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한 김에 맥주 한 캔 들고 하소연 해봅니다.
시부모님은 부자는 아니지만 퇴직금을 받아 노후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둘이 벌어서 하루 빨리 집을 장만하라고 7년 동안 용돈 한 푼 안 받으시며 저희 애를 키워주셨어요. 저로서는 참 고맙죠.
반면에 친정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만 열심히 지으신 성실한 분이세요. 남들 다 땅 팔고 집 팔고 할 때에도 투자 그런 쪽은 생각도 안 하셨어요. 빚내서 저와 오빠 대학공부 시키셨고 오빠가 취직한 뒤 그 빚을 다 갚았어요. 저도 취직한 후부터 달마다 부모님께 용돈 드리구요.
시부모님께서 7년간 키워주신 애가 지금 초등 6학년이에요. 애가 초등 입학한 후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택 근무를 하고 있어요. 보수는 직장 다닐 때의 절반 정도에요. 남편은 평범한 샐러리맨, 월급을 갖다 주고 육아나 살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사실 남편의 월급만으로도 먹고 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친정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려면 부족하죠. 제 월급의 과반수는 친정에 드려요.
그런데 지금 친정 엄마가 몸이 많이 안 좋아요. 친정아버지가 보살핀다고 해도 시골에서 아마 대충 끼니를 때우고 그러시는 것 같았어요. 오빠랑 의논하고 친정부모님을 저의 집과 가까운 곳에 월세 맡고 모셔오기로 했어요. 월세랑 기본적인 거는 오빠가 부담하기로 했구요. 저는 옆에서 자주 들여다보고 하는 걸로 했어요. 오빠는 현재 외국에 있어서 가끔 부모님 생활비 보내는 정도로 효도하고 있어요.
친정부모를 모셔오면 아무래도 돈도 더 들 것 같아서 9월부터 악착같이 일하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요. 하필 남편이 9월 초에 장기 출장을 가서 부모님 셋집 알아보고 하는 일이 다 제 차지가 되었죠. 일을 하랴, 애를 케어하랴, 셋집 알아보고 이사준비 하랴 혼자서 다 하려니 너무 힘들더라구요.
오늘 저녁에 남편과 카톡을 하던 중 저녁은 시간도 없고 피곤해서 애랑 라면으로 대충 때웠다는 얘기를 했죠. 그 얘기를 듣고 난리가 났어요. 한창 자라는 애를 라면을 먹였다고요. 그 말에 저도 울컥해서 남편에게 한소리 했어요. 아픈 몸으로 모든 걸 혼자서 다 하느라 입술까지 부르튼 마누라는 눈에 안 보이냐고. 애는 학교에서 급식 먹고 간식이라도 먹지 나는 그 라면이 오늘 첫 끼니라고. (참고로 애는 158에 55킬로, 저는 162에 45킬로에요. 평소에 요리 잘한다고 소문날 정도로 잘 먹여요.)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울부짖고 전화를 끊었어요.
눈물이 나네요. 솔직히 남편 잘못도 아니겠죠? 남편에게는 도움 하나 없이 부담만 주는 처가보다 피 섞인 딸애의 저녁 한 끼가 더 중요한 것이 당연하겠죠?
그냥 너무 힘들어요. 금수저까지는 원하지 않아도 내가 노력한 만큼 나도 좀 즐기며 살고 싶었는데. 여행 한 번도 못 가보고, 솔직히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죽어 없어져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왜냐면 살면서 즐거운 일이라도 있어야 삶에 미련이라도 남을 텐데 철이 들어서부터 지금까지 그냥 돈 돈 하며 살아왔거든요. 친정아버지는 항상 아무개는 돈 많은 남편 만나서 친정에 용돈도 팍팍 준다더라 이런 소리나 하시고. 시골에서 힘들게 일하시며 키워주시고 공부 시켜 주신 거 고맙게 생각해요. 그러나 외모도 별로이고 어릴 때부터 돈 걱정에 주눅이 들어 성격도 의기소침하게 변한 그런 딸이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서 나름 열심히 살면 기뻐하셔야 되는거 아닌가요?
사주 보시는 분이 제 명이 짧다고 했어요. 하는 일이 컴퓨터 쪽이라 지금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요. 그냥 다 손 놓아버리고 싶어요. 내가 죽어도 친정아버지는 그 성격으로 어떻게든 사실가에요. 그냥 엄마가 불쌍해요. 치매시거든요. 치매신데도 다른 사람을 힘들게 안 하시는 착한 분이에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이 딸은 알아보시고 누워계시는 이불 한 자락을 들면서 덮으라고 하시는 분이에요.
제가 남편에게 그랬어요. 돈 달라는 얘기도 아니고, 그냥 힘들 때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고요. 이 세상에 내 편이라고는 치매 앓는 엄마밖에 없는데 당신이라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면 안되겠냐구요.
사실 큰 기대도 없어요. 십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제가 잘 알죠.
아무래도 제가 더 강해져야겠죠? 힘이 되는 조언들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저보다 더 힘드신 분들도 많겠지만 오늘은 제가 좀 위로 받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