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랑하고 행복하면, 더는 다른 목적 없이 끝나도 좋은 것
-노희경
<괜찮아, 사랑이야>를 쓰며
내 맘을 가장 아프게 한 지적은
‘사람들을 참 많이 불편하게 하는 작가’라는 말이다.
사실 이 지적은 20년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쓸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다.
주인공 인희(나문희 분)의 말기 암을
수술하기 위한 수술실에서 의사 남편 정철이
고작 한 일이라곤 배를 가르고 난 후,
‘그냥 덮어라’였고,
아내가 피를 토하며 변기를 잡고 울며,
‘여보, 나 왜 이래?’ 할 때도
기껏 안아주는 일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잔인하다 했고,
나는 대놓고 변명했다. 그게 내가 본 인생이에요.
다행이죠, 무너질 기대는 별로 없으니.
다시 한 번 그 변명을 하고 만다.
이번에도 본 대로(과장은 드라마라 자위하고)썼다.
절대 낮잠을 안 자는데,
글 쓰다 순간이라도 낮잠을 자면 정확히 10분 후,
가위에 눌려 불규칙한 심장박동과
호흡곤란을 동반하며 깨는 내 별스런 신경증,
몇 달 전 급작스레 생긴 언니의 불안증,
친구들의 우울증과 알코홀릭,
수면장 애와 식사장애, 공황장애,
방어기제로 인한 인간관계 부적응,
마더 콤플렉스,
가정 폭력과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한
갖가지 인격장애,
가족을 잃은 후의 분리불안,
퇴직을 눈앞에 둔 남자들의
공포에 가까운 남성 갱년기 우울증,
여자로서의 인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여성 갱년기 증후군 등등…….
내 주변은 그렇게
환자와 환자가 모여 떠드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건 상대는 미쳤고,
자신만이 언제나 정상이라고 우기며 충돌하는
세상 보다 지극히 덜 위험하고
통쾌하고 감동적이고 재밌다.
환자임을 아니,
치료받길 당연시하고, 지적 받길 당연시한다.
(굳이 병원을 말하는 건 아니다,
위안받을 수 있는 곳이면,
산이든 바다든 절이든 집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학교든 상관없다)
물론, 나를 비롯해 주변인들도
순간순간은 미쳐서(?) 자신들의 병증을
인정 못하고 나는 정상이라며
발악을 할 때도 있지만,
우린 그게 치유 과정임을 알기에
큰 흉을 잡진 않는다.
나는 이 드라마 <괜찮, 사랑이야>를 쓰며
많은 사람들이 제 상처와 남의 상처를
관대하고 자유롭게 보길 바랐다.
우리가 진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은
드라마 속의 환자가 아니라,
자신이 늘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
자신도 남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
상처 받은 인간을 나약한 자라고 말하는 사람,
약자를 짓밟고 번번이
승자만이 되려는 사람이 아닐까.
드라마 쓴 지 20년.
작품 쓸 때마다
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창작가이지만,
늘 새로울 거 없는 원점이다.
당연하다 싶다.
삶이란 게,
부모님의 임종 직전 마지막 말처럼
진짜 별스러울 것 없는 것일 테니까.
임종 순간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가족 모두를 ‘사랑한다’였고,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행복했다, 여한 없다’였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결국 사랑하고, 행복하면,
인생은 끝나버려도 좋은 것이다.
원망과 질투,
야망과 자격지심과 자책,
교만과 상처는 괜한 감정임을
두 분은 일깨워주셨다.
나는 그분들보다 좀 더 배웠으니까,
글줄이나마 쓰고,
철학도 종교도 공부하는 작가니까,
그분들보다 더 많은, 깊은,
인생의 다른 목적, 비밀을 알게 되겠지 하며
긴 시간 나름 삶을 치열히 버티고 파고
뒹굴었는데, 오십 나이에 고작 그분들만큼만 안다.
인생은,
사랑하면 되고,
행복하면,
더는 다른 목적 없이 끝나도 좋은 것.
쓰는 내내,
여타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처럼
당연히 중간중간 고통도 불행도 찾아왔지만,
결국엔 사랑했고 종국엔 행복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noh_writer/220491338591
[출처] 기부연재 27. 인생은 사랑하고 행복하면, 더는 다른 목적 없이 끝나도 좋은 것 (노희경)|작성자 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