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콘서트] "자산 불균형이 아니라 소득 불균형에 대해 논쟁할 때" [이승선 기자]
최근 진보 진영 논객들의 '진보 진영 비판'이 유행이다. '독설 논객' 강준만 교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로 진보 진영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더니, '현실 참여형 학자'로 유명한 장하성 교수(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는 진보 진영을 경제적으로 비판하는 책을 펴냈다. <한국 자본주의>(헤이북스, 2014년 9월 펴냄)라는 책이다.
그가 처음으로 출간한 '대중적인 경제학 서적'이라는 점에서 이 책도 '정치적 비판'의 성격을 피하기는 어렵다. 10월 16일 참여연대 강당에서는 저자가 직접 이 책에서 대중에게 전하고 싶었던 얘기를 독자들과 만나 직접 들려주는 '북 콘서트'가 열렸다. 사회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맡았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경제학 서적에 대한 '북 콘서트'라는 점에서 '설명형 강연장'이 되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야말로 '정치적 격정 토로의 장'이 되었다. 장 교수는 "분노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 "현재의 진보 진영은 집권할 자격과 능력, 책임감이 없는 집단이다", "당분간 진보 진영은 가치를 지향하며 새로운 대안적인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가 쓰라린 정치 현실을 겪은 탓인지 그의 '감정선'은 불안한 상태로 느껴졌다. 다음은 김상조 교수의 사회로 '북 콘서트'에서 쏟아낸 장하성 교수의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저자 장하성 교수의 북 콘서트가 열렸다. 사회는 김상조 교수. ⓒ프레시안(이승선) ">
"대중을 혹세무민하는 새로운 진보 등장"
김상조 : 정치권에 나섰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신 장하성 교수를 소개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장 교수의 감정 기복이 있는 편입니다. 예민한 질문을 받으면 거침없이 토해낼 거 같아 진행이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대중적인 책을 내셨는데, 이 책이 나올 즈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개론서가 나오는 바람에 판매에서도 고전하고 있죠. 궁금한 것은 이 책의 양이 상당히 방대한 편인데요, 왜 이런 책을 쓰게 된 것인지요?
장하성 : 나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으로부터 모두 극단적인 비난을 받아왔어요.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스탈린주의자'라는 비난까지 들었고,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주주 자본주의의 앞잡이', '월가 자본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하버드대 유학을 추천해준 강용석 씨로부터 "삼성으로부터 200억 원을 받았다"는 공개 비난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비난들에 대해 그동안 나는 방어하거나 언급한 적이 없었습니다. TV 토론에 나간 적도 없고, 정부의 여러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없고요. 기업에서 강연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책을 쓰게 됐는가 하면요.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몇 십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 책임이 보수 진영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진보 진영에도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진보 세력'이 등장했는데요. 이들은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논쟁으로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분노했고, 이들이 혹세무민하는 주장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쓸 때 3가지 원칙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첫 번째, 철저하게 한국의 현실에 맞는 주장만 한다. 두 번째,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가치 지향적인 의제를 제시한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썼는데, 책은 잘 안 팔리네요(웃음).
"주주 자본주의, 사실상 대안 없어"
김상조 : '자본주의 고쳐 쓰기'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요. 자본주의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인가요?
장하성 : 내가 아는 한 자본주의의 대체재가 될 만한 제도로 역사적으로 존재한 것은 사회주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들은 자본주의의 보완적 대안들입니다. 자본주의의 대체재가 없다면, 문제가 많은 제도라고 자본주의를 그냥 버릴 수는 없습니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내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자본주의가 결함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유지되는 생명력입니다.
김상조 : 자본주의의 유형으로 대표적인 것은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문제를 신자유주의의 문제로 분석하거나, 주주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라는 논쟁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가요?
장하성 :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신자유주의로 진단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입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올바로 진단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는 이상적인 사회로 이끄는 '무지개'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어보니 그런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나는 무지개를 찾아갈 것입니다. 안철수가 성공 못했다고 해도, 안철수가 상징하는 새로운 대안적 정치 세력이 있다면 다시 참여할 것입니다.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은 희망사항이겠지만, 꿈을 좇는 노력은 현실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바보이거나 철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지개가 없는 줄 알면서, 무지개를 좇아가야 합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남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반면 공동체의 가치를 최상위에 놓으면, 개인의 자유는 제한됩니다.
그런데 현실의 문제는 대부분 경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돈과 관계가 있습니다. 돈은 내 돈 아니면, 남의 돈인 부채입니다.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나누는데, 정말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요? 현대 경제에서 주주를 없애자고 한다면, 대안이 있습니까? 주주 없이도 회사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소비자 협동조합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자본이 필요합니다.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핵심 이유는 바로 '자본' 때문입니다. 정부에 자본을 의존하면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주가 배당 이득을 가져가서 노동자가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주장은 현실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배당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전 산업에 걸쳐서 인건비와 배당액 규모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배당액이 많아서 인건비가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주식 자본은 이상적인 돈입니다. 무보증, 무담보, 비상환, 무이자 대금입니다. 우리나라에 주식 자금은 1300조 원 정도가 있습니다. 상위 30대 기업이 약 700조 원의 주식 자금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이 상당히 불안정하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반면 채권 시장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나는 이것을 '풍랑 효과'와 '욕조 효과'로 비유합니다. 주식시장은 약간의 주식들이 빈번하게 들고 나가고 있고 이를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많다보니 전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거의 대부분은 그대로 있습니다. 바다 표면이 일렁거려도 심층수는 그대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채권 시장은 욕조의 물이 밑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조용히 빠져나갑니다. 경제 위기 때에 실제로 크게 빠져나가는 돈이 채권입니다.
주주 권리에 있어서도, 노동자의 임금이 존중되는 북유럽의 자본주의에서 더 강합니다. 노동자도 상당한 임금을 받으면서 주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소액 주주의 자본도 노동자의 임금처럼 존중되기 때문이죠. 오히려 영미식 자본주의에서 주주의 권리는 북유럽식 자본주의에 비해 강하지 않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연구 통계를 보면, 소액 주주 권리에서 우리나라는 100위 권 밖입니다.
"삼성특별법? 삼성이 반대할 것"
김상조 : 장하준 교수가 제안한 '사회적 대타협'이나 '삼성특별법'이 한국 경제를 살리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장하성 : '사회적 대타협'은 스웨덴에서 시행된 것이라면서 제안을 한 것이죠. 발렌베리라는 대기업과 노동조합이 대타협을 했는데, 우리도 이를 배우자는 얘기인데요. 스웨덴 경제 전문가인 성공회대 신정완 교수는 진보 좌파 학자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분인데, 그분 말씀이 "스웨덴에 경영권을 매개로 한 대타협이라는 게 없었다"고 합니다. 발렌베리가 대타협에 참여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대타협' 얘기할 때 스웨덴 얘기는 슬그머니 빼더군요.
그런데 타협이라는 것은 뭔가 양보하고 주고받는 것입니다. 재벌 총수에게 경영권을 보장하면, 재벌 총수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입니까? 투자와 고용을 늘린다는 게 재벌이 줄 수 있는 것인가요? 한국은 투자가 부족해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재벌이 고용을 많이 늘릴 수도 없습니다.
경영권은 도전받는 것이지 보호받는 게 아닙니다. 세계 100대 부자 중 70명이 창업 부자입니다. 한국은 100대 부자 중 70명이 상속 부자입니다.
삼성특별법이요? 삼성 측에서 오히려 삼성특별법을 반대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서 경영권 확보하고 승계하고 있는데 뭘 내놓으라는 것이냐고 말이죠. 문제는 또 있죠. 경영권 보호를 해준다고 할 때 왜 삼성만 해줘야 합니까? 중소기업들의 경영권은 왜 보호해주지 않나요. 삼성특별법만 해야 하나요? 현대도 특별법으로 보호해줘야죠. '정몽구 보호법'도 만들어야죠.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생산수단을 전부 국유화하자는 게 빠르죠.
"삼성 '적대적 인수합병' 운운, 삼성의 자작극이자 좌우 합작 산물"
경영권을 누구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인지도 애매모호합니다. 외국인들이 삼성을 가져갈 위험이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이건 삼성의 '자작극'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삼성전자 같은 대규모 기업은 기업 역사상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한 사례가 없습니다. 외국인 주주들이라고 하지만, 그들끼리도 서로 외국인들입니다. 한국의 기업을 상대로 외국인들이 국적을 초월해 단합한다는 얘기인가요? 외국인을 공동의 적으로 설정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좌파와 우파가 공조하는 '좌우 합작'의 산물입니다.
2013년 기준으로 삼성전자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습니다. 이런 기업을 왜 보호해야 합니까? 오히려 삼성의 하청업체들을 보호해줘야죠. 삼성전자가 망하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합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GDP의 2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이니까요. 핀란드의 노키아가 바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대기업인데요. 노키아가 흔들리니까 핀란드의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희 보호법'으로 삼성전자가 계속 잘나갈 수 있다면, 나도 찬성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건희 보호법'을 만들면 삼성전자는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그룹이 내부 거래를 해서 삼성 전체가 잘되면 한국 경제에 좋은 것입니까? 개개인의 선택이 전체로 볼 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구성의 오류라고 합니다. 삼성이 잘되면 한국 경제에 좋지만, 삼성에 좋은 것이 한국 경제에 좋은 것이 아닙니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지난 대선에 후보 낸 당은 하나밖에 없었다"
김상조 : 200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배임 혐의로 구속됐을 때 SK 주가가 폭락했죠. 당시 장하성 교수는 SK는 5조 원의 가치가 있고, SK텔레콤은 2조 원의 가치가 있다면서 SK 주식을 샀습니다. 이론을 실천한 것이죠. 당시 국내 투자자들은 기관 투자자까지 SK 주식을 팔았습니다. 이때 소버린이 1500억 원으로 SK 주식 14.99퍼센트를 매입했습니다. 15퍼센트 이상이면 기업 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14.99퍼센트까지만 매입한 것이죠. 장 교수는 당시 사비를 들여 외국으로 나가 소버린의 챈들러 형제를 만났습니다. 타협안을 제시했는데, 챈들러 형제가 거부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장 교수에 대해 월가 자본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누가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장 교수가 우파는 물론 좌파도 박정희 향수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좌파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설명해주시지요. 최근 강준만 교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에서 좌파를 비판한 것과 어떤 점이 다릅니까?
장하성 : 우파는 지킬 이익이 있기에 의견이 달라도 뭉칩니다. 기업들 보세요. 웬만한 규모의 기업이라면 5대 경제 단체에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그런데 진보는 지킬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진보는 나와 의견이 다른 친구부터 죽이는 것 같습니다. 결국 다 죽이고 자기 혼자 남는 것 같습니다. 지금 좌파 단체들은 거의 지리멸렬한 상태입니다.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의 부제가 '최후의 집권 전략'입니다. 제목에 싸가지라는 말이 들어가 '제목이 천박하다'는 비난을 듣는 거 같은데요. 싸가지의 원뜻이 '가능성'이라는 강 교수의 설명을 보니, 제목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진보라면, 집권의 꿈을 버려야 합니다. 집권을 하려고 단기적인 목표에 집착하다가 더 망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제3지대에서 가치 지향적인 세력 형성에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나는 민주당이 진보 진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선 후보를 내놓은 당은 하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민주당'이죠. 이 당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두 대선 후보가 출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나햐면 민주당은 집권을 위해 정치 공학만 일삼는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 연예인과 진보 책장사 너무 많아"
진보 연예인, 진보 책장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외국 이론 수입해서 지적 유희를 즐기자는 것인지, 자기 얼굴을 알리려는 진보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쓴 <한국 자본주의>의 부제가 '경제 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입니다. 무엇을 가치로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 권 넘게 팔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철수 현상'도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여론 지도층이 어젠다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강준만 교수보다 더 강하게 "싸가지 없고, 게으르고, 무책임한 진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
김상조 :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진보 진영에서 각광받을 때 국내 학자로서 거의 유일하게 장 교수가 "한국에는 맞지 않는 이론"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왜 피케티의 이론이 한국에 맞지 않는다는 것인지요? 그리고 최경환 장관의 '초이노믹스'도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장하성 : 피케티 교수는 원래 소득 불평등을 주제로 오래 연구한 학자입니다. <21세기 자본>은 자산 불평등까지 함께 다룬 책이죠. 그런데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는 누진세가 있습니다.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는 수단은 찾기 어렵습니다. 재산세로는 미흡하죠. 그래서 피케티가 제안한 것이 자본세입니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 자본세는 '유토피아적 아이디어'라고 시인하고 있습니다. 자본세는 전 세계가 공조하고 금융 정보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죠.
"소득 1차 분배도 안되는 나라에서 무슨 자산 불평등 논쟁하나"
ⓒ헤이북스내가 '피케티 이론'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에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당장 소득 불평등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누진세 논쟁을 벌여야 정상인데, 자본세 논쟁을 하고 앉아 있는 것에 화가 납니다.
소득 분배와 소득 재분배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 사회는 소득 분배 자체가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소득을 가져간 것입니다. 이 문제를 논쟁해야 할 판에 잘사는 남의 나라, 미국과 유럽의 자산 불평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지나치게 많이 쌓아두고 있는 내부 유보금에 대해 나는 '초과보유세'라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최경환 장관은 '기업소득 환류세제'라는 이름의 정책을 시행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안됩니다.
소득 불평등 논쟁이 중요합니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은 억제해야 합니다. 통제받지 않는 자본은 경제 성장의 과실을 다 가져갑니다. 그건 맞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이론이 한국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요?
한국은 피케티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는 통계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국민계정 대차대조표에서 자본소득을 따로 분류한 것이 2011년부터입니다. 그래서 지금 구할 수 있는 것이 2011년과 2012년 정도입니다. 이 통계를 분석해도 경제성장률보다 자본수익률이 더 높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한국의 자산 중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의 비중은 절반씩 됩니다. 금융자산 수익률도 경제성장률보다 높지 않고, 부동산 수익률도 1987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을 보면 별로 높지 않습니다. 부동산 얘기를 할 때 서울 강남 3구, 또 폭등 기간만 기억하기 때문에 부동산 수익률이 엄청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근거 없는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내 계산이 틀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걸 지적해주십시오. 선입견을 가지고 "장하성의 주장은 틀렸다"고만 비난하지 마시고요. 나는 "지금 이 시점에 시급히 해소할 불평등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논의하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본세보다 더 실천이 용이한 토빈세도 제안이 나온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실현이 안되고 있습니다. 토빈세도 실현이 잘 안되는 판에, 피케티 스스로 "유토피아적인 대안"이라고 하는 자본세를 가지고 왜 이렇게 논쟁을 하고 있나요?
피케티가 우리 사회에 공헌을 했다면 '불평등 이슈'를 부각시켰다는 점입니다. 불평등을 어젠다로 삼을 기회가 왔으면, 한국 실정에 맞는 불평등 문제를 논의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최경환 장관이 채택한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대기업의 배당을 촉진하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것인데요. 세금을 깎아줄 테니 배당을 늘리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입니다. 실제로 도입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세금 몇 푼 깎아준다고 배당을 늘리지 않습니다.
김상조 : 보수가 진보 진영의 어젠다를 가로채 간다고 해서 '짝퉁'이라고 비판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비판한다고 해서 진보의 어젠다가 '명품'이라고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장하성 : 사실 보수가 진보 진영의 어젠다를 가져간 것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진보 진영이 어젠다를 잘못 설정하면서 지리멸렬한 것이 답답한 심정에서 하는 말입니다.
"가치 지향 정치 세력 있으면, 또 참여할 것"
김상조 : 이 책에서도 "문제는 정치"라고 결론을 내리셨는데요. 그런데 장 교수께서는 정치에 들어가서 실패했지 않나요?
장하성 : 실패한 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것이죠. 말장난이 아닙니다. 지금 현실 정치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지만, 꿈은 계속 좇을 것입니다. 내 개인적인 얘기를 이 책에 하나 썼는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자이던 시절, 도와줄 것을 요청받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인수위에 참여한 전문가들을 보면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정책은 만들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정책을 못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은 정치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한국 정치가 앞날이 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진영은 차라리 당분간 집권을 포기하고 가치를 추구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두서없는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