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만나 칼질?도 하고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분위기도 잡았던
그 옛날 경양식집...
요즘 카페나 음식점에 비하면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당시엔 세련된 만남의 장소였다
지금은 줘도 안 들을 경음악들이 메들리로 나왔었다
스윗피를, 뽈모리, 만토바니, 제임스 라스트 악단 등의 레파토리가 연이어 ...
무슨 크림수프, 야채 수프, 양송이 수프...이름은 다양했지만
맛은 오뚜기 수프...그 맛과 다 똑같았다
늘 그렇지만 지금 수프는 그맛이 안 난다
"옛날 돈까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포장지를 보니 참 많은 생각이 웃음 짓게 한다
연탄불에 콩 구워 먹던 어르신들의 아련함이 뭔지 알겠다
팍팍하고 삭막하게 보이는 요즘 풍경들도 또 지금 세대들에겐 그리운 추억이자 시대의 사진으로 남을 거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마지막 커피까지가 풀코스였다
아...파르페도 있다
과자에 아이스크림에 주스에 예쁜 우산까지 씌어있던 멀티였다
이걸 아이스크림에 넣어야 할지 음료라 할지 늘 긴가민가 했다
어디를 가나 빼빼로 한두 개는 꼭 꽂아있었다
세련되고 미니멀하고 너무나 깔꼼한 요즘 먹거리들
당시엔 그것들도 그랬다
1993년 모월 모일에 먹었던 상황이 재연 불가능할 뿐이다
박제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 냄새까지 불러일으키니 미칠 노릇이다
학교 앞 경양식집의 이름은 "겨울 나그네"였다
그런데 음악은 항상 엘리제를 위하여가 반복으로 돌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돈까스의 소스냄새와 촛불, 이상한 문양의 천 소파, 코팅된 메뉴판이
후다닥 지나간다
기억에도 셋트메뉴가 있다...
유치하기 짝이 없던 뽈모리의 시바의 여왕이
범접할 수 없는 귀한 음악으로 들린다...