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프로젝트하면서 읽었던 책이 생각나서 한번 옮겨볼까 합니다.
한국 제목은 '신격호의 비밀'인데 전직 기자가 쓴 거예요. 근데 이건 아마도 일본에서 나온 '롯데의 비밀'을 많이 인용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일본책을 읽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아마존 중고 거래에서도 씨가 말라서 찾을 수가 없어요. 일본 국회도서관도 검색해 봤는데 수상쩍게 검색이 안 되더군요. 느낌상 책이 나온 이후 롯데가에서 몽땅 사들여서 폐기처분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고요. 그런데 조용한 걸 보면 롯데가 일본에서 그만큼 체감상 큰 기업체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아마존 중고거래는 최근 사태 때문에 책들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예요.
각설하고 이 책에 의하면 신격호는 일본 패전 직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갑니다. 신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큰 아버지가 제법 부자였어요. 유학갈 돈 정도는 변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학가서 지금은 와세다 공대지만 당시에는 기술학교였던 와세다에 재학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기술학교 다니면 징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아요. 전쟁 와중에 빌린 돈으로 사업을 합니다만 폭격으로 다 말아먹었죠. 그러다 일본 패전 후, 절대적 물자 부족 상태에서 조악한 품질의 비누, 화장품 등으로 대박을 칩니다. 그 당시는 아무리 조악한 품질이라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물자가 없었고, 통제경제 시절이라 요령 있고 기술 있으면 의외의 축재를 할 수 있었어요. 일본 대기업 중에서 그 때를 배경으로 기업 일으킨 곳이 많은데 워낙 구린 내용이라 다들 쉬쉬할 뿐입니다.
자, 그런데 결혼 이야기는 이 책과 몇 가지 기사 내용이 좀 달라집니다. 책에 의하면 신격호가 전후 2-3년 사이에 큰 돈을 벌고 고향집에 송금할 정도로 부자가 되자 다케무라 집안에 하숙을 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다케무라는 신의 아내 하츠코 집안의 결혼 전 성입니다. 하츠코의 어머니가 시게미츠 마모루, 일본 외무부 장관이자 전범이자 윤봉길의 폭탄으로 한쪽다리를 잃은 그 사람의 여동생이죠. 이 어머니가 다케무라 집안에 시집을 온 겁니다. 시게미츠가 빵빵한 경력을 가진 집안이다 보니 사돈집인 다케무라가도 만만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케무라는 전쟁에 참전해서 전사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책의 내용을 보면 이미 전쟁 이후 미망인이 된 다케무라 집안에 신격호가 하숙생에 간 걸로 되어 있습니다. 워낙 집이 크고-빵빵한 가문이란 걸 입증하는 거죠- 엄마와 딸 둘만 있으니 무서워서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남자를 하나 집에 들이는 걸로 하자 뭐 이런 내용입니다. 여전히 왜 구 식민지인인 조선인을, 더구나 조선인과 척을 져야 하는 시게미츠가에서 들였느냐 하는 것은 의심입니다. 들일 당시는 신격호가 자신을 일본인이라 속였을 가능성도 있구요, 장사도 잘 되는 시점이라 별 의심을 안 했을 수도 있지요. 또 일본은 패전 이후 구 귀족 출신들이 엄청나게 몰락해서 이름만 화족이지, 땡전 한푼 없는 이들도 무수해서 이 집안도 빛 좋은 개살구 신세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시게미츠는 전후 미주리 호 함상에서 패전 조인 싸인하고 바로 전범 재판 받게 되지요.
다만 일본 간지 몇년 안된 신의 발음만 듣고도 일본인이 아니란 건 알았을 텐데 뭐 암튼 미심쩍은 점 많지만 그렇다 치죠. 그렇게 몇년 살다 점점 사업이 잘 되어서 이 집 딸과 결혼한 걸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설명 됩니다. 이 책에서 주의할 점은 아마도 신이 하츠코와 결혼 당시 총각이라고 사기쳤을 가능성입니다. 아무리 맘 없이 한 결혼이지만 그리고 얼마 살지도 않았다지만 본국에 부인이 있는 건 사실인데 이것만 봐도 신격호의 여자 관계 처리방식을 대충 알만합니다.
그런데 2011년 일요시사 기사는 이와 다릅니다. 신격호는 이미 패전 이전에 다케무라 집안 하숙생이었다고 합니다. 아직 이 시기는 남편 다케무라의 전사가 불분명한 시점, 미망인은 아니지만 남편은 없는 몸인 부인 다케무라가 조선에서 온 젊고 건장한 청년과 내연관계였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롯데에 문의했지만 답은 없었다 하구요. 다케무라 부인은 전후 몇년 뒤 사망했다는데 만일 그렇다면 신격호의 비밀이란 책에 나온 것과는 시점과 팩트 자체가 완전히 틀려버립니다. 책에 의하면 부인이 사망했다는 시점이 신이 하숙생이 되었다는 거죠.
엄마든 딸이든 어쨌든 신은 일본 정가, 외교가의 명문인 시게미츠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심지어 일본 이름도 처가 이름인 다케무라가 아닌, 누가 들어도 알만한 시게미츠를 선택하죠. 시게미츠 마모루는 전범으로 재판에 회부되지만 한국의 친일파 처단이 무색한 얼렁뚱땅 전후 처리로 목숨은 건지고 10년 후 자민당 탄생을 하면서 화려하게 컴백해 죽을 때까지 외교관, 정치가로서의 명망을 드높입니다.
책에 의하면 신은 사업도 사업이지만 부동산도 아주 귀신같이 잘 획득했습니다. 첫 시작은 자신의 기술과 운이라 쳐도 이게 눈사람처럼 불어나는데는 처가의 이름값이 얼마나 제 몫을 했겠습니까? 아쉽게도 입증할 수 없는 사실은 이런 책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경영학 전공 서적은 성공 케이스만 쓰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사실은 묻어버리죠.
다행히도 책에는 신이 인연을 맺는 한일 양쪽의 정치인들 이름이 주르륵 나열됩니다. 한일 회담 성사 이전부터 양국의 큰 손으로 활동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죠. 다만 정치인이 아니라서 수면 위로 노출되지 않을 뿐입니다. 일본의 전후 우익 중 가장 거물이랄 수 있는 나카소네와의 친분을 저렇게 대놓고 자랑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몰역사적인 기업가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정치가와의 친분을 적당히 노출하거나 적당히 숨겨놓거나 하는 편입니다만 의도적으로 몇몇 사람과의 친분은 유달리 드러내더군요. 음험한 자기 이미지와 달리...
암튼 결혼 이야기가 그의 사업 확장에 매우 중요한 키 포인트인데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저도 매우 의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하츠코 여사의 모친이 언제 사망했는지 알게 된다면 책과 기사의 안 들어맞는 부분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릴 것 같습니다.
참고로 서미경은 미스 롯데에 1972년인가 73년인가에 진으로 됐습니다.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택도 없이 1977년으로 나오는데 그걸 모두가 인용하고 있네요. 서미경은 최초의 미스 롯데였구요, 이게 아마 3년에 한번씩 개최됐을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서미경은 72년, 75년은 명현숙, 78년은 원미경, 81년은 은퇴한 박경득인가 하는 여자였죠. 77년에는 미스 롯데 대회 따위 있지도 않았습니다. 75년 명현숙은 이후 오락 프로의 대가인 송창의 피디와 결혼해서 은퇴했죠. 같은 해에 장미희가 나와서 이화여고생이라는 사기극으로 장려상인지 뭔지 암튼 순위 낮은 쪽에 있었습니다. 신격호가 왜 장미희를 가만 두었을까 생각해 봤더니 장미희는 데뷔 이후에 이병철, 전문어와의 소문이 만만치 않았고 장미희가 톱급으로 떴을 때 이미 서미경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서미경은 미스 롯데로 톱급 광고 모델이 되었지만 너무나 서구적인 외모로 드라마에선 강한 성격의 조역에서만 그치고 말았거든요. 또 서미경 본인이 10대 시절부터 모모 정치인 자제들과의 소문을 비롯해서 암암리에 구설수의 주인공이기도 했고요. 어쨌든 신격호의 결혼 스토리는 일본 현대사를 어느 정도 아시면 훨씬 이해가 될 만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