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맘이 곤두박질치면 그 충격에서라도
다시 원상복구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지만 대충의 데이터는 나온다
그쯤이겠지..이쯤이구나..하는 가늠으로
마음의 블랙홀에서 잘 빠져나왔는데
이번엔 좀 길게 갈 모양이다
게다가 너도나도 외롭고 휑한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탓에
심심한 넋두리로 공감을 얻는 것도 나쁘진 않다
문제는 맥없이 줄줄 흘러나오는 말에는 파워가 없다
지치고 더 갈증이 난다
차라리 아무 말 없는 벽을 보고 시간 떼우는 게 생산적일 때도 있다
우울증이 무서워 성급히 밖으로 도는 건 도리어
더 확실한 울증의 깊이를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볕이 좋은 날에도 귀찮아 외출을 안 하는데
어제, 오늘 비가 잘 온다
우산 쓰고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자리는 텅텅 비어있는 그 큰 카페
여자는 창가쪽에 앉아 밖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대번에 전파가 온다
외로움과 커피
점원 한 명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전경이 정물화 같다
한 블록 더 내려가다 보니 매장 물건을 정리하는 이쁜 언니가
발을 삐끗하며 뒤로 발라당하는 찰나 나는 비켜갔다
그러니까 그 다음 장면은 꽈당 아니면 주변의 무엇을 잡고 십년감수했을 거다...
근데 하필 그 타이밍이 너무 기가막히다
그 언니의 당황스런 표정..0.01초에 일어날 법한 액션이 포착되는 순간
우린 눈도 마주쳤다
우산으로 내가 왜 민망해 얼굴을 가렸는지 원...
한 바퀴 그리 휘휘 돌고
파리바게트에 들어가 얼마 전부터 눈독만 들이고 참았던
순수 우유 케익을 샀다
아무 데코레이션 없는 100% 우유 케익
크림 레이스도 과일도 초코렛 표지판도 없는 얼핏 보면
케익이 만들어지는 과정 3쯤에 해당되는 그런 모양...
정말 우유가 빵으로 둔갑했다
누군 스트레스 받으면 양푼에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입이 찢어질세라 먹는다지만
난 아주아주 느끼하고 따뜻하며 다정한 음식이 땡긴다
낙서 가득한 맘의 벽에 이 우유케익으로 도배를 한다
엄청난 열량을 먹었으니 적어도 스쿼트 300개는 해야 한다
걱정이 밀려오자 생기가 난다
참 ...인간의 맘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