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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사건들 속에 문득 떠 오른 그때 그 아이.

음.. 조회수 : 2,457
작성일 : 2015-01-15 21:30:50

안산 인질극..살인범을 보니 문득 뜬금없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요.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종류의 살인사건들을 보면 생각나던 이야기죠...

아마 제가 이제 나이가 있고 그런 사건들의 범인들 혹은 배경인물들의 나이대가 비슷해지다보니

이런 것들이 내 윗 세대 어른들의 사건이고 이야기만은 아니다,라고 생각들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같은 반 남자아이였는데..아마 그 아이는 4,5학년 때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로 전학 온 것 같아요.

나이가 많고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랑 살고 아버지는 따로 돈을 벌러 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엄마는 오래 전 가출상태라 그냥 버려진 아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반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반장이었기 때문에 학급 아이들 중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는 아이와 꼭 짝을 했어야 했어요.

제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고 그냥 이 아이 저 아이 잘 지내는 편도 있었고 무엇보다 담임이 그렇게 정해주고 하다 보니

1-2주일 돌아가며 조금 혹은 많이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고 집안이 불우하다 싶으면 학용품 등 나눠서 수업을 받아야 하니

군말없이 1년간은 그렇게 했어야 했죠.

지내다 보니 문제아이들이란 아이들에게도 많은 숨겨진 장점이 있고 따로 말 못하는 고민들을 제게 말해주고 하다보니

왠지 저도 마음이 가고 그리고 재미있는 면도 있어서 짝으로서, 친구로서 두려움을 버리고 잘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아이는 제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아이였어요.

도벽이 심하고 성적으로도 지나치게 심한 말들과 행동을 하고 저를 괴롭히는 것도

제가 좀 견디기 어려울..그런 아이였는데..

 

그래도 제 나름엔 잘 지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때론 그러면 안된다..붙잡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그러면 너랑 안논다 못논다 이렇게 매몰차게도 해 보고..제가 여자아이였기에 두려움도 있고 안스러움도 있고 했지만

제가 도저히 못 견디고 짝을 바꾸겠다고 하니 담임도 그제서야 수긍했는데

그 아이가 짝은 바꾸지 말아달라고 미안하다고..안 그러겠다고 저한테 삐뚤삐뚤 편지까지 썼더라고요..

진짜 화도 나고 괴롭고 저도 사람인지라 싫은 것도 있었는데..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같은 답을 듣고 다시 짝을 했지요.

 

그런데 집에서 갑작스레 이사를 하게 되고 도저히 통학거리가 아닌 지라 저도 전학을 가게 됐어요.

초등학교를 마치고 가야할지 아닐지 부모님들도 걱정과 고민이 있었지만 진급하게 되면 적응하고 중학교로 진급하게 되는 것이 낫겠다,란 판단들을 하셔서 결국 6학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학을 하게 되었지요.

저 포함 어린이들이니^^ 많이들 울고 서운해해 주고..

그리고..그 짝이었던 아이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신경이 많이 쓰여서..누나 같은 마음이 들었던가..다른 친한 몇 친구들에게만 알려준 새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전학간 학교에서 적응하고 중학교로 올라가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집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전화가 울리다 끊어진다거나..받아도 말이 없다던다..우편함에 그냥 흰 봉투만 있다던가..첨엔 의식 못했는데 자꾸 그런 일이 있으니 신경 쓰였죠. 제가 받아도 한참 말이 없거나 하는 그런 전화가 밤 늦게까지 울리고 했으니..그렇다고 누군인지도 모르니 전번을 바꾸는 것도 그렇고. 오래 된 집 전화번호를 바꾸는 것은 상당히 성가스럽고 자연스럽지 못한 그런 일이었거든요..당시엔..

 

그리고 고등학교 지나 대학생이 될 무렵..

이상한 음란전화가 집으로 계속해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습니다. 외할머니, 엄마, 언니 난리나고 기겁할 정도로.

당시 저는 입시니 뭐니 항상 집에 없고 전화 받을 일도 별 없고..그리고 제가 있을 땐 잘 모르겠더라구요.

우리 집에 항상 끊기는 전화가 온다..그 정도지..유난스레 생각은 못 했는데..

어느 날, 저도 그 전화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전...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겠더라고요..

6학년 때, 짝이었던..그 아이였습니다. 목소리가 그렇게 달라지진 않았더라구요. 6학년 때 전화목소리를 경험한 적도 있고.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음란통화를 해 대는데..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당황해서 저도 듣다가 뭐야! 정도 하고 끊었고 그런 후 아빠가 대신 받아주시고..

암튼 너무나 당황하고 뭐랄까 두려웠는데 이게 뭘까 생각하다 제 앞에 일들만 생각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언니한테는 아마 그런 것 같다..그 아이 같다 라고만 언질했고요. 언니는 그 전화를 받게 되면 제 말을 기억하고 조금 두려움 없이 막 뭐라고 해 주고 끊고 했다고 한 것 같아요.

 

그렇게 잊고 몇 년후..또 그 전화가 걸려왔어요. 역시 밑도 끝도 없는 음담패설에 음란전화..그리고 그 아이였습니다.

 

이번엔 제가 용기내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 누구누구지? 왜 이러니? 무슨 일이니? 같은.

그랬더니..한참 듣고 있는 듯 고요한 정적 끝에 전화가 뚝 끊겼어요. 그리곤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제가 전학 온 초등학교 때 친구 한 명과 우연히 연락이 닿은 적이 있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전하던 중..제가 저에게 음란전화를 했던 그 짝아이의 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물었었는데..

 

뜻밖에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 애가...살인을 했다고..살인범이 되었다고..그것도 두 명 씩이나..

시장에서였던가..그것도 한 낮이었다고 그래요. 장사하던 아주머니와 손님 여자를...그냥 식칼로 찔렀다고..

친구는..그 동네에서 떠나지 않고 오래 살고 있었는데..그래서 당시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고..

설마 그 애인가 했는데..나중 현장검증인가 할 때 봤다고..모자 쓰고 고개 푹 숙이고..그리고 아무 표정 없더라고..

 

얘기를 듣고 전 정말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가 띵해져, 무섭고 끔찍하고 아마 나도 무슨 해꼬지를 당했을지도 몰랐을 거란 생각에 부모님에게 말해 서둘러 집 전화번호를 바꾸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이런저런 생각에 며칠을 지냈던 것 같아요.

 

그 때 그 아이는..지방에 일을 간 아빠가 돌아오면 자신을 죽도록 때렸다고 혁띠같은 것으로...

그런 말을 저에게 했었죠. 그리고 별로 안 아프다고..그런 말을 한 것 같은 기억..할머니가 죽으면 자기도 죽을 거라고 같은 말도..

저도 어리니 무섭지만 그냥 듣고만 있다가 뭔가 위로하는 말 같은 건 한 것도 같은데..

 

아주 잊은 듯이 있다가 두서없이 생각나는 기억입니다.

사실..이 사건 보면서..안산 인질극의 범인 얼굴을 일부러 봤어요. 혹시..혹시 그때 그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에.

 

살인범은 타고 나는 거라고도..환경이 만드는 거라고도..많은 말들이 있고 전문가들도 여러 견해가 있지만

저는 그냥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 아이인..너는..나에게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우편함에 놓고 간 듯한 흰 봉투 여러 장을 언젠가까지 왠지 버리지 못하다가

세월이 흐르고 이사를 다니고..당연히 그렇게 무심코 버렸지만요.

짝이 다시 되면 이제 다시는 잘못하지 않을게..의 그 눈빛은 그래도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아빠가 때렸어..라고 말하던 그 때의 그 표정과 눈빛도.

 

잊은 듯 하다가 두서없이 생각나 적어보았습니다. 긴 글 인데..으흐..지루하셨겠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IP : 114.129.xxx.58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부모라고
    '15.1.15 9:37 PM (203.130.xxx.193)

    다 부모 아닌거고 자식 낳았다고 다 어른도 아니죠 저는 이런 류 이야기 들으면 그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사건 생각나요 그 살인한 여자분도 임산부였죠 아이가 축복이니 자식은 행복이니 그런 소리 들으면 불현듯 생각나면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게 하는 기준이 아이는 아닌 거 같아요
    아마 그 짝분 폭행한 아버지도 교육이고 사랑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죠

  • 2. ***
    '15.1.15 9:39 PM (110.13.xxx.241)

    잘읽었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불행한 가정의 아이들도 수용해주고, 사랑으로 교육시켜줄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3. 그러네요 ㅠ
    '15.1.15 9:43 PM (175.196.xxx.202)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마음이 안좋네요
    그 아이가 잘 자라주었길 바랍니다
    정말 똑똑한 아이인데 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 아직도 문득문득 걱정이 돼요

  • 4. ...
    '15.1.15 9:48 PM (211.202.xxx.116)

    원글님... 많이 무서우셨고 놀라셨겠어요 ㅠㅠ

    뜬금없지만 두 번의 큰 전쟁(일제강점기와 6.25)을 겪은 나라의 후폭풍, 후유증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일제시대 고문, 폭력적인 군대문화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어 남성들을 폭력에 길들여지게하고 되물림되는 것은 아닌지도요 ㅠㅠ

  • 5.
    '15.1.15 9:50 PM (1.232.xxx.214)

    너무나도 아립니다
    누구나 잘 자랄수있었던 씨앗 이었을텐데
    누가무엇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 6. 눈물이...
    '15.1.15 10:13 PM (122.40.xxx.36)

    눈물이 나네요.
    아... 가엾어라.
    저도 저 한 몸 지키기 어려운 힘 약한 여자라서, 그런 얘길 들으면 무섭기도 하지만...
    흉악범이 되기 전의 상처받은 어린 아이만은 가엾습니다. 지금은 죄값 치르고 마음도 치유가 좀 되었으면 좋으련만...

  • 7. 음..
    '15.1.15 10:38 PM (114.129.xxx.58)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주시고..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좀 후일담이 있긴 한데..넘 자극적일 수도 있고 아직 정확한 확인은 안된 이야기라..글에서의 언급은 피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그때 그 아이..친구라고 부르기에도 뭔가 아직 막막한 이 아이에게..
    짝이 되어서 조금 고민스러웠는데..특히 점심시간에요..
    당시 엄마가 도시락을 두 개 싸 주셨어요. 나눠 먹으라고..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라고..
    그런데..그건 좋은데..우리집 반찬이 뭐 그렇게 대단하거나 ..으흐.. 자랑할만하거나..그런 게 아니라서..
    저도 먹기 싫은 게 좀 있고...어리고 못난 생각에...몇 번씩 안 전해줬어요. 그냥 얼른 집에 와서 엄마 보기 전에 제가 다 먹고.,아님 그냥 못 먹었다고 그러고..
    그래도 용기내어 전해 준 적은 있었는데..그 친구의 표정이 아주 밝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둘이 말없이 밥 먹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친한 친구들이랑 밥 먹고 싶으니 매번은 그렇게 못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왜 그랬지 싶지만요...그래도 장조림 있으면 둘이 맛있어 하면서 먹은 건 기억나요..
    그랬어요..장조림...

    후일담은..몇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확인된 건 아닌데..그 아이가 그 동네에서 비교적 오래 살았던 것 같아요..재개발 되거나 하지 않았으니..몇 군데는 그렇게 되었지만요..

    자살..했다고 지금도 소식 전하고 하는 친구가 그랬습니다..그 아이인 것 같다고..
    그 이름인 것 같다고..

    저도 그냥 미안하네요. 내가 조금 더 잘해주었으면 많은 게 바뀌었을까..언니에게 아까도 물었어요.
    그런 건 없어..니가 뭘..그냥 너의 생각이지..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니..니가 뭘..하면서 제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음 하는..
    그리고...그냥..안됐지..하지만 그래도 죄야..하면서..

    다시 많은 걸 그냥 두서없이 적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로 글을 쓰신다면 좋지요...적어도 그 아이의 아이였던 마음은...지금 어느 곳에 있어도 위로를 받지 않을까요..자기를 이야기 해주면 좋아했던 그런..적어도 제 기억속엔 그런 아이였으니까요.

  • 8. 눈물이...
    '15.1.15 11:07 PM (122.40.xxx.36)

    원글님 댓글과 위 댓글을 읽으니 또 코가 맵고 눈물이 나네요. 아 진짜. 나이 들었나... ㅜㅜ

    원글님이 댓글 못 보셨거나 실례라 생각하시는 건가 해서 댓글 지웠었어요.
    네, 원글님. 저도 그런 마음으로요. 이야기가 어딘가로 전해지고 위안이 되었으면 해서요. 십 년 후가 될지 이십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글로 써 보고 싶어요. 허락해 주셨으니 기억해 둘게요. 혹시 나중에 나중에... 보게 되시면 그 아이가 자기를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었다는 걸 알 거라고, 그리 생각해 주세요.

  • 9. ...
    '15.1.16 12:09 AM (39.117.xxx.72)

    저도 괜히 마음이...
    그 아이가 부모를 잘만났더라면... 최소한 살인자는 안되었겠죠...
    그냥 평범한 부모만 만났더라도, 기껏해야 날라리...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나중에라도 정신차리고 잘 살고있을지도 모르고...

    님같은 친구가 평생 곁에 있었다 하더라도 부모라는 제일 큰 그늘이 치명적이어서...
    물론 부모도 어찌할 수 없을정도로 기질이 타고난 아이도 있겠지만요...
    그런 기질의 아이더라도... 항상 그 한면은... 선한 구석이 있을거에요...

    요즘 뉴스 보면서, 미쳤네... 소리밖에 안나왔었는데...
    님글 읽으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 10. 이효
    '15.1.16 1:29 AM (121.143.xxx.18)

    아 ㅠㅠ 야밤에 눈물 흘렸네요 ㅠㅠ

    엄마아빠가 되는 사람들 자격시험부터 치렀으면 좋겠어요
    가뜩이나 애기낳고 감정이입 충만 쩌는데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받는 아이들 버려져서 밤새 울어도 안아줄 사람 없는 갓난아기들 생각하면 잠도 못 잘 정도로 마음
    아프거든요 ㅠㅠ

    두분 얘기 다 마음 아파요 ㅠㅠ

  • 11.
    '15.1.16 2:20 PM (59.11.xxx.65)

    영화같은 이야기에요
    슬프고 힘들었을 어린시절의 그 아이.
    마음이 아파요.
    내자식뿐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보듬어줘야겠딘 맘이 드네요

  • 12. 아;;;;;
    '15.1.16 6:05 PM (1.232.xxx.214)

    댓글읽고 코끝이 찡...
    어쩌면 좋아..
    영화같네요. 진짜.. 잔잔한..하지만 너무 슬픈..
    속에서 얼마나 힘들고 세상은 또 얼마나 지옥이었을까요..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없는 황폐한 사막같은 삶...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댓글..정말 .. ;;

  • 13. 음..
    '15.1.16 10:23 PM (114.129.xxx.58)

    벌써 하루 지난 글에 댓글들과 마음들을 주시고..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저 제 마음도 어딘가 아픕니다.
    제 마음 속 서랍 한 켠에 그저 조금은 잊은 듯 넣어두었던 것 같은 이야기라..

    아직도 그 때 그 아이를 친구라고 무심결처럼 호칭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어요.
    스쳐간 듯한 어릴 적 일이라지만 살인자의 친구? 내가? 왜? 같은 강한 거부감이 저에게 있었으니까요.
    그리고..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저질러버린 일은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도저히 용납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것은 여러분과 같은 그런 것일 겁니다.
    소식을 들은 당시엔...어째서 그런 어두움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극복하지 못했는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요..

    그 당시 얼마간 짝이었던 어떤 아이는..그 아이도 매우 불우하고 불행한 환경의 아이었는데
    짝을 하면서 문득 본 저의 하얀 손에 '니 손은 우리 손이랑 달라. 그래서 너 같은 손 보면 커터칼로 자르고 싶다' 이런 말을 한 아이가 있었었어요.
    아마..고아원이었던가..다시 부모가 맡게 되었나..어쩧든 고아원에서 있다가 학교도 늦게 와 나이도 또래보다제법 있는 그런 아이였죠.
    기가 막히고 무서웠지만 그 말에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일부러처럼 장갑을 안끼고 저는 제 손도 좀 트고 했음 좋겠단 생각에..나도 다르지 않다 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가..맨 손으로 초겨울 내 다녔어요.
    나중 제가 전학갈 때 그 무서운 아이가 저에게 미안했다고..장갑을 이쁜 장갑을 마지막 선물로 주었던 것.
    그 아이는. ..주유소를 차렸다고 들었어요. 고생도 많이 했는데..그래도 잘 자라 주유소 사장님까지 되었다고.
    아마..그 때 그 아이의 끔찍한 소식을 들으면서..장갑을 준 아이의 잘 된 이야기도 생각나..
    그렇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란 내면의 강한 거부가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아이 탓이라고도.

    아마 이 이야기는 다시는 제가 누군가에게 안 할 것 같은 그런 이야기예요.
    두고 마음 속 서랍에 넣어왔는데..이상하게 꺼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어제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는 경찰은 나쁜 사람을 잡아가는 사람이고 아이가 지독한 학대를 당하는 이런 문제들에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고..그런 일도 없었고. 어른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는 그저 안스럽고 남의 이야기 일..그런 것이었으니까요..

    그때 그 아이는...발가벗겨진채 심하게 그 아빠에게 혁띠로 맞고 내쫓기고 그런다고
    같은 동네에 살던 반 아이들도 이야기했었거든요.
    지금은 신고 같은 것이 있는데..그 때는..그 때는...
    그런 안타까움..후회 같은 것들과 두려움..아픔이 엉겨서 정리가 안 된 채 제 마음 속 서랍에 있던 이야기여서..

    놓고 간 흰 편지봉투..로 그때 그 아이가 나를 찾은 것을 짐작하게 된 건..
    본문에 적었듯이, 그 아이가 삐뚤삐뚤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저에게 썼는데
    당시 그 아이가 워낙 잘못하고 다닌 게 있어서 , 다시 짝 하는 조건으로
    제가 다른 잘못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 용서를 구해라 라는 것이 있었어요.
    편지지도 없고 편지봉투도 없어서 못한다는 식이길래
    제가 당시엔 우편번호가 다섯 숫자여서 앞으로 여섯 자리의 숫자로 바뀌니 그런 구식 흰 편지봉투를 다시 쓰기 어렵다고 판단해 집에 있는 것들을 죄다 그 애에게 몰아줬거든요. 생색처럼..이걸로 반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어라 이렇게.
    그리고 저는 당연히 문구점에서 사는 꽃편지지 이런 게 좋았지 흰색은 어른들이나 쓰는 거니..

    그런데 그 편지봉투..다섯 자리의 숫자인 그 예전 봉투가
    우편함에 몇 번 놓여져 있어서..첨엔 엄마가 그걸 어디서 주워서 받아서 쓰려고 꽃아놓았나? 싶어 무심코 넘기다가..하도 이상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엄마는 길에서 떨어진 못을 웃으며 주워 오는..나름 알뜰한 엄마였으니까요..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요^^
    엄마는 그런 적이 없다 하시고..그런데 불현듯..그 아이겠다 싶은 그런 생각이 스쳤어요.

    제가 준 편지지와 편지봉투에..그때 그 아이는 용서를 구하는 대상인 반 아이들의 이름을 썼는데
    자기가 좀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겐 성까지 다 붙여 '***에게' 이렇게 하고 좀 좋아한다 싶은 아이에겐(주로 반 여자아이들?^^) 이름만 써서 '** 에게' 이렇게 편지봉투 겉에다 적었거든요..

    그런데..저에게는...
    '친구에게' 라고 적었습니다.

    이젠 생사를 그저 짐작하는 그때 그 아이의 마음과 영혼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길.. 그럴 수 있길..

  • 14. 읽을수록
    '15.1.17 2:50 AM (1.232.xxx.214)

    아이들의 그때의 아픈 삶 무언가말하려고 알아달라고 애썼던 그무언가가 자꾸 느껴지는것같아 이밤에 또 맘한켠이 ~~
    원글님도 글 담담하게 적어내려가니 흠뻑 몰입이 되네요
    그누구도 어쩔수 없었던 거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만 참 가슴이 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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