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인질극..살인범을 보니 문득 뜬금없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요.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종류의 살인사건들을 보면 생각나던 이야기죠...
아마 제가 이제 나이가 있고 그런 사건들의 범인들 혹은 배경인물들의 나이대가 비슷해지다보니
이런 것들이 내 윗 세대 어른들의 사건이고 이야기만은 아니다,라고 생각들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같은 반 남자아이였는데..아마 그 아이는 4,5학년 때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로 전학 온 것 같아요.
나이가 많고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랑 살고 아버지는 따로 돈을 벌러 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엄마는 오래 전 가출상태라 그냥 버려진 아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반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반장이었기 때문에 학급 아이들 중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는 아이와 꼭 짝을 했어야 했어요.
제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고 그냥 이 아이 저 아이 잘 지내는 편도 있었고 무엇보다 담임이 그렇게 정해주고 하다 보니
1-2주일 돌아가며 조금 혹은 많이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고 집안이 불우하다 싶으면 학용품 등 나눠서 수업을 받아야 하니
군말없이 1년간은 그렇게 했어야 했죠.
지내다 보니 문제아이들이란 아이들에게도 많은 숨겨진 장점이 있고 따로 말 못하는 고민들을 제게 말해주고 하다보니
왠지 저도 마음이 가고 그리고 재미있는 면도 있어서 짝으로서, 친구로서 두려움을 버리고 잘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아이는 제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아이였어요.
도벽이 심하고 성적으로도 지나치게 심한 말들과 행동을 하고 저를 괴롭히는 것도
제가 좀 견디기 어려울..그런 아이였는데..
그래도 제 나름엔 잘 지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때론 그러면 안된다..붙잡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그러면 너랑 안논다 못논다 이렇게 매몰차게도 해 보고..제가 여자아이였기에 두려움도 있고 안스러움도 있고 했지만
제가 도저히 못 견디고 짝을 바꾸겠다고 하니 담임도 그제서야 수긍했는데
그 아이가 짝은 바꾸지 말아달라고 미안하다고..안 그러겠다고 저한테 삐뚤삐뚤 편지까지 썼더라고요..
진짜 화도 나고 괴롭고 저도 사람인지라 싫은 것도 있었는데..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같은 답을 듣고 다시 짝을 했지요.
그런데 집에서 갑작스레 이사를 하게 되고 도저히 통학거리가 아닌 지라 저도 전학을 가게 됐어요.
초등학교를 마치고 가야할지 아닐지 부모님들도 걱정과 고민이 있었지만 진급하게 되면 적응하고 중학교로 진급하게 되는 것이 낫겠다,란 판단들을 하셔서 결국 6학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학을 하게 되었지요.
저 포함 어린이들이니^^ 많이들 울고 서운해해 주고..
그리고..그 짝이었던 아이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신경이 많이 쓰여서..누나 같은 마음이 들었던가..다른 친한 몇 친구들에게만 알려준 새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전학간 학교에서 적응하고 중학교로 올라가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집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전화가 울리다 끊어진다거나..받아도 말이 없다던다..우편함에 그냥 흰 봉투만 있다던가..첨엔 의식 못했는데 자꾸 그런 일이 있으니 신경 쓰였죠. 제가 받아도 한참 말이 없거나 하는 그런 전화가 밤 늦게까지 울리고 했으니..그렇다고 누군인지도 모르니 전번을 바꾸는 것도 그렇고. 오래 된 집 전화번호를 바꾸는 것은 상당히 성가스럽고 자연스럽지 못한 그런 일이었거든요..당시엔..
그리고 고등학교 지나 대학생이 될 무렵..
이상한 음란전화가 집으로 계속해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습니다. 외할머니, 엄마, 언니 난리나고 기겁할 정도로.
당시 저는 입시니 뭐니 항상 집에 없고 전화 받을 일도 별 없고..그리고 제가 있을 땐 잘 모르겠더라구요.
우리 집에 항상 끊기는 전화가 온다..그 정도지..유난스레 생각은 못 했는데..
어느 날, 저도 그 전화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전...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겠더라고요..
6학년 때, 짝이었던..그 아이였습니다. 목소리가 그렇게 달라지진 않았더라구요. 6학년 때 전화목소리를 경험한 적도 있고.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음란통화를 해 대는데..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당황해서 저도 듣다가 뭐야! 정도 하고 끊었고 그런 후 아빠가 대신 받아주시고..
암튼 너무나 당황하고 뭐랄까 두려웠는데 이게 뭘까 생각하다 제 앞에 일들만 생각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언니한테는 아마 그런 것 같다..그 아이 같다 라고만 언질했고요. 언니는 그 전화를 받게 되면 제 말을 기억하고 조금 두려움 없이 막 뭐라고 해 주고 끊고 했다고 한 것 같아요.
그렇게 잊고 몇 년후..또 그 전화가 걸려왔어요. 역시 밑도 끝도 없는 음담패설에 음란전화..그리고 그 아이였습니다.
이번엔 제가 용기내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 누구누구지? 왜 이러니? 무슨 일이니? 같은.
그랬더니..한참 듣고 있는 듯 고요한 정적 끝에 전화가 뚝 끊겼어요. 그리곤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제가 전학 온 초등학교 때 친구 한 명과 우연히 연락이 닿은 적이 있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전하던 중..제가 저에게 음란전화를 했던 그 짝아이의 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물었었는데..
뜻밖에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 애가...살인을 했다고..살인범이 되었다고..그것도 두 명 씩이나..
시장에서였던가..그것도 한 낮이었다고 그래요. 장사하던 아주머니와 손님 여자를...그냥 식칼로 찔렀다고..
친구는..그 동네에서 떠나지 않고 오래 살고 있었는데..그래서 당시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고..
설마 그 애인가 했는데..나중 현장검증인가 할 때 봤다고..모자 쓰고 고개 푹 숙이고..그리고 아무 표정 없더라고..
얘기를 듣고 전 정말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가 띵해져, 무섭고 끔찍하고 아마 나도 무슨 해꼬지를 당했을지도 몰랐을 거란 생각에 부모님에게 말해 서둘러 집 전화번호를 바꾸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이런저런 생각에 며칠을 지냈던 것 같아요.
그 때 그 아이는..지방에 일을 간 아빠가 돌아오면 자신을 죽도록 때렸다고 혁띠같은 것으로...
그런 말을 저에게 했었죠. 그리고 별로 안 아프다고..그런 말을 한 것 같은 기억..할머니가 죽으면 자기도 죽을 거라고 같은 말도..
저도 어리니 무섭지만 그냥 듣고만 있다가 뭔가 위로하는 말 같은 건 한 것도 같은데..
아주 잊은 듯이 있다가 두서없이 생각나는 기억입니다.
사실..이 사건 보면서..안산 인질극의 범인 얼굴을 일부러 봤어요. 혹시..혹시 그때 그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에.
살인범은 타고 나는 거라고도..환경이 만드는 거라고도..많은 말들이 있고 전문가들도 여러 견해가 있지만
저는 그냥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 아이인..너는..나에게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우편함에 놓고 간 듯한 흰 봉투 여러 장을 언젠가까지 왠지 버리지 못하다가
세월이 흐르고 이사를 다니고..당연히 그렇게 무심코 버렸지만요.
짝이 다시 되면 이제 다시는 잘못하지 않을게..의 그 눈빛은 그래도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아빠가 때렸어..라고 말하던 그 때의 그 표정과 눈빛도.
잊은 듯 하다가 두서없이 생각나 적어보았습니다. 긴 글 인데..으흐..지루하셨겠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