리가 어느새 사회 생활할 때가 된게 신기해. 다른 직업 갖고 있는 친구들도 다 그런 고민 있지 않나? 그런데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겠다` 싶을 때가 더 많다. 내가 이제 와서 다른 일하면 뭘 할 수 있지? 사람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몰라. 이제 와서 뭘 배우기도 너무 늦은것 같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게 틀린 것 같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비슷할 것 같아. 모두가 다 하는 생각이니까 우리가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더 멋져 보인다. `다들 베테랑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익숙해지지 않나` 그런 생각이지.
그래서 나 원래 앨범 제목을 `아마츄어`로 할라고 했었어. 난 뭘 하든지 사는 것 자체가 아마츄어 같아. 내 것으로 만든게 없더라고. 그냥 내 옆에 머무는 것이지 진짜 내 것은 아닌 것 같아. 한 점 미련 없이 깔끔하게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심지어 먹는 것도 난 잘 못해. 불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다보니 원래 내가 어떻게 먹었는지도 잊었어. 스스로 체크하면서 먹어. `배가 어느 정도 부른가, 여기서 더 먹으면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까.` 살면서 하나 하나 얻어가도 모자랄 판에 하루하루 잃어가는 기분이야. 매일 매일 어설퍼. 그런데 그게 또 무슨 자랑이냐고 하실 것 같아서 앨범명을 바꾸었어.(웃음)
`무릎`이라는 노래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이번 앨범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곡이야. 녹음하면서 울컥했다. 그런 `울컥`은 정말 오랜만이었어. 아니, 처음이었던 같아. 슬퍼서 못부르겠더라. 이건 정말 나의 이야기거든. 노래로 만들려고 쓴 글이 아니라 그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그걸 노래로 부르니 더 그렇게 된 것 같아.
앞서 말했듯 밥도 그렇지만 난 잘 자는 법도 까먹었어. 정해진 시간에 자야지 하는 게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됐다. 잠들 수 없는 밤, 그게 화가 나고 슬퍼서 쓴 곡이야. 오늘 할 일도 다 했고, 남아 있는 감정도 없고,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고, 오늘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왜 못 자는걸까 내일 할 일은 많은데 못 자니까 스스로 화가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