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확히는 새벽에 쓴 글이 베스트에 올라와 있네요. 어느 시점에 삭제를 할까 했는데 개인상담을 받느라
시간이 지체되어서 타이밍을 놓친 것이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네. 저 깨어났습니다.
처방받은 약이 많지 않았었고, 옆에 아이가 잠든 다음에 약을 먹기 시작해서인지 정오무렵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아침을 굶고 일어나서 학교에 갔구요. 희미한 소음만 들렸을 뿐, 기억은 없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댓글이 너무 하나 하나 소중해서 차마 지우지 못했습니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심층적인 개인상담을 했습니다.
저를 잘 아는 분, 상담 스킬이 뛰어난 분을 몇 분 옆에 두고 있습니다. 그중의 한분이었고, 오늘까지 오랜동안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언성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이틀간 상담이 끝났습니다. 마지막 동아줄이었습니다.
제가 과연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불행인지, 아니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관점에서의 불행에 놓여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법은 과연 남아있는지 그것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계속 끊임없이 나누었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했다면 결코 상담이 지속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불행의 반복의 근원이 무엇인지
저라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유전적 기질이나 성향때문에 의학적인 도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겨내질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노예가 되고 있는 건가에 대한 의문점, 그리고 첨예한 인간관계 (가족 포함)의 대립적인 상황에서 어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럴 땐, 자리를 피하라, 감정을 잠시 눌러라...그게 제 상황의 해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을 조언해주셨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변화
무쌍하지만 배우자이든, 부모이든 그 사고의 틀과 고정관념, 신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더불어 제 선택적인
기억, 특히 부정적이고 염세주의적 시각이 계속 반복되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이셨습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라는 것....내 부모도 내 남편도 나를 하찮게 여기지만, 그리고 제 경우가 결코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지만
회복의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다는 것과 조금만 더 한걸음 나아가 자녀들을 위해 죽음을 보류하는 것...그게 답이었습니다.
어찌 들으면 허탈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철저하게 타인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것은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정신과에 갔어도 상담센터에서도 저에게 호응해주고 격려해주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만 지나고 보면 결코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았었습니다. 약도 먹을 때 뿐이었구요. 솔직히 아주 좋은 분위기에서만 상담이 진행된 건 아니었습니다.
다소 억양이 거세지기도 하고, 초점을 흐리지 말고 계속 들어보라...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어제는 미친듯이
울고 오늘은 눈물을 참느라 안 그래도 멍한 정신에 정신 번쩍 차리고 듣느라 심신이 지치더군요. 조건적인 관계...그러니까
give & take가 적용되지 않는 관계 중에 원가족이나 부부관계가 있다면서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내려놓으라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타들어가는 속에 얼음 마사지를 받은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허망했지만 말입니다.
제 병명이나 의학적인 문제는 모르시는 분이었습니다. 조직이 괴사되서 패혈증 직전에 재수술을 하고 마지막 한번 더
할 수 있으나 과다출혈로 사망 혹은 하반신 마비가 우려된다...국내에서 본 임상 사례 중에 최악의 케이스다. 해외저널
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본 적이 없다...(의술을 떠나 이걸 환자한테 곧이 곧대로 이야기 하는 그 교수님이 너무 싫었습니다)
제 상황이 이렇습니다. 외과적인 문제고 장기 자체가 문제라서 암이나 이런 것처럼 근치적 절제가 안되며 신경의 예민한
부위를 건드려야 해서 장애인으로 살아갈 각오로 수술받겠냐...내가 의사지만 세번째 수술은 받지 말고 살았으면 한다.
이게 제가 마지막으로 의료진에게 들은 말입니다. 이런 절 부모가 저더러 창피하고 어디다가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수술 시간에 제 때 오지도 않았습니다. 자다가 늦어서 수술 시간이 뒤에 온 환자하고 바꾸어 수술방에 갔습니다.
물론 저 굶기지 않았고 의료비 대주고 월급 갖다주니까 고맙게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2년 후에 이혼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성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비참한 병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저를 남 취급하며 사십니다.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새벽에 그 글을 썼습니다. 제가 앞으로 변할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적고, 또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숨 고르다가 베스트에 올라간 제 글을 봤습니다. 저를 격려하고 위로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