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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저도 천공이 생겼었어요

nicee 조회수 : 6,352
작성일 : 2014-11-03 22:38:22
마왕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몇년전 천공으로 응급수술을 받았어요.
어느 주말이었는데 배가 뒤틀리듯이 아팠어요.
평소에도 배가 종종 아팠던 터라 (과민성 대장 증후군) 그 날도 조금만 더 참으려다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들어가려고 제 차에 탔어요 (혼자 유학중).
그런데 시동을 켜기 직전 배가 꺽이듯 아프면서 숨을 쉴수가 없어서 차 속에서 죽는구나 했어요.
간신히 핸드폰을 찾아들고 911에 전화했어요 (미국이었어요).
앰블란스가 오는 3분동안 세상이 노래졌다가 또 배가 덜 아파지는 순간엔 하나도 안 아팠어요.
(신해철님도 초기엔 아프다가 덜 아프다가 하셔서 견딜만 하다고 생각하셨을듯)
앰블란스 타고 집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어요. 그때가 약 오후 4시경.
그때만해도 저는 신경성 과민대장증후군인지 알고 좀 센 진통제맘 처방받고 빨리 퇴원하기만을 바라고 있었죠.
근데 의사들이 저를 안 보내주는 거에요.
CT, 피검사 등등 몇가지 검사를 했어요.
전 점점 배가 아파지는 주기가 빨라졌어요.
그당시 처녀였던 저는 애낳는 진통이 이런거라면 애 못 낳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전 결혼 하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서 진통의 고통을 아직도 몰라요)
근데 의사들이 진통제도 안 주는 거에요 ㅠㅠ
그러다가 의사 무리들이 우루루 제 방에 들어왔어요. 그때가 저녁 7시경.
전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죠.
한 명이 저에게 천공이 있다고 말해줬어요. 배에서 air가 새고 있다면서 수술을 해야한다고. 어디서 새고 있는지는 몰른다고. 개복을 해야 알 수 있다고 했어요.
전 수술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당황해서 내일 아침에 수술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의사들이 절대 안된다고. 그럼 저 죽을 수도 있다도 했어요. 치사율이 70%인가 된다고.
그래서 수술동의서에 제가 스스로 사인했어요.
그리고 막 서둘러서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수술후 들어보니 소장 여러군데에 구멍이 뚫려있었다고 해요.
구멍뚫린 부분을 자르고 다시 잘린 부위를 엮어서 이으는 수술을 했다고 했어요.
여러 군데 잘랐고, 총 1m를 잘라냈어요.
잘른 부분을 가지고 조직검사 결과가 며칠 후에 나왔고, 전 휘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어요 (병명은 쓰지 않을께요).
그 병 때문에 제 몸에 염증이 생겼고 장에도 염증이 생겨 협착이 되었다가 심해져서 협착된 부위에 구멍이 생겼던 거에요.
전 완치되지 못했지만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늘 배가 아프고 장이 불편해요.
신해철님의 비고를 듣고 얼마나 아프셨을까 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정말 많이 아프셨을거에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안 겪어도 될 고통을 혼자서 이겨내려 얼마나 애썼을까.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무고한 죽음은 있어도, 무의미한 죽음은 없다지요.
신해철님의 죽음은 참 원통하고 억울합니다.
그렇지만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사회 의료계의 폐단을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가시는 길에 우리들이 당신을 생각하는 모든 마음을 다 전해드릴테니 외로워하지 마세요.


IP : 121.135.xxx.169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건강하세요
    '14.11.3 10:45 PM (220.73.xxx.16)

    글 잘 읽었어요. 원글님도 계속 건강 지키시길 바랍니다.
    얼마전, 일주일 전에 수술을 했는데 전 그 전신마취에서 깬 후의 고통으로도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신해철씨는 얼마나 힘드셨을지. 그의 고통을 상상만해도 가슴이 벌렁거려요.
    신이 있다면 왜 해철씨한테 그런 고통을 당하게 하고..

  • 2. ...
    '14.11.3 10:46 PM (59.15.xxx.76)

    댓글 잘 안쓰는데..좀 뜬금없는 얘기일수도 있지만 정말 글을 잘쓰시네요.
    해철님에 관한 글을 수도 없이 읽었는데, 댓글은 처음 남깁니다. 글에 쓰신대로 무의미한 죽음이 되지 않기를 같이 바라봅니다.

  • 3. ..
    '14.11.3 10:50 PM (180.230.xxx.83)

    정말 수술만 했어도 멀쩡히 살수 있었던 사람을
    도대체 이게 뭔가요!!!!!!

  • 4. 어휴
    '14.11.3 10:51 PM (58.226.xxx.208)

    외국에서 혼자........ㅠㅠ

    너무 대단하세요.
    다행히 말이 잘 통했나봐요.

    막 상상하면서 읽는데 저 같았음 어땠을지 앞이 캄캄 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미국은 병원비 엄청 비싸다던데 수술하셨으면 얼마나 큰돈이 들었을까요.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해철오빠 너무 원통합니다.........

  • 5. 설라
    '14.11.3 10:53 PM (175.112.xxx.207)

    지금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네요.
    제 아들도 장중첩으로 넘 고생했기에 응급상황대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있어요.
    시간이 지체되면 바로 썩는다는 의사말이 지금도 생각나요.

    천공이 두곳이나 뚫렸는데
    님이 한 방법대로 했어야지요.
    첨 서울대분당 병원으로 갔던것같은데 대기자가많아 스카이 병원으로 이동한게 결국 죽음으로 이르게되었군요.
    병원이나, 신해철측이나 안이하게 대처하다
    손 쓸시간없이 악화되어버렸지싶어요.

  • 6. 설라
    '14.11.3 10:55 PM (175.112.xxx.207)

    신해철님이야 병원측과 오랜인연이있던
    강원장을 믿었겠지요.

  • 7. 몰래 흐르는 눈물
    '14.11.3 10:57 PM (121.166.xxx.25)

    써주신 것 잘 읽었습니다. 힘들었던 경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하고, 정말 가신 분 외롭지 않게 조그마한 정의를 세우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 8. 아이구
    '14.11.3 10:57 PM (110.10.xxx.161) - 삭제된댓글

    고생많이 하셨네요
    정말 우리 같은 서민들은 그냥 간판보고 병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의사 만나는 것도 크나큰 복인것 같네요
    마왕님도 그 병원만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넥스트 새 앨범 발표하고 있을텐데요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휴우.. 그냥 한숨만 나오네요

  • 9. ..
    '14.11.3 11:07 PM (116.37.xxx.18)

    정성 담긴 좋은글 감사드려요

    건강하시길 기도할게요~!!

  • 10. 글쓴님,건강하세요~
    '14.11.3 11:07 PM (119.149.xxx.91)

    신해철씨도 결코 헛된 죽음을 맞으신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참에 의료계에 경종을 울리고 떠난 셈이죠..

    글쓴님은 건강하시길.

  • 11. ㅠㅠ
    '14.11.3 11:27 PM (125.177.xxx.190)

    에휴.. 진짜 얼마나 아팠을까나..ㅠㅠ
    원글님은 정말 다행이예요..

  • 12. ^^
    '14.11.3 11:50 PM (119.67.xxx.233)

    저희 아들도 장중첩이어서 수술할뻔 하다가
    마지막에 가스넣은게 풀렷어요..
    수술하면 천공얘기도 했었고 소장 잘라서
    이어준다고 얘기한게 기억나네요..
    지금 생각하니 아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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