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의 로그 인]오늘도 바쁘다
손홍규|소설가
내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은 군부독재의 시기였기 때문에 보수는 편안했다. 이따금 관제데모가 열리기는 했지만 소풍이라도 가듯 한가로이 나가 시간을 죽이다 일당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정권이 총칼로 세상을 잠재웠고 위태롭다 싶으면 간첩단 사건, 조직사건을 터트려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그래도 저항이 거세어지면 저항세력의 배후에 북이 있다고 공갈을 치면 만사형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뭇 다르다. 보수는 바빠지고 피곤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촛불집회가 열리니 맞불집회 하러 나가봐야 하고 심지어는 대전, 부산 등 지방출장도 가야 한다.
시위나 집회가 열릴 만한 곳엔 미리 집회 신청을 해 둬 선점해야 하고 인권단체의 눈치를 보는 경찰들 때문에 시위 현장에서 맘대로 가래를 뱉거나 폭력을 휘두를 수도 없다. 이제는 요령껏 그런 일을 벌여야 한다.
기자회견을 할 때면 으름장만 놓으면 되었는데 번번이 역효과가 나는 바람에 거짓눈물도 흘려야 하고 평생 누구 앞에 무릎 꿇어 본 적 없이 살았는데 수치심을 참으며 무릎 꿇는 시늉도 해야 한다.
이 굴욕은 반드시 되돌려주겠다고 속으로 다짐도 해본다. 복종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에 익숙한 그들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더구나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알 수가 없다.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이제는 매번 긴장해야 하고 살다보니 난생처음으로 투표 독려까지 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투표를 방해하고 부정선거를 밥 먹듯이 저질렀던 그들이 말이다.
오늘 하루도 초등학생·중학생에게 무상급식을 하자는 자들을 무찌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활동해야 한다. 그들이 바빠지고 피곤해질수록 민주주의는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