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와 장예모의 오랜만의 조합이다
만년설에 비치는 스산한 난초 같은 영화다
공리는 말할 것도 없다
뜻밖은 장예모의 연출이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의 굴곡과 아픔을 잔잔한 시어처럼 영상화 했다
별 하나에 우주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듯이 그렇게 담백하고 단조롭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뭉클한 덩어리가 치솟는다
공리가 아니면 전해질 수 없는 숙연한 감동이 있다
그 옛날 중국의 정취가 소박하게 그려진 풍경도 고요하고
오랜 시간이 묻어나는 소품 하나하나까지 이름 모를 누군가의 빛바랜 일기장을 덤덤히 읽어내려가는 느낌이다
가족사의 비극에 통곡도 처절한 몸부림도 구구절절한 대사도 없는데
마음이 미어진다...
여백이 살아움직이니 그런 이야기가 없어도 영화는 생생하고 멋스럽다
공리가 그 모든 공간을 채운다
표정 하나만으로...
오래된 그녀의 영화 표량마마는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울적하고 허하고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을 때 가끔 본다
30대 중반의 아름다운 공리가 장애 아들을 키우는 순박하고 억척스런 엄마로 연기한다
그 남루하고 기구한 여인의 삶을 또 고스란히 실어낸다
세월을 품어안은 여배우의 초연함
연기는 무르익고 또 무르익어
점점더 새살이 돋는다...
훅 꺼진 눈과 패인 볼 아래로 미세하게 떨어지는 눈물
그리움을 그 장면 하나에 담아낸다
온갖 언어로 그 사연을 풀어내는 건 내 몫이었다
영화는 안타깝게 끝났다
그런데 그 여운은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