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때 안좋게 헤어진 옛 남친이 있었어요. 학과 친구였고, 석달 조금 넘게 만났었네요.
그때 보기엔 지적이고 생각 깊어보여서 반했었는데, 남자애가 첫 연애라 연애엔 좀 서툴더라구요. 저도 그때가 첫연애였으니 아마 비슷했겠죠.
그런대 알고보니 자존감이 부족한 남자애였던지라(본인도 알고 있었고 고치려고 많이 노력중이었음),
저한테 부끄러워 보일만한 힘든 사건(남자입장에서 자기 여자 못지켜서 비참할만한) 하나 크게 생기고 난 후로 사람이 너무 찌질해지더라구요.
자꾸 사랑하냐고 묻고, 집착하고, 안절부절 못해하고, 그러면서 막상 저를 별로 보고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고..
저는 그 사건 크게는 신경 안썼고 남친한테 그냥 똥밟았다 생각하고 넘기라고 했는데 걔 입장에서는 그게 안되나보더라구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해하려 했는데...
남친이 다른사람 'k'한테 '저와 관련된 둘 만의 이야기'를 해버린거에요. (친구 'x' 통해 들었음)
그것도 남친이랑 친하게 지내서 안그래도 신경쓰이던 다른 여자애한테..
그건 도저히 못참아서 헤어졌어요. 그런데..
남친이 원래 밝고 학과친구들이랑도 친했던 흥겨운 사람이었는데
저랑 헤어지고 나서는 항상 표정 굳어있고, 남들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폐인처럼 다니는 거에요.
'나 힘들어요'하는 티 팍팍 나는... 그런거 있잖아요? 그러면서 몇몇 애들한테는 지나가듯 제 얘기 조금씩 흘리는 것 같고..
도중에 저 불러서 '우리 둘만의 이야기 함부로 남한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긴 했어요.
그래서 저도 다 잊고 좋게좋게 지내려고 그냥 친구처럼 대하려고 했는데 여전히 표정과 죽을듯한 모습은 그대로더라구요.
그러다가 학년 말에 군대를 가버리더라구요.
이런 이야기들 잘 모르는 다른 동기들은 날 '저 밝던 애를 저렇게 바꿔놓은 여자'정도로.. 그러니까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 보이더라구요..
저도 그래서 힘들었고, 과 생활 해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그만두고 동아리 들어가 동아리활동만 하면서 대학시절을 다 보냈어요.
군대에서 복학한 그 사람이랑 학교에서 세번쯤 마주치긴 했는데, 딱히 인사할 필요도 없어보이고 그쪽도 피하는 눈치길래 그냥 신경안썼구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2학년 마치고 다른 학교로 편입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후로는 전혀 소식 들은 적이 없어요.
그렇게 시간이 9년이 흘러서 ..조금 있으면 30살인데
갑자기 그 사람한테서 카톡이 오더라구요.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이야기 나눌 수 있겠냐고.
그래서 통화했더니 하는 말이
미안하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하네요.
헤어지기전, 그리고 헤어지고 난 후로도 처신을 잘못해서 절 힘들게 만들어서 미안하데요.
그리고 나와 헤어지고나서 엄청나게 노력을 했데요. 자기 부족한 부분들 찾아서 엄청나게 고치고, 자존감 문제도 해결하고,
자신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훨씬 좋은 사람이 됬다고.. 그게 다 저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하네요.
그리고 사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네요. 자신이 다른사람한테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그거 오해라네요.
제가 헤어지자고 하면서 왜 헤어지는지 이유를 말 안해줬거든요.. 그러다가 남자이 친구 'x'한테 그 이유를 들었는데..
둘 만의 이야기를 다른사람 'k'한테 했던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더레요.
그런대 그걸 '내가 여친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으면 남한테 이야기하고 다니면서도 내가 기억을 못할까...'라면서 자책을 했다네요.
그리고 나서 저한테 사과를 했고..
그런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는게 이상해서 'k'에게 사실 확인을 해봤다네요. 그랬더니 (둘만의 이야기를 남친이 했다는)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고..
그래서 그 거짓말의 진원을 알아보려했는데 그건 못알아냈고..
그 오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저랑 헤어지고 몇달 후였는데,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와버려서 차마 저한테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하는 말이, 지금까지 9년간 한 번도 저를 잊어본 적이 없다네요.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질 않는다고..
연애는 했냐고 물어봤더니 4년넘게 만난 여자도 있고, 몇 몇 있긴 했대요.
그런대도 제 생각이 나더냐고 물으니까, 점점 희미해지긴 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항상 제가 있었다고 하네요.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그러면 안되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절 떠올리면서 혼자 몰래 그리워한 적이 많았다네요.
그러면서, 저한테 그냥 없었던 사람처럼 영영 잊혀지는게 저에게 나았겠지만,
20대를 이제 완전히 보내기 전에 저한테 이런 이야기들 해서 못했던 이야기들 하고
자신의 20대랑 저에 대한 마음을 미련 없이 이제 보내주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다고 미안하다고 하네요.
-----------------------------------------------------------------------------------------------------------------------------------------
이 여자분이 자신이라면, 여자분들은 어떤 마음이 드실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저 남자입니다. 그냥 제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면 글이 뒤죽박죽 될 것 같아서
제가 여자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여자분의 입장을 상상하면서 아는 만큼만 적어봤어요.
물론 연락은 해보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자꾸 나네요..
모든것 다 품고 물처럼 흘러가고 싶었는데 자꾸만 혼자 공상에 젖게 됩니다.
여자분이 미모가 출중했어서 저랑 헤어지고도 많이 대쉬를 받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대 전부 다 거절했다고.. 그렇게 3년을 지내다가 제가 여자친구가 생긴 다음 그 여자분도 오랬동안 대쉬해오던 다른 남성분이랑 만나시더라구요.
이건 아마.. 저에게 미련이 남았다기 보다는 저 때문에 남자한테 학을 때서 안 만났던 것이겠죠.? 다른 남성을 만난 시점도 우연이었을 것이고..
여자분이 신중한 성격이셨어요. 복학하고 친한 친구들과는 관계 다시 잘 맺어서 이 친구 근황을 조금씩 듣기는 하는데(못 들은지 1년 넘긴 했지만)
저에 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하신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먼저 제 이야기를 꺼낼 이유도 없고 해서 절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글이 좀 길었습니다..
여성분들, 혹시 이렇게 한참 예전 애인한테서 연락이 오면 기분이 어떨실런지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p.s 가을 겨울엔 항상 이런 상상하곤 합니다. 앞으로는 허튼 꿈 안꾸게 박살내주시와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