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와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IT컨설팅업체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했었다. 1년 전쯤 그로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시민단체를 만든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역 차별 극복을 목표로 하는 단체라고 했다. 국회에서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열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는 혐오 발언(hate speech), 증오 행동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구랍 30일, 경향신문사에서 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국회 안팎에서 혐오 관련 처벌을 규정하는 법이 추진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리해보면 차별금지법으로 포함해서 갈 것이냐, 아니면 혐오 발언으로 갈 것이냐 크게 두 가지로 나눠져 있습니다. 먼저 제기된 것이 차별금지법 관련인데, 예민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요. 연대해서 차별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어려워요. 연대는 플러스게임이 되어야 하는데 차별금지 문제는 마이너스 개념이 됩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지역 차별이나 혐오 발언으로 실제 타격을 받는 쪽은 전라도거든요. 전라도를 자꾸 소수화하고 타자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차이와 차별은 구분해야 합니다. 차이는 차이대로 보고 대우해주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차별은 인정할 만한 차이가 아닌데 차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과 여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병역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는 분도 있겠지만 정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화장실의 경우, 여성 쪽이 더 많이 지어야 합니다. 호남과 영남이 그런 차이가 있느냐, 차이가 아니라고 봅니다. 일베나 이런 쪽에서 기를 쓰고 강조하는 것이 전라도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인종이 다르고 종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회 토론회 때도 테마를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으로 잡았습니다. 저는 호남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입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많은 것이 다른 지역 사람들, 이를테면 충청도나 강원도도 소외된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 그 사람들은 별 말이 없는데 왜 호남만 시끄럽게 구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애향심이라고 할까요, 그런 차원에서 다른 지역을 경멸이라고 하기는 뭐하고 놀림감으로 삼는 것은 어느 나라나 있습니다. 호남에 대한 지역 차별은 권력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조장하면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영남 패권입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을 주도해온 산업화 기득권 세력입니다. 왜 호남을 왕따시키느냐, 저는 그것이 1987년에 만들어놓은 87년 체제의 부산물로 봅니다. ‘87년 체제’ 이전에는 권력이 자신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물리력에 의존했어요. 한마디로 깡패가 주먹을 휘두르면 해결되는 체제였습니다.
87년 이후에 형식적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정권을 창출한다는 것에 합의했지만 미국처럼 정권을 주고받을 유연한 체제의 여유는 갖추지 못했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 정권 창출, 필승 전략이 필요한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영역에서 호남과 반호남의 구도를 만들면 백전백승이 가능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선거가 보여준 것입니다. DJ가 죽고 권좌에서 물러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호남에 대한 혐오감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일베에서는 죽어라고 DJ와 노무현을 호출해냅니다. 이번에 세대 논란을 일으켰던 <국제시장> 영화포스터를 일베에서 종북이라며 패러디한 것을 보세요. 배우 황정민이 애를 안고 있는 사진을 김대중이 노무현을 안고 있는 사진으로 바꿔놨어요. 종북에 전직 대통령들을 일체화시켜 몰아내겠다는 거 아닙니까.”
일베가 권력을 갖고 있는 집단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일베가 권력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고, 줄 수도 없습니다. 조직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역할 분담이 이뤄지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어시스트가 있는 것입니다. 일베 안에 상당 정도의 테크니션 또는 지식인들이 있습니다. 일베가 팩트를 강조하는데, 제가 보기엔 만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보통 일베에 대해 ‘루저’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절대 루저라고만 할 수는 없어요. 실제 99%가 루저라고 하더라도 1% 정도가 이념적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베 이야기만 하면 루저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문제를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의 자기만족 위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관적입니다만 일베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엘리트가 없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일베는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어요. 하나는 정권이 자기방어 차원에서 일베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호남 비하를 빼고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가 팩트와 씹선비질입니다. 이건 공통된 함의가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갖고 있는 허위의식, 실사구시가 배제된 정책에 대한 반발입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바꿔 말하면 냉철하게 과학적·합리적으로 따지지 말자는 것입니다. 생산력 발전에 가장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진보진영입니다.
인간에 대한 가치관을 긍정하는 것은 좋은데, 이것이 합리성과 과학, 경제성에 대한 거부로 이어집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요즘 같은 추세에서는 젊은층 중 똑똑하고 비판적인 친구가 우파로 갈 가능성이 좀 더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일베 문제에 대해 일베만 욕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일베는 영남 패권, 기득권에 대한 옹호전략과 함께 좌파의 삽질이 결합해 나타난 현상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일베를 기득권의 이익 관철의 도구이면서 진보좌파의 실패의 결과물로 본다면 전라도 차별의 해법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전라도 차별은 국민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주제거든요. 특정 지역을 배제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반체제 반자본주의적 사고입니다. 좌파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 강력하게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는 체제 전복적인 사고입니다.
“그렇죠. 심하게 말하면 내란선동까지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내용상으로 보면 통진당 내란선동보다 더 악랄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입니다. 제가 이 단체 활동을 하면서 제일 많이 받는 오해가 호남의 복권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운동의 목표는 한국 자본주의의 합리성 제고입니다. 호남에 대한 배제나 증오가 생기는 것은 결국 영남 패권이 대한민국의 의사결정구조를 독점하겠다는 것이거든요. 호남 왕따 구조의 표면 구도는 호남 배제이지만, 내면은 호남과 반호남 구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잘나가는 IT컨설턴트 회사에 근무하셨는데, 그만두는 걸 주위에서 말리지 않았나요.
“회사에서도 많이 말렸죠. 사실 저 같은 사람이 나설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분들이 많은데 이 문제에 나서는 분들이 없었어요. 우리나라의 인권 감수성은 전반적으로 높다고 봅니다.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인, 외국인, 성소수자 다 나름대로 권리를 인정받고 있고 정부에서 상당 정도 예산 지원도 하고 법이나 정책도 만듭니다. 심지어 반려동물도 보호받고 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호남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야기한 사람이 지역주의자가 되어버립니다. 웃기는 구조입니다. 강도 신고한 사람이 강도가 되고, 불났다고 신고한 사람이 방화범이 됩니다. 뒤집힌 구조입니다. 사실 제가 뭐가 있겠습니까. 도저히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같이 이야기하고 토론한 사람들에게 제안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도 있고 조금 더 간다면 이런 활동을 더 이상 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에서요.”
<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doole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