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살기에 좋았던 시기가 80년대 중반서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아닌가요?
대학생이 과외알바만 해도
등록금 벌수 있던 그시절.
전문대생이 학원차려서 수완좋으면 아파트 한채씩 떡하니 사던 그 시절..
서민이 살기에 좋았던 시기가 80년대 중반서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아닌가요?
대학생이 과외알바만 해도
등록금 벌수 있던 그시절.
전문대생이 학원차려서 수완좋으면 아파트 한채씩 떡하니 사던 그 시절..
imf 전까지만해도....그래도 평등한 편이었어요.
장사해서 돈 벌어 집옮기면 이웃이 교수나 고위공직자 의사인경우도 있고
지금은 계층간 점점 격차가 심해지죠. 돈있는 분들은 주상복합이나 빌라같이 그들만의 리그로....
당시 절대 빈곤층과 차상위 계층은 지독히도 힘들던 시절이니까요.
지금처럼 전체 의료보험이 아니라 직장인들만 되던 시절 아닙니까?
도시 빈민들 보면 맹장염이 복막염이 되어 죽은 경우도 있고,
생인손 앓는데 병원 가기 무서워 미루다가 손톱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길거리 노점들 단속할 때 보면 트럭에서 재빨리 내려 아주 빠르게 과일이고 뭐고 다 집어 던지고 울며 매달리는 사람들 허리 몇 번 차 준 후에 저울을 빼앗아 트럭에 올라타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 친구가 그아버지 고등학교때 돌아가시고 방 한 칸 짜리에 세 식구 사는데 동사무소에서 라면 준다고 나오라길래 친구가 동생이랑 줄 서서 기다렸는데 두 시간을 넘게 영하 십도 추위에 세워 놓더랍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휴대폰 없던 시절이니 나중에 받으러 오라는 말이야 못해도, 사정상 나눠주는 시간이 늦어지면 나중에 오라고 해도 되는걸 무엇 때문에 라면 두 상자를 두 시간 기다리게 했었을까요?
없는 사람에게는 그 때가 더 피눈물 나던 시절이었는데, 전두환 노태우 때가 살기는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어떻게 같은 시절을 보내고도 기억하고 생각하는 바가 이리 다를까 싶습니다.
단지 호황이었고 성장률이 높던 시기였으며, 사람들이 지금처럼 해외 여행이다 명품이다 하던 시절이 아닌데다 인터넷이 없었으니 소위 상대적 박탈감이라는게 덜 하였기에 그리 기억하는가 봅니다.
물론 대학생이 과외로 등록금 내던건 맞습니다만 노태우 들어서고야 대학생 과외 금지가 풀렸었으니, 말하자면 불법 과외라 돈을 다른 임금에 비해 많이 받았던거지요.
과외를 몰래바이트라고 하지 않았었습니까?
분당이 90년대 초반 분양이었지요? 그 때 분양가가 7천만원이니 8천만원이니 했었는데, 전문대생이 학원으로 아파트를 샀었다구요? 대단한 수완가였나 보지요? 지금처럼 임금 대비 헉 소리 나는 아파트 값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몇 년 벌면 아파트 사던건 아니었습니다. 단독 주택이었고, 주택 보급률이 50% 안 되기는 마찬가지. 노태우가 집대통령으로 불리우고 싶다는 멍멍이 소리 하던 때 아니었습니까?
제가 윗님보다 어리다보니 경솔하게 글쓴거같습니다.
흐.. 그런 이면을 몰랐네요 ㅍ ㅜㅜ
경솔은 아니구요...
같은 시대를 지내왔어도 도시빈민 문제에 전혀 관심 없고 봉사 활동 한 번 안 다녀본 사람들은 원글님보다 더 한 소리도 많이들 합니다. 지금도요.
수많은 달동네에서 허리가 삐고 심지어는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기브스는 커녕 부목 하나 대지 않고 야국 약 먹다가 다리 자르거나 죽는 사람들도 생겻었는데 그걸 전혀 모르더라구요.
그러니까 당시에는 복지를 바닥으로 해서 서민들은 그냥 어떡하든 살게 해주고 빈민이나 차상위 계층은 다 죽어가게 부를 분배했던거지요. 지금은 서민들거 빼앗아 복지를 하는 형국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같은 노동자끼리 미워하고 밥그릇 싸움하는 셈이지요.
단지, 호화 아파트 개념은 90년 대 중반 이후가 맞는 듯 합니다. 저는 그 때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 사정은 잘 모르는데요 (인터넷이라고 해봐야 하이텔이나 이후는 모뎀 쓰던 시절) 중간에 한국 놀러오니 갑자기 무쟈게 비싼 아파트니 주상복합이니 뭐 그런 이야기, 있는 사람들만의 마을이 구성되어가는 현상이 생겼더군요.
그래도... 그 전이라고 해서, 서유럽처럼 교수와 배관공이 같이 담벼락 맞대고 사는 그런 상태는 아니었잖아요...
하...자세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제가 언급했던 시절
80년대 중반과 90년대 중반은 어렸을때라
유치원부터 중고교 시절까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부분까지 모른거지요.
그때만해도 저는 집이 중상층 정도 되었는데 이젠 서민. 아니 빈민층으로 내려갈지도 모르겠네요
더 많은 이야기 댓글로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며칠전 옛날 어머니들은 어떻게 찬물에 빨래 했을까
이런 글 올라왔잖아요 8090년대 불우청소년 수기 같은 거 자주 봤는데 그때에도 따순 물 안나와 세탁기도 없이 찬물에 손빨래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쌀이 없어 매일 굷다시피 하고 인정많은 주민들이 김장김치 한쪽씩 갖다줘 겨울나고요 그게 불과 20-25년전 일이에요
청소년수기 까치소리 미워요란 책이 기억나는데 아시는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열심히 직장생활하면 집살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죠...
제가 딱 그때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말하자면 도시빈민이었어요.
연탄 가스 먹고도 병원 아니라 학교엘 갔고 산동네 푸세식 화장실, 동네 친구 엄마들은 공장엘 다녔어요.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
지금처럼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저는 지금이 더 가혹하다고 생각해요. ㅠ.ㅠ
딱 그거예요.
1997년 IMF가 터지기 3년전부터(94-96년) 이상하리만치 모든게 풍요로웠던 기억은 있어요.
딱 그 3년을 제외하곤 지금도 그렇고, 그 이전 시대도 그렇고 개인차가 있겠지만, 괜찮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원글님께 동의하는데요. 기회의 측면에서 말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도 의사, 판사 나오고 지방에서 전국수석 잘 나오고 사회가 훨씬 다양성이 존재했어요.
직업 선택에서도 다양했구요. 지금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열심히 일해서 자기 계급 벗어나기가 어렵고 모든게 대물림되고요. 뭔가 판을 뒤집고 바꾸기가 훨씬 더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글픕니다.
씨가 쓴 외딴 방이라는 책이라도 한 번 읽어보시죠
약간 시간 차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글은 부끄러워서 못 쓸거예요
원글님 나이대가 저랑 비슷하실 것 같은데..
과거와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ㅎㅎ 그때도 서민들이나 빈곤층이 살기엔 어렵지않았나 싶거든요..
단칸방 셋방살이 연탄 번개탄 쓰는 집들 흔했고, 초등학교 때 반 친구들 도시락이나 옷입은 상태며
준비물 부족 등을 시작으로 가난으로 생긴 결손가정, 놀러간 집들 상태가 꽤 심각한 것도 종종봤어요;;
수도권 대도시였는데도 그랬어요. 마구 내쫓기는 철거민들 뉴스같은 것도 심심찮게 나왔구요..
얼마전에 성남의 광주대단지 사건이나 서울 빈민촌 개발사 같은거 좀 찾아보니 장난 아니었더라구요 ;;
암튼,, 어릴때 부모님과 교회에 자주 갔는데, 거기서 보면 내 초등학교 친구들보다 훨씬 어려운 애들,
산업체고등학교 다니며 가족 생활비 대는 여고생언니들도 꽤 봤던 기억이 있어요..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가난한 다수의 서민들과 소수의 중산층 또는 이제 막 진입한 계층들이 섞여 살았고,
급여나 복지가 별로여도 종신고용이 대부분,, 올림픽이다 세계화니 장밋빛 전망들이 넘쳐날때였으니
현재의 어려움은 견딜만했던게 아니였을까 싶네요...
참 그리고 80년대말 90년대 초에 강남, 분당 이사를 시작으로 90년대 후반 지역 택지지구 개발,
십여년전 부동산 폭등 즈음까지 부동산으로 돈 모은 종자돈을 기반으로
자식들 결혼때 집값 보태준 경우도 좀 되더라구요. 친척,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요;;
지금은 내집 마련할 안정적인 직장도 쉽지 않고, 대출끼고 마련한 내집이나 전세금도 불안하고...
내년 크리스마스엔 나아질까 걱정만 늘고 그러내요 ㅎㅎ
초등학생이었거든요..어느정도
잘살았던 편이라 남들도 다 그리사는줄알았어요
83년도에 집에 피아노가들어왔는데 120만원이었대요
그후로 옆집도 들여오구...참 우리집 길건너는 판자촌도 보이긴했지만 ...
소년소녀가장 수기집이죠.
까치소리 미워요
혼자도는 바람개비 등등
90년대 초반에 학급문고에 있길래 읽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