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아주 짧은 소설 한번 써보았습니다.

고띠에르 조회수 : 1,371
작성일 : 2014-12-24 20:24:45

제목 : 그날

글쓴이 : 고띠에르

 

그 일은 내 나이 11살을 코앞에 두었던 어느 겨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즈음 아버지는 할아버지 혼자 꾸려나가시던 가게에서 물건 받는 일을 돕기 위해 일요일마다 새벽같이 차를 몰고 길을 나서곤 하셨는데 어머니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일요일을 희생하며 할아버지를 돕는 아버지가 마뜩치는 않았지만 늙으신 할아버지를 도와야 한다는 아버지를 막을 명분도 뚜렷이 없다보니 그저 새벽에 그렇게 다니다가 빙판 길에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고 걱정 같은 핀잔을 주는 것 말고는 아버지를 말릴 방도가 달리 없었다.

 

아버지는 첫주엔 혼자 가서 하고 오셨는데 두번째주는 나보다 두살 위인 형과 함께 다녀왔다.

그날 할아버지를 도우러 나갔던 형과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심심하게 보낸 나는 다음주는 기필코 형과 아버지를 따라 같이 가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와 형은 잠이 별로 없어서 새벽 4시에도 잘 일어났지만 나는 잠이 많아서 새벽에 일어난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지만 자명종 시계에다가 집안에 있는 시계란 시계는 다 동원해서 알람을 맞춰놓은 덕에 간신히 형과 아버지를 따라 나설 수 있었다.

 

한겨울 새벽 4시는 밤이나 다름없었고 그렇게 어두운 밤 나랑 형 그리고 아버지 셋이서 20년된 96년식 고물 아반테를 타고 집을 나섰다.

 

형과 내가 뒷자리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으니 자꾸 그렇게 운전 방해하면 둘다 집에 다시 보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초등학교 남자 아이들의 귀에 그말이 들릴 리는 없었고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형과 신나게 싸우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초입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무서운 목소리로 나더러 지금 당장 차에서 내리라고 하셨다.

지금 당장 차에서 내려 나 혼자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었다. 집이 고속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라 걸어서 돌아가려면 돌아갈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초등학교 3학년의 걸음걸이라면 족히 30분은 걸릴 거리였다. 

게다가 한겨울 해가 뜨려면 아직도 먼 그 새벽에 10살 짜리 남자아이 혼자 그 길을 걸어서 돌아가라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나 혼자 떠들고 논 것도 아니고 형도 같이 놀고 있었는데 형은 데려가고 나는 집으로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처사가 도저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눈을 보니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었다. 결국, 혼자서 억울함과 분함을 토로하며 집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는데 문득 뒤돌아보니 형은 뒷좌석에 앉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쯤 불쌍하게 내리는 동생을 돌아볼 만도 할텐데 형은 꿈쩍도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전날 오늘이 올 겨울 최고로 추운 날이 될거라는 뉴스를 보았었는데 전혀 춥지가 않았다. 그런데, 겨우 겨우 30분 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 닫힌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리 두드리고 두드려도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엄마! 엄마! ......"

 

.

.

.

.

.

.

.

 

"올 겨울 최고 한파가 몰아쳤던 오늘 아침 빙판길 교통사고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22일 도 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새벽 4시 30분께 xx시 xx면 xx마을 앞에서 96년식 아반테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져 도로옆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48세,남)등 2명이 사망하고 10살 난 차남 박모 군만이 불붙은 차량 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당해 인근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나 현재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IP : 122.34.xxx.31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14.12.24 8:43 PM (211.243.xxx.106)

    오싹해요. ㄷㄷ
    재밌게 읽었습니다.

  • 2. 고띠에르
    '14.12.24 8:51 PM (122.34.xxx.31)

    아무도 반응 안해주면 절필할라 그랬습니다...ㅋㅋㅋ

  • 3. 커피맛사탕
    '14.12.24 9:00 PM (110.70.xxx.36)

    더 세부를 만들어야겠네요~~

    마지막 노림수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것도 문제

    앞 부분에는 너무 긴 문장이 있지만...

    문장을 자연스럽게 쓰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이십니다

  • 4. 고띠에르
    '14.12.24 9:03 PM (122.34.xxx.31)

    사실 전형적인 클리셰가 진동하는 글이죠.
    예전에 어디선가 본듯한 스토리.
    본게임에 앞서 연습 삼아 한번 써봤습니다...^^

  • 5. 웹툰
    '14.12.24 9:12 PM (121.160.xxx.57)

    강풀 작품 생각나요. 제목은 기억 안나는데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의식잃은 환자들과 주변 이야기. 그 중에 손톱이 꺾인 여자가 시체를 가방에 넣고 다니던 이야기 무섭고 슬프게 봤어요. 원글님 한 번 찾아 읽어보세요.

  • 6. ???
    '14.12.24 11:33 PM (59.7.xxx.107)

    무슨 말이에요? 동생이 내려서 집에 갔는데 왜 차안에 있었어요? 엄마 부르는거 영혼이에요??

  • 7.
    '14.12.25 1:01 AM (116.33.xxx.23)

    재밌네요.^^

  • 8. 고띠에르
    '14.12.25 10:42 AM (122.34.xxx.31)

    엄마를 부르는 거 영혼 맞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49892 어제오늘 쇼핑하며 본거 ... 2014/12/25 1,079
449891 요즘 고교샘들은 임용고시 6 ag 2014/12/25 2,601
449890 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실까요? 6 ... 2014/12/25 2,685
449889 국산 프로폴리스 복용해보신 분 계세요? 7 겨울은힘들다.. 2014/12/25 5,303
449888 피노키오 박1신혜 패딩 이쁘네요 2 2014/12/25 1,930
449887 단원고 2학년 6반 정 원석 엄마입니다 113 체한것처럼 2014/12/25 20,205
449886 아..진짜 내가 이상한건지.. 1 --- 2014/12/25 804
449885 곧 뉴욕 가는데 왜 하나도 기쁘지가 않죠 8 o 2014/12/25 2,851
449884 여기 몇몇 댓글 수준들 참 6 진짜 2014/12/25 957
449883 밑에 만두 얘기 보고 작년에 재밌게 읽었던 만두 3천개 얘기 다.. 6 만두 2014/12/25 1,903
449882 언제부터인가 MC*은 안 사게 되었어요 18 ... 2014/12/25 5,348
449881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에서 하는 실비보험 차이가 뭔가요? 8 어리수리 2014/12/25 6,530
449880 배나온 사람들의 특징?????? 8 옴마 2014/12/25 3,945
449879 1920년대~1930년대생 중 지금도 일본어 잘하는 분 많죠? 6 엘살라도 2014/12/25 1,624
449878 요즘 이나라성추행사건보면 ee 2014/12/25 409
449877 아이학원 샘 결혼 챙겨야 할까요? 4 학부모 2014/12/25 901
449876 존경하는 손봉호 교수님 나오셨네요 6 개신교 2014/12/25 1,402
449875 코타키나발루 넥서스리조트 정보 부탁 드려요(급하게 가게되어) 6 달콤 2014/12/25 2,181
449874 비정상회담보니까 외국인들도 노래못하는사람들이 많은듯해요. 3 영어노래 2014/12/25 1,239
449873 평촌분들..? 1 ... 2014/12/25 855
449872 수연향유님 연락처 아시는 분, 부탁드려요~ 5 참기름 2014/12/25 818
449871 소유진이 넘 부러워요. 제 취향 이상한가요? 55 ㅇㅇㅇ 2014/12/25 25,743
449870 mbc기상캐스터 이문정 3 . . . 2014/12/25 3,446
449869 까만 냄비인데 벗겨져서 은색이 됐어요 1 버릴까 2014/12/25 486
449868 제가 코를 곤대요.. 8 꽃잎 2014/12/25 1,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