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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2015년 8월 10일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만평

세우실 조회수 : 1,065
작성일 : 2015-08-10 07: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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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에 들렀다가 배추는 버려두고
나이가 환갑은 족히 넘은 라디오만 안고 왔다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친구를 데려다
거즈로 온몸을 닦아 때를 벗겨내고
비타민 제재 같은 기름을 먹여주었다
그런 다음 환자에게 링거액을 흘려 넣어주듯
조심스럽게 전기를 흘려 넣어주자
금세 생기를 차리고 첫사랑 같은 소리를 낸다
개펄에서 건진 듯 갈라졌으면서도
따스한 목소리를 내주는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
상처투성이 몸을 일으켜
넷킹 콜과 카잘스의 육성을 들려주는
늙은 진공관 튜너가 서재 속에서 나와
깔끔하고 멋진 디지털 티뷔
목소리 위아래를 자른 엠피쓰리, 금속성의 매끄러운
컬러링을 탑재한 스마트폰들이
얼마나 거짓으로 뭉쳐져 있는지 귀띔해 준다
살아있는 소리는 커터와 디코더로 자르고 봉합한 것 아닌
시장 바닥에서 뒹구는 사람의 육성을 담은 것이라고
개펄에서 건진 진주조개와 같은 것이라고
빌리 할리데이가 늙은 라디오에서 나와
흐리고 젖은 목소리로 감싼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50년대 라디오를 들여다 놓고 듣는 동안
문득 취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빌리 할리데이,
유태인 수용소에서 빠져나와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클라라 하스킬이 부드럽게 손을 얹는다
조그만 라디오에서 나왔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책을 밀어내고 서재를 가득 채운다
그들이 연방 책장을 넘기며
잠 못 들게 한다
손바닥만한 라디오 속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 없이 살고 있다니!
이리저리 뒤집어 본다
낡은 진공관에서 털려 나오는 먼지들
헤치고 나온 빌리 할리데이가 크고 맑은 눈으로 말한다
영토는 얼굴 모르는 백인들의 손아귀에 묶인
땅에만 있지 않다고
철거지에서 쪽잠을 자는 산동네 사람들에게도
일생 땅이라곤 디뎌 본 적 없는 뱃사람에게도
돈 없어도 뜨겁게 사랑을 간직한
연인들에게도 넓게 있다고 일러준다
땅 한 뼘 없어도
따스한 사람들의 가슴만큼
넓은 땅은 없다고
부드럽게 입술을 부벼 온다


                 - 박몽구, ≪FM 라디오를 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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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0일 경향그림마당
http://img.khan.co.kr/news/2015/08/09/man_0809.jpg

2015년 8월 10일 경향장도리
http://img.khan.co.kr/news/2015/08/09/jang_0809.jpg

2015년 8월 10일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703761.html

2015년 8월 10일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d2aad970421147539ad0bebe188f08a8

 

 

 


똑같이 나눈다고는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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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시키는 일은 하고 살자.
그러나 책임은 스스로의 것임을 기억하자.

              - 세스 골드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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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02.76.xxx.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덕분에
    '15.8.10 9:19 AM (1.236.xxx.60)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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