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프라이머리, 네트워크 정당, 모바일정당 등은 우리나라 정당의 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반적으로 당의 역할과 정체성을 소수의 당원보다는 광범위한 국민 대중에서 찾는 경향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해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추구하는 구체적인 형태는 다르지만 하드웨어 구조로서의 정당 조직보다는 무형의 정치적 상징으로서 소프트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라고 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당의 기반인 당원의 성격이 과거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즉, 과거에는 정당의 성격이 가장 일차적으로 우선 계급정당이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그러한 정당의 계급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주는 상징이었죠.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이러한 전통적인 계급 구분으로는 특정하기 어려운 계급 분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라고 해서 다같은 노동자가 아니고, 자본가라고 해서 다같은 자본가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몇억, 몇십억대 연봉을 받는 노동자도 있고 전가족이 매달려서 사업에 매달려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자본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계급의 다양화 분화 현상은 곧바로 전통적인 계급 정당의 구성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당이냐가 문제가 되는 겁니다. 헷갈리게 되는 겁니다. 당도, 당원도, 지지자도 그리고 유권자와 국민 모두가.
저는 이러한 혼란 가운데서도 정당이 국민들 사이 특정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본래의 기능은 바뀌지 않았고, 바뀔 수 없고, 바뀌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그 이해집단의 성격이 과거의 단순한 계급적인 기준이 아닐뿐이지, 하나의 국가와 국민 안에서도 집단에 따라서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와 이해관계가 결코 같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건 단순하게 분열이다 갈등이다 하는 부정적인 관점으로 볼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이런 이해관계의 차이와 상이점을 부정하고 유신시대 같은 방식으로 국민통합이란 도그마를 강요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폭력이자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심화될 경우 그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 외에는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국가 사회는 곧장 몰락의 길로 직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계급 관점이 아닌,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실제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이 어떤 지점에서 성립하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대립과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고 그 갈등과 대립은 바로 이해관계의 차이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그 갈등을 해소하고 좀더 차원 높은 갈등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정당과 정치세력의 역할입니다. 이 역할은 결코 사라질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 실제적인 대립/갈등 구도가 어떤 지점에서 성립하는지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일 겁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의 가장 근본적인 대립/갈등 구도는 영남패권과 거기에 저항하는 호남 세력으로 형성됩니다.
무엇보다도 역대 선거결과가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 명명백백한 현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습니까?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 뿐입니다. 현실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는 비양심이거나.
이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서 알량한 지식인들이 동원하는 논리가 국민 개/새/끼론입니다. 그리고 그 변형된 버전이 기울어진 운동장론, 계급배반 투표론 등등이죠. 한마디로 국민들이 워낙 멍청하고 쓰레기들이어서 자신들에게 뭐가 유리한지도 모르고 투표한다는 겁니다. 웃기는 소리입니다.
국민들은 어떤 정치세력이 자기 편인지, 어떤 정책이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정확하게 알고 투표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영남 지역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호남 지역 유권자들이 민주당 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각자가 선택한 정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잘 옹호할 것이라고 판단한 때문입니다.
더욱 분명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영남패권이 영남 출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체제이고, 호남 유권자들은 비록 불만스럽지만 그나마 영남패권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현실적인 대안이 민주당 계열 정당이라고 판단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판단이 틀렸다고 보십니까?
박정희정권 이래 대한민국의 국가 자원은 철저하게 영남 위주로 배분됐습니다. 거대 공장이 그 지역에 들어섰고, 당연히 일자리가 늘어나고 땅값이 올랐습니다. 그 혜택은 대부분 영남 거주자에게 돌아갔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중요한 이권을 놓고 다수가 경쟁할 때 정권은 철저하게 영남 위주로 정책을 운용했습니다. 이런 세월이 무려 반세기 60년이 넘었습니다. 이게 어떤 결과를 낳았을 것 같습니까?
대한민국은 철저히 영남공화국이 됐습니다. 과거에는 그나마 다른 지역 눈치라도 봤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우선 호남 정치의 철저한 피폐화(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게 노무현과 노빠 세력들입니다)로 견제할 세력이 사라졌고, 또 영남패권의 구성원들이 늘어나고 요구가 커지면서 다른 지역에 양보할 건덕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리를 하면 "영남 사람들이 다 잘사는 줄 아느냐? 영남도 피폐하고 못사는 지역이나 사람들 많다"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일제 시대에도 조선 사람보다 못사는 일본 사람들 많았고 도쿄 시내에는 거지들도 많았습니다. 이게 그 때 일본인들이 조선사람들보다 특혜를 받지 않은 증거가 되나요?
저 논리대로 하자면 영남 사람들이 100% 재벌이 될 때까지는 현재의 영남패권과 특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겁니다.
결국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는 현실적인 장치는 정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철저하게 정치 권력의 문제이고, 현실적으로 합법적으로 권력을 다투는 유일한 기구가 바로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정당은 과거와 같은 계급정당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진보 성향 인사들이 착각하는 게 이것입니다. 계급에 기반한 정당이 진짜인데, 그래야 진보인데 무슨 거지 깽깽이같은 절라도 난닝구들이 저리 설쳐대는 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겁니다. 대놓고 말은 잘 못해도.
저는 계급정당이란 기본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계급의 발현 양식, 표출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론적인 계급 분석으로 정당을 해부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흔히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식인데, 즉 선거 결과를 토대로 우리 사회의 계급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영남진보벨트의 고임금 노동자들이 어리석어서 새누리당 지지하는 게 아닙니다. 그 분들, 새누리당이 무너지고 영남패권이 약화되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거대한 혜택과 안락한 생활이 위협받을 거라는 것을 동물적인 본능과 감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한테 무슨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계급 배반 투표니 백날 천날 떠들어봐야 씨알도 안 먹힙니다.
호남정당은 그래서 호남만의 정당이 아닙니다. 영남패권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이 호남정당입니다. 친노패권이 호남의 정치적 자산을 도둑질해서 거대한 영남연대전선을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현재의 호남정당 즉 새정련은 호남 정당도, 진짜 야당도 아닙니다. 그래서 호남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당원 중심 정당이 아닌 네트워크 정당, 모바일 정당, 오픈 프라이머리를 얘기하는 것은 바로 호남 배제 나아가 영남패권에 대한 협력이 되는 겁니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내부 민주주의가 압살된 정당입니다. 영남 당원이 호남 당원보다 40배 이상의 권리를 보장받는 당이 어떻게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사기꾼 네다바이 양아치 지도부를 몰아낼 수 있습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영남패권이 계속 이대로 집권해도 좋다고 보신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마 영남패권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분들일 겁니다.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서 선택하시는 분들을 어떻게 말립니까?
하지만 지금 이 나라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영남패권의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호남의 문제는 사실 호남의 문제가 아니고 영남패권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한 인식의 현실적인 단초가 바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대명제를 철저히 인식하고 실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