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세명의 친구는 각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저는 담양과 해남을 다른친구는 해남과 보길도를, 나머지 친구는 남해와 통영을 가고 싶어합니다.
혼자 다니면 마음 내키는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니면 되지만... 함께 하는 일행이 있을 때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지요...
제가 담양을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태석 신부님의 산소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제가 정말 존경하고 사랑해마지않는 분이시거든요...
울지마 톤즈를 보며 저토록 괜찮은 사람이
바라보기에도 아까운 사람이 있었다는 걸 이제사 안 것이 억울하고
이제 더 이상 이세상에 함께 있지 않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서러워서 엄청나게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세사람 모두의 니드를 맞추려면 담양에서 너무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삼지내마을만 돌아보는 걸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담양의 삼지내마을은 기존에 있던 한옥마을을 길도 가꾸고 꽃도 심고 하여.. 조성한 마을이예요... 골목골목 정스러운 곳이기도 하지만.. 음 뭐랄까 하여튼 보여주기위한 곳이지요...
그래도 오래된 한옥의 대문이랄지 기둥같은 것들은 참으로 깊은 의리같은 것을 보여줍니다...
한옥으로 조성된 숙박시설도 많더군요... 저희는 오늘 숙박은 보성에서 할 예정이라..
삼지내 마을을 보고 바로 보성으로 향해서 출발합니다..죽녹원, 소세원, 등은 패스패스...
보성차밭을 검색해서 가는 도중 저아래길에 (저희가 가는 길은 고가처럼 높은 길이었거든요)
메타세콰이어 (이나무이름은 정말 잘 외워지지 않는다는 저는 자꾸만 메타쿼세이아라고 말하고 있더라구요... 이런~~) 가 호위병처럼 양쪽에 늘어선 길이 이어졌다 조금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고... 있더군요..
우리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길을 가봐야해~~~~ 하지만 길을 벗어나 돌아다니기에는 시간이 영 부족해서... 내려서지는 못하고 아쉬움에 계속 비명만 질러댔답니다...
다음에 꼭 저 길을 가보리라.. 생각하고 급히 네비에 떠있는 지명을 메모했습니다. 능주대교와 용정삼거리 즈음의 옛길이예요... 소리를 너무 질러 목이 따끔따끔한 채로... 보성에 들어섰습니다.
보성차밭은 친구 한명이 와본적이 있는데... 이상하다네요... 거기가 아니라면서 말이지요...
이런 화순의 예쁜길도 놓쳤는데... 보성차밭도 잘못왔나 싶은게 영 불안하더군요...
내려서 간판을 보니 여기는 대한다원입니다... 찾아보니 보성다원이 규모가 훨씬 더 큰 차밭이더군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왔는데... 표를 끊고 들어가보니 차밭의 규모는 좀 작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숲이 우거져있습니다... (보성다원도 그럴지 모르지만) 대나무숲, 삼나무숲, 그리고 더깊은 숲....
늦은 오후라 사람이 없습니다... 차밭은 통째로 우리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근데 차농사는 정말 녹녹치 않겠더군요... 비탈을 구경다니는 것도 정말 힘들던데...
거기서 일을 한다는 건 정말 상상초월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저희들은 해거름을 좋아하는데... 이게이게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어두워 지는 차밭을 뒤로 하고 아쉬움에 녹차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어봅니다... 그래도 아쉽기는 매한가지더군요...
내일 태양이 높이 떴을 때 차밭을 한 번 더 보기로 하고 이제 우리는 숙소로...
저희가 찾아가는 숙소는 친구가 묵은 적이 있는 민박집입니다...
득음정이라는 폭포 근처에 있는 곳이더군요... 네비게이션도 황당해하는 산속의 민박집에 들어서 또 한밤을 지냅니다... 친구들은 두런두런 맥주한잔하고...그 소리를 들으며 저는 잠이들었습니다.
민박집을 찾아가다 보니 주말에 보성에서 서편제소리축제가 있더군요...
요것도 보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에이 아쉽습니다..
어김없이 아침은 오고... 우리는 일어나자 마자 득음정으로 나섭니다...
소리꾼들이 목에 피를 토하며 목청을 틔웠다는 곳이라니... 저희도 모르게 노랫가락이 흥얼거려집니다... 제법 가다 보니
자그마한 폭포가 쏟아지는 옆에 정자가 하나 있네요... 물소리가 들리는 바로 옆이네요..
우리도 득음을 해봐야지 않겠냐면서... 머릿속에 있는 국악타령은 죄다 한번씩 불러봅니다..
“그리하여서 되겠느냐? 너는 한이 부족하다 한이...” 이런 대사도 쳐가며..
그런데 부를 수 있는 곡조가 몇 개 되질 않네요... 이럴때를 대비해서
이리오너라 앞태를 보자... 뭐 이런 노래도 좀 배워둘걸 그랬어요...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히힛
길고 시끄러운 산책을 마치고 내려와 떠나려는데 마당에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네요..
주인님의 허락을 받아 양손가득 토마토를 따가지고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 보성차밭으로 갑니다... 태양빛이 찬란한 시간의 차밭을 보러말이죠...
사실 입장료를 한 번 더 내는 출혈을 감수하고 여기 다시 온 건 대나무 삼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숲들 때문이랍니다.
차밭은 늦은 오후의 차밭이 훨씬 더 깊고 풍부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낮에도 캄캄한 대나무숲, 삼나무숲을 따라 걸었습니다...
정말 자연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연인의 얼굴같습니다... 어제 오늘 초록을 많이 봐서 시력도 좋아진 것만 같은 착각이 생길지경입니다.
산중간쯤에 의자를 들고 올라가 (이 의자 정말 사랑합니다. 싸고 가볍고 엉덩이편한 이 의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숲을 보니...
생각은 오로지 한가지, 집에 가기 싫다 였습니다.... 떠날 때 예정은 다음날 귀가해야 했거든요...
아직 못 간 곳도 많고, 어제 오늘 너무 숨가쁘게 돌아다닌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 제안을 합니다...
일요일까지 여정을 연장할 것을.. 한명은 오케이, 한명은 토요일 광주친정에 행사에 참석해야 해서 부득불 가야하는 상황...
친구의 양해를 구해 중간에서 시외버스타고 광주로 가는 걸로 결정하고.. 둘은 이틀 더 여행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근데 친정으로 가는 친구가 바로 남해와 통영을 보고싶어했던 그여인입니다...
동선이 좀 복잡해집니다... 이 때부터 이친구가 남해,통영은 안가도 된다고 열다섯번쯤 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저는 이여행의 주동자로서 친구에게 남해와 통영을 맛이라도 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길을 나서기가 쉬운일은 결코 아니니까요.... 계속 머리를 굴렸더니 머리에서 드륵드륵 소리가 나는 것 같더군요..
게다가 제가 4-5년전에 혼자 들어가보았던 사량도란 섬도 꼭 가보고 싶고 말이죠...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결과 흡사 군인들의 작전수행같은 일정이 나왔습니다.
오늘 남해 독일마을로 가서 자고 다랭이마을을 보고 삼천포로 이동, 배를 타고 사량도로 들어가서 돌아보고 다시 통영 가오치로 나온다... 통영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친구는 친정으로
나머지 두명은 해남쪽으로 여행을 계속한다... 헥헥
오우 이건 정말 원치않는 빡빡한 일정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아름다운 길을 누리며... 남해로 달립니다...
독일마을에 도착해보니 제가 왔던 몇 년전보다 집들도 더 많아지고... 카페도 많아지고...
전 개인적으로 이렇게 단기간 만들어진 관광지를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마치 에버랜드의 어느 모퉁이 같기도 하고 뭐 그래서 말이죠.. 덜 아름다워도 자연스러운 정갈함과 세월의 빛바램이 스며있는 그런 곳이 좋은데 말이죠
펜션의 안내푯말을 후레쉬 비추어가며 전화해서 결정한 숙소는 다행히도 원조 독일마을의 컨셉이 잘 반영된 그런 곳이었습니다.
독일에 간호사로 가셨다가 독일분과 결혼을 하시고 그곳에서 45년을 사시다가 귀국하신 분의 집이었습니다. 아침식사를 주문하면 독일식으로 준비해주실 수 있다고 해서 아침을 부탁드렸습니다.
숙소는 그저 그만하게 깨끗했고, 하지만 펜션스럽지 않은 그릇과 찻잔이 저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이날 왠일로 tv를 켜고 수퍼스타k를 시청했다는...
하지만 내일 일찍 일어나 자로잰 듯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부담감이 저를 좀 압박했습니다...
다행히 다음날 7시에 모두 잘 일어났습니다...
짐을 모두 정리해 차에 싣고 아침을 먹으러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식사는 정말 독일식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직접 만드신 햄, 과일잼과 지난주 맥주페스티벌을 위해 (남해에서 매년 가을에 맥주페스티벌이 열린답니다) 독일에서 공수해온 치즈, 요구르트 그리고 무한리필되는 맛있는 커피가 있고 사과가 있었습니다. 앙증맞게 서있는 삶은계란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음식들이 담겨있는 예쁜 그릇도 아주 기분 좋았구요..
오랜만에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풍족한 식사였습니다.
독일인이신 바깥어른은 저희에게 정말 많은 얘기를 해주셨고 저희도 두분의 얘기를 듣는게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안주인께서는 이렇게 세분이 다니다가 멋진 해적을 꼭 만나야 한다면서
덕담을 날려주셨습니다.. (꼭 이루어지길....^^)
하지만 오늘의 일정이 워낙 빡빡하여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야했습니다...
독일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남해의 바다는 정말 여전히 예쁘긴 하더군요...
이제 우린 다랭이 마을을 향하여 아름다운 길을 달려갑니다.
남해는 아름다운 땅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윽고 다랭이마을에 도착!
다랭이 마을은 지붕개량도 하고 새로지은 집도 늘어나고 그렇게 조금 달라져있습니다.
다랭이 논도 예전처럼 많은 보살핌의 손길을 받고 지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좀 서운했습니다. 사시는 분들은 불편하셨겠지만.....
저는 오래되고 낡은 한복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다려입고 길을 나선 왜소하지만 당당한 할머니처럼....
그런 다랭이마을이 참 좋았었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우리는 골목골목 아쉬움이 묻어 있는 다랭이마을을 눈에, 마음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몇 년뒤에는 이모습이 또 그리울지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