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가장 큰 문제가 권태로움 같은데 그걸 어케 극복한단 말인가." 이 문제에 진지하게 성찰해 본 경험이 있는 교인들의 말을 들어 보고 싶네요. 별로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
—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 나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습니다.
— 친구들은?
— 당신은 이 날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가 미지로 남아 있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 조국은?
—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 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 미인은?
— 그야 기꺼이 사랑하겠지요, 불멸의 여신이라면.
— 황금은?
—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합니다.
— 그래!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난 이방인아?
—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기한 구름을!
보들레르, 이방인
저도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다른 형태의 영생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젊음에서 늙음으로 갔다가,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서 삶의 다른 면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영생. 그런 순환의 고리가 영원히 반복되는 거지요. 물론 늙음에서 젊음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는 '나'라는 자의식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채로, 그 앞선 삶에서 펼쳐진 그외의 모든 것들을 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영생이 인간적으로 실감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은 피안이 아닌, 차안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윤회가 아닐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