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공감가는 글이 있어서 옮겨봤어요.
울 아이는 이제 중1학년이지만 서민인 저희 가정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글이더군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그냥 전 도움이 되어서
옮겨보니 한 번 읽고보세요^^
대학이냐, 과냐?
해마다 원서 넣는 입시철이 되면 반복되는 고민이 있다.
Top 10 대학 경영학과를 넣을 것인가? Top 3 대학 인문대를 넣을것인가?
Top 10 대학 공대를 넣을 것인가? Top 3 대학 자연대를 넣을것인가?
대학이냐, 과냐의 고민이다.
물론 이런 고민은 그래도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의 고민이다.
공부가 안되는 자녀가 있다면, 당연히 대학 고민 없이 취업되는 쪽의 진로 선택이다.
(하지만 또 하위권은 하위권 대로 취업 되는 전문대냐 그래도 4년제냐라는 나름의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요즘 같이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는 현실 속에서, 대학 간판이 중요하냐
어찌 되었던 취업이 되는 과를 가야지가 상식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묘한 것이 막상 원서를 넣을 때가 되면, 학생이나 부모나 마음이 달라진다.
그래도 학벌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한 끗이라도 높은 대학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전공에서 밀리더라도, 어떻게든 사회 생활하는데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학벌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고민은 지금이나 내가 진로 지도를 받은
20년 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하다.
나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선택을 했다. 고등학교때 희망 학과는 법과였다.
하지만 S대 법대에 가기에는 점수가 부족했다. 대학을 한 단계 낮춰 K 대 법대를
갈수 있었지만, 결국 S대 인문대를 선택했다. 법조인의 꿈은 못 이루더라도
S를 가면 대학교수는 될 수 있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학 내내,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다, 결국 4학년때, 우리 집 형편에
대학원 진학, 유학 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달았다.
대학 1학년에, 재수해서 학교에 들어온 친구가 말했다.
"사실 이런말 하기는 그렇지만, 우리집은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없다.
나는 군대도 면제 받았고, 부모님이 내가 평생 먹고 살 재산을 물려 주실
정도가 된다. 그래서 올 한해는 좀 쉬고, 이후에 공부 좀 열심히 해서
대학 교수가 되보려고 해"
그때는 내가 그 친구보다 학점도 좋았고, 부잣집 아들 돈 자랑한다는
생각에 속물 취급을 했는데, 결국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의 말이
맞았다.
서민의 자녀였던 나는 결국 생계를 찾아 전공을 바꿔야 했고,
그 아이는 유학을 갖다온 후 40대에 모교 교수가 되었다.
인문학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귀족들이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다.
문사철로 박사를 받으려면 최소한 10년이상 자기 수입없이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데,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져 주거나, 부모가 대졸 후에도 10년-20년 뒷바라지 해주고
유학자금 대주어야 답이 나오는 학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고생하고 혹은 없는 돈에 간신히 유학을 하고 오거나
박사 학위를 받아도 설 자리가 없는 현실이다.
이후 사회 생활하면서, 나 같은 문과 서민 자녀가 선택했으면 좀더 좋았을 진로는
경찰대나 육사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우리집 형편에 K 대 법대에 갔어도, 알바하며 공부하기 쉽지 않고,
든든한 후원자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여 사시 준비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중에 경찰대에 영어 특강을 하러 가보니, 재학생 학비가 다 면제였고,
제복에 기본적인 생활품까지 지급이 되었다. 특히 법 전공 상위권 아이들 가운데
해마다 사시 합격자가 4-5명 이상은 나왔다.
군복무도 기동대 소대장으로 해결되고, 의무 근무 기간을 거치고
법조계로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고3 때 누구도 나에게 이런 진로지도를 해 주지 않았다.
"oo 야, 네가 지금은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인문학 혹은 사회과학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거야. 이런 이야기 하기는 뭐하지만, 집에서 부모님이나 확실한
후원 없이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아.
네가 정말 그 공부를 하고 싶다면 우선 생계 문제를 해결한 뒤에
나중에 경제적 자유인이 된 후에 정말 그 공부에 전념해 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단다.
우선은 대학을 2-3 단계 낮추는 느낌이 있겠지만, 이 대학, 이 과에 가고
이런 방법을 찾아 보렴. 그리고 부모님과도 잘 의논해서 다시 한번 결정해 보고.
혹 그래도 안 되면 우선 올해는 이 대학으로 가고, 1년 다녀보면서 이 진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서, 다시 재수를 해서라도 선생님이 추천한 이 과에 한번 도전해 보렴"
지금도 너무나 이상적인 진로 지도이다. 어느 고3 담임 선생님도 이런 깊이 있는
진로 지도를 해 주기 쉽지 않다.
결국 선생님이나 교수님들도 사회 생활이라는게, 사범대(대학)- 교직(교수) 뿐이기 때문이다.
너무 좁은 시야로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해 주고 있다.
그래서 요즘 제자들이 "저는 문학을 해서, 철학을 해서, 역사를 해서..."
라는 포부를 밝히며, 이른바 먹고 살기 힘든 전공을 하겠다고 하면
우선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먼저 내가 그런 전공을 하려는 이유가, 대학을 한 두 레벨 올려 보려고 하는
동기, 그래서 주변에 oo 대 출신, 혹은 부모님 체면 세워드리려고 하는게
아닌지 살펴 보렴. 그리고 네가 하려고 하는 전공을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검토해 보렴.
선생님은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의 대부분을 배출한다고 하는 S 대 인문대를
나왔는데, 내 주변에서 전공 계속 유지하며 먹고 사는 친구는 100에 1-2명이다.
그런 전공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귀족 자제들이 하는 것이고,
너는 먼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 문제가 해결 되며, 취미로 그 공부를 시작하고,
나중에 경제적인 자유인이 되거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보렴.
인문대 대학원은 가뜩이나 입학생이 없는데, 40이 넘어서, 50이 넘어서 공부하겠다고
해도 받아 줄 때가 너무 많다. 만약 한국에서 받아 주지 않는다면 돈이 있으면
유학 갈 곳도 널려 있고."
이과쪽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능하면 공대를 추천한다. 물론 공대내에서도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우선은 취업 가능성이 높은 전공을 권하고, 이후 좀 더 자료를 찾아 보길 권한다.
자연대는 가능한 추천 안한다.
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된 집안이라면 자연대 쓰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자연대에서 먹고 살수 있는 과목은 수학과나 사범대의 수학교육학과이다.
문과쪽도 영문과나 영교과는 괜찮다. 물론 이런과도 요즘에 많이 몰린다.
최근 오마이 뉴스에서 "그래도 영문과 나오는 굶지는 않는다"라는 칼럼을 읽었는데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 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22610
이과의 수학과나 문과의 영문과는 준 공대, 준 상경계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러니
들어가기 힘든게 사실이지만, 역시 들어가기 힘들다면 한 두 단계 대학을 낮추면 된다)
지나친 일반화 일 수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내가 진학 지도를 받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학 지도의 질이 전혀 개선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서민 자녀 우등생들이 과와 대학 간판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소신이 있고, 자신의 주관이 확고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주변의 어른들도, 위의 오마이 뉴스에 나오는 진학 지도 선생님처럼
"야, 시끄러워, 잔소리말고 내가 쓰라는데로 써.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나중에 10년 뒤에는 고맙다고 생각할 거야"
라고 강력히 밀어붙이지 못한다.
아이들이 실제 전공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은 후에 진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지금의 진로지도는
결국 점수와 간판 바라보기로 되어 있다.
오히려 여유 있는 가정은 이미 10여년전부터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보력이 떨어지는 서민 가정은 여전히 20-30년전 고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어서 뿌듯하다면,
아이에게 대학보다는 과를 잘 선택하게 해서, 본인이 이루지 못한
대학과 경제적 성취의 두 마리 토끼는 그 자녀의 자녀대에서 이루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 아닐까?
아이의 꿈을 꺽는게 아닐까? 그래도 우리집안에서 이 대학 나온 사람이 한 사람이 있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환상 앞에서 좀더 냉혹해 질 필요가 있다. 아이와 충분히 토론해 보고,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우선 내 대가 다음대에 경제적 자유라는 첫 번째 토끼를 잡아서, 지속적 공부가 가능하고
나름에 가풍과 전통을 남겨 줄 수 있는 집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아직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유학이나 더 공부를 고민하는
부모세대에도 해당되는 이야기 이다. 경제적 자유와 공부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 내 자녀가 손자의 세대에서 똑 같은 고민을 반복하게 하지않으려면
우선 내 대에서의 희생이 밑거름이 필요할 수 있다.
미국 1세대 유대인들의 직업은 대부분 세탁소나 식료품점 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아이들이 의사, 변호사, 회계사나 교수가 되었고, 그런 기반하에서
손자대에는 경제적 자유와 이른바 학벌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보편적으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글쓴이 심정섭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